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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4. 파리-그 변화의 물결 속에

정택영



이십여 년 전, 내가 파리를 찾았을 때 새로움의 충격과 이질적인 문화의 모습, 그리고 이국적인 정취와 사람들의 생김새에 매료되어 그 순간의 표정들을 그려대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합니다.

나의 이국적 호기심은 그 후로도 많은 인간들의 표정이 드로잉으로 기록됐습니다.

파리의 외양은 오랜 세월을 통해 지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지금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클래식으로 건축된 거대한 성당이나 궁은 찬란했던 지난 날의 영광을 발현하는 듯합니다.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그 안에 존재하는데도 재건축을 위해 건물을 부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간혹 내부공사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지나가다 보면 공사를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차분합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 지붕 꼭대기에는 굴뚝들이 마치 악기의 그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색다른 정취가 묻어 납니다.


‘처음엔 인간이 건물을 모양 짓고 그 후엔 건물이 인간을 모양 지운다’고 윈스턴 처칠은 말했지요.

그런 예술적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한 그런 모습으로 모양 지어집니다.

그리 서두를 것도 실랑이를 버릴 일도 없이 조용이 자기 차례를 기다립니다.

 어쩌면 파리사람들은 기다림의 미학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서둘러 초고속으로 간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결국 죽음의 문턱으로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초고속을 추구합니다.

번쩍거리는 전광판과 네온 플래시 광고판들이 우리의 눈을 바쁘고 급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아이 캐처들이 너무 많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 우리의 눈은 잠시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많은 파리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메트로에서 대부분 그들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파리 메트로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기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녹록지 않은 삶에 지친 모습들을 스케치하고 그려대기가 민망합니다.

이젠 전처럼 마구 그려대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손엔 책 대신 핸드폰과 멀티미디어 기기가 들려 있습니다.   


길거리의 어디서든 핸드폰을 귀에 대고 혼자 중얼대는 파리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아직은 규제로 인해 혼란스런 광고판이 없지만 자유시장 경제논리로 제법 울긋불긋한 색깔과 조명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봅니다.

변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지구촌의 모습이 파리도 결코 예외가 아닌 것을 봅니다.

하지만 세느강의 물결은 변함없이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천천히 태어나는 것’이라는 셍텍쥐페리 말이 물 위에 떠오릅니다.

물에 나를 비춰봅니다.


물결 따라 흐르면 크게 상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 택 영 (화가, 국제창작예술가협회(ICAA)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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