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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8. 삶의 향이 피어 오르는 파리골목

정택영



이상기후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무더위가 내려앉는 파리의 거리는 여전히 수많은 여행객들과 파리 인파로 생동감을 자아냅니다. 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에서 삶의 희열과 자신의 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파리의 거리를 활보하는 인파에 파묻혀 그들의 발걸음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걸음걸이가 ‘터벅터벅’걷는 걸음이라면 파리지앤느의 걸음은 ‘사뿐사뿐’걷는 걸음으로 보입니다.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오르내리는 날렵한 손놀림의 모습을 자아냅니다. 그것은 이들이 살아온 역사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앞을 향해 계속 전진해야만 했던 지배의 역사, 그리고 담대함과 용기로 굳어진 동작인 듯해 보입니다.


‘’프랑스는 한 명의 대통령과 육천만 명의 왕이 사는 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사회와 그것을 지탱하는 다양성의 힘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대학가 뒷골목을 향합니다. 파리엔 똑 같은 모습의 골목이 없다 할 만큼 골목의 정경은 다채롭습니다. 길목도 다양하지만 거리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의 다양함이란 마치 오색실로 짜인 펼친 비단 두루마리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전통 프랑스 빵집에서 아랍 과일가게, 일식횟집에서 알제리 카피트집 그리스 캐팝집과 인도 커리집, 캐러비안 보석가게들, 골목을 휘감고 흐르는 라틴음악,  유대인 마켓과 이태리 구두가게, 그리고 중국에서 건너온 온갖 전통 조각상과 차이나 그릇가게들 …………..

  

그 속을 거닐며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 파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봅니다.

프랑스엔 파리가 없다 할 만큼 파리는 코스모폴리탄적이기에 세계인의 도시임이 분명해 보입니다.이곳은 이방인들에게 열려있는 도시로 어느 골목에도 독특한 문화가 자라나고 상권이 공존합니다.파리의 벨빌에는 예술가들이 아지트로 창작의 열기가 뿜어 나와 파리의 진면목과 인간미를 느끼게 합니다.

 

파리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있는 정체된 도시가 아니라 흐르는 세느 강물처럼 유동적이며 현대적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에서 비릿한 생의 체취를 느끼는 곳, 파리의 뒷골목 정경은 그래서 더욱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합니다.

시간의 긴 그림자가 회색으로 드리워진 이 골목에도 하나씩 패스트푸드 점들이 들어옵니다.

스타박스 커피점이며 퀵, 맥도날드 같은 체인점들이 자리를 파고듭니다.

이 골목을 거닐며 시선을 끄는 것은 물건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표정과 모습들입니다. 위생모와 흰 앞치마를 두른 점원들, 그들이 미소를 띠고 분주히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 그런데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정경은 그들이 젊은이들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나 중년의 아저씨들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이 시대의 모든 자리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점령하고 나이가 찬 이들의 모습은 경로당과 공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모습이 이곳 파리 뒷골목에는 흰머리로 물든 이들이 무대의 주인공들 입니다. 그들이 지금껏 쌓아온 경륜과 지혜를 누가 능가하겠냐고 되묻는 듯 말입니다. 손잡이에 새긴 꽃무늬가 닳아 보이지 않을 만큼 오래 사용한 커피스푼을 저으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피잔 김 너머로 저만치 보이는 흰머리 웨이터 얼굴에 구슬땀이 흐릅니다.

 

그의 얼굴 위에 삶의 진실이 묻어 나오고 파리골목은 이렇듯 구수하게 익은 파리바게트 마냥 사람이야기들로 누렇게 구워져 갑니다.  

 

정 택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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