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파리스케치 : 1. 파리의 정적

정택영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거리는 형형색색의 이방인들로 채색되어 북적댑니다.

크레용 갑 속의 살색 가짓수가 여러 개 들어있는 외국산 크레용에 비해 살색이 단 하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사람의 색깔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상상해 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검은 아이보리색, 짙은 회색, 회백색 등등.........

배낭을 메고 스웨터를 허리에 질끈 동여맨 여행객들이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윙윙 지나가는 소리가 시선을 잡아맵니다.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오토바이, 대형 크레인 카, 자전거를 타고 머리를 휘날리는 파리지엔, 아스팔트 갓길에 물 뿌리는 청소차, 종이 박스침대를 걷으며 막 기상하는 홈레스 부부, 비상을 알리는 앰뷸런스의 과속 횡단................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없는 도시의 아우성입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 예배를 위해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평소에 듣고 보던 오페라 근처의 정경은 사뭇 다른 도시의 정경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여명을 깨고 찬란한 아침 햇살이 오페라 하우스 돔에 세운 황금 조각상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 눈부신 파리의 부요함과 힘, 그리고 문화의 꽃을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요란하던 일상의 소요는 순간 정지되고 모든 것은 침묵의 늪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침잠되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동면으로 들어간 나무들의 숨소리, 알을 낳고 짝을 부르는 새들의 지저귐, 상큼한 이른 아침 공기가 귓가를 유영하듯 미끄러져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명화된 도심 속의 원시를 보는 듯했습니다.

고색창연한 유러피안 스타일의 건물들 사이로 주차된 차량들.......다양한 건축물의 외관과 장식들, 아라베스크 풍의 문양과 아르 누보 패턴의 장식들.................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과 문명의 탑이란 이처럼 우리의 눈과 기억을 더욱 더 풍요롭고 현란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 이 도심의 거리를 걷다가 문득 중요한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모두를 갖춘 이 황량한 도시에 단 하나 없는 게 있었습니다.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한주일을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 늦은 시간까지 나른한 게으름을 즐기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명을 구축하고 문화의 꽃을 심어도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구축인가를 말입니다.

찬란한 문명과 하늘을 찌를 듯한 첨단 과학도 사람이 거기에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듯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기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결함과 결핍 투성이이며 모순덩어리이며 그런 사람들끼리 유유상종하고 서로 질투와 시기를 하며 남의 말을 즐기며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삶입니다.


'만일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존재한다면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넉넉할 만큼 충분히 넓지를 못하다.'고 칼릴 지브란은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네 인간들의 실제 모습입니다.


침묵이 내려앉는 도심을 걸으며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삼라만상이 다 갖추어져 있어도 사람의 모습이 없다면

그건 무의미한 세상이라고.

참으로 사람은 소중하고 고귀한 생각하는 갈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파리는 정적과 소요의 두 얼굴을 지닌 귀족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정 택 영( 화가, 국제창작예술가협회(ICAA) 부회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