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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38.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What Men Live By

정택영



파리 시내 곳곳을 다니다 보면, 적잖이 한국 브랜드 제품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고층빌딩 옥탑에 설치된 광고판에 는 최근 첨단디지털 통신기기 선전광고가 꽤나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동차 광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하철에서나 버스를 타고 고개를 숙인 채, 채팅이나 문자 메시지 등,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프랑스인들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기를 눈여겨보면 한국제품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잘 알려진 대형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또는 관공서에 설치된 벽걸이형 TV모니터도 한국제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목격된다는 것이 이제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게 되었다. 한국인으로 외국에서 살아가면서 여간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지 외국인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거니와 분명,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북돋는 일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 명제는 물론 100여 년 전, 이 땅을 살았던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 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은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화 된 이 세상은 이미 ‘무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것이 꽤나 세월이 흘렀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무한경쟁과 자유경제 체제 아래, 국가간에도 혈맹이었던 관계라 하더라도, 국익 앞에서는 일말의 가차 없이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조건과 협약을 맺거나 갱신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시대가 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무한경쟁, 이른바 캐터필러 caterpillar; - 무한궤도 위를 끊임없이 돌고 도는 그런 삶의 모습을 희화화한 현대용어로 자리를 잡고 말았다. 자유무역과 자유경제 체제 안에서 이제 현대인들은 옆 사람과의 무한경쟁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로봇, 디지털 기기들과의 끝없는 경쟁으로 치닫게 된 것이며 이로써 스트레스와 그 증후군으로 현대병을 유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이처럼 첨단기기 제조와 판매에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모름지기 한국인 특유의 기질과 근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8282 근성이다. 모든 것이 급하고 빨리 해치워야만 하고 빨리 먹어치워야만 직성이 풀린다. 오죽하면 커피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펄펄 끓는 물이 쏟아지는 종이컵을 잡으려다 손을 데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미디어 보도를13. 9. 12.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하튼 급하다. 이렇게 급하게 된 연원을 분석한 많은 글들이 있어왔지만 대체적으로 우리 한국인이 급하게 된 것은 지정학적인 문제와 기후조건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수많은 외세 침입과 뚜렷한 일년 사계절의 순환, 이것이 때를 놓치면 파종 시기를 놓치거나 가을걷이를 망치게 된다든지 하여, 생계에 극심한 어려움을 초래했던 까닭이 내재해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써 형성된 것의 하나가 “한국인의 근성”이다. 근성이란 “어떤 역경과 불리한 환경도 버텨내며 어려움을 이기고 반드시 뜻한 바를 이뤄내고야 마는 성질 혹은 성격”으로 근성 根性 mentality, professional mindset 이란 무얼 말함인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성질 또는 뿌리가 깊게 박힌 성질'로 '기질, 천성, 심보, 본성, 마음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말이며 다른 말로 성근 性根 이라고도 말한다. 물론 불어로는 caractère로, 중국에서는 肠子창지 ' 마음. 마음씨. 심보. 심성. 근성'으로 쓰이는 말이다. ‘노예 근성’이라면 노예가 가진 특유의 안 좋은 점을, ‘승부 근성’이라면 꼭 이기고 싶어 노력하는 승부사 기질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로 말도 안 될 정도로 끈질기게 버티는 끈기와 인내력, 안 될 일에도 무작정 달려드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역경을 이겨내며 인생 역전을 이뤄내는 긍정적 근성도 있지만, 버틸 필요가 없는 것을 버티거나 큰 의미가 없는 목표에 과도히 열정을 쏟는 부정적 근성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냄비근성”이란 자조적인 투의 신조어를 떠올리게 된다. ‘냄비근성’의 부정적 의미는 빨리 식어버리는 초점을 맞춘 것 일뿐, 빨리 달아오르는 데 초점을 맞추면 그것은 긍정적인 ‘냄비의 힘’이 된다며 “냄비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느냐, 부정적으로 작용하느냐는 지도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으며, 디지털 시대를 맞은 지금, ‘냄비근성’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정보 처리 방식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급변성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조응이며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진 관심의 집중과 망각은 새로운 정보의 유입과 확산을 위해 불가피했던 것이고 잊지 않고 살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들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고 자기편애적인 동정 어린 여론들이있음을 알게 된다.


분명한 것은, 생존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근성의 토대아래 형성된 문화가 하나의 근성을 낳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절대적 가치는 자신의 근면과 속도감 있는 부지런함만이 살아 남는다는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의 특성이자 우리의 근성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82문화’와 더불어 사상과 감정의 충돌현상인 글로벌 다문화의 밀물로 자제력 상실과 자기정체성 상실의 근성으로 체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한국은 지금, 지나간 역사를 되돌려 흑백을 가리고 과오와 사실을 가리자는 논쟁으로 여야가 극렬한 대립각을 곤두세운 채, 이전투구泥田鬪狗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역사를 들추어 이를 폭로하고 국가 일급비밀에 속하는 문서를 까발리는 데 합의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성숙한 국가, 문화가 몸에 밴 정객들의 모습이며 과연 국익과 국가 이미지에 일조하는 일일까 하고 우려 섞인 자문을 해보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즉답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빵, 그 외의 것들 즉, 인격과 품격이, 좋은 기질로, 인성과 품성으로 가꾸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즐기고 자신의 소망을 향해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아닐까 하고 로뎅의 ‘팡세’ 조각 작품 앞을 지나치며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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