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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6. 유머가 스며 있는 사회

정택영



어느 도시든 그 도시의 독특한 얼굴이 있게 마련입니다. 분위기에서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살만한 곳인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도시의 분위기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빚어냅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길들여지지 않은 사회는 사람들의 표정이 경직되어 있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쳐도 눈인사는커녕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붙입니다. 그 삶 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주장이 다르고 삼분오열 되어 나누어집니다. 그런 사회에는 유머가 없습니다. 도심은 화려하나 마음은 잿빛으로 물들여져 있습니다. 그런 도시는 병든 도시입니다. 그래서 ‘심하게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한 몸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알 수 없다.’고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거리에 그리고, 지하철 메트로 벽면에는 많은 포스터나 광고판들이 눈길을 끕니다. 음악 콘서트에서 무용, 연극, 오페라 등의 공연을 알리는 광고판들 말입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광고는 역시 미술전시일 것입니다. 르부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들이 끊임없이 일년 내내 이어집니다. 파리 사람들은 수시로 미술관을 찾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삶을 향유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시광고판들은 무질서하게 아무 곳이나 붙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대형 포스터는 아예 지정된 프레임이 잘 조각된 액자형태의 붙박이로 되어 포스터만 붙이면 바로 작품의 이미지로 정리가 됩니다. 어느 곳이든 광고판은 이미 유리액자처럼 튼튼하게 만들어져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바람에 찢겨 나부끼는 볼썽사나운 부착물은 보기 힘듭니다. 적당한 제한과 통제가 질서를 만들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봅니다. 질서는 필요한 제재와 통제에서 나오는 것임을 봅니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냅니다. 한국에서는 데모(Demonstration)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마니페스타시옹(Manifestation)이라고 합니다. 어떤 시위에서도 극렬하거나 유혈사태로 가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누릴 권익을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명하는데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이루어내는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이러한 시위행위를 하나의 행사로 간주하고 평화롭게 진행합니다. 이러한 집단행동의 양상, 그 뒤에는 다민족국가로 형성된 특성이 있기도 한 듯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회의 분위기가 유머로 다져져 있기도 한 일면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디자인한 광고판, 거기에 인용된 문구나 사진 이미지들에서 끊임없는 유머와 해학을 보게 됩니다.스쳐 지나가면 잘 보이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유머와 해학이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머는 사람들을 훨씬 부드럽고 여유롭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경직되고 흑백논리로 치닫는 강경의 논리로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유연하고 인간냄새가 나게 만드는 매력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지승강(柔之勝剛)이라는 말이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해 지는 까닭입니다. 마찰은 깊은 상처만을 남기고 결국 소멸되어가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부드러움은 교양의 산물이고 교양은 유머와 해학으로 자라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져 있는 파리의 골목 포스터에서 본 유머처럼 말입니다.

 

                                              정 택 영(화가, 국제창작예술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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