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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9. 문화는 흐르고, 삶이 숨쉬다

정택영



지금, 지구촌의 도처에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어디를 막론하고 경제라는 존재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여름도 그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등에 멘 여행배낭과 궤짝만한 큰 가방들로 승객 수의 배가 되어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지난 날의 파리

메트로, 하지만 지금은 한산하고 공간은 여유롭기까지 합니다.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크게 들려오던 한국말, 중국말, 일본말들이 지금 좀처럼 들리질 않습니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입니다. 간간이 들리는 관광객들은 해협을 막 건너온 영국인들,

그리고 인접한 이태리와 스페인, 미국인들 말이 조용조용 들릴 뿐입니다.


그리고 근교로 떠난 파리사람들의 바캉스족 수도 많이 줄어 파리시내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파리에서의 여름은 지루하거나 나른하지 않습니다.

파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전기나 오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입니다.

첨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지만 많은 파리지앙들은 걷기를 즐깁니다.

벨리브(Velib)자전거 정차대가 도처에 마련되어 있어 언제든 타고 바람결처럼 미끄러지듯 달립니다.

산등성이가 없어 거의가 다 평지이기 때문입니다.

버스와 자전거 전용도로 그리고 인도가 잘 구분되어 있어 통행진로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도로는 형식적이거나 전시행정으로 마련한 시스템이 아닐뿐더러 급히 조성한 것이 아니라

길고 깊은 생각을 하고 조성된 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350여 년 전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발명이라는 버스 구간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어느 구간이든 대중교통과 잘 연계되어 있습니다.

전기로 움직이는 트렘이 차도 중앙을 소음이나 매연 없이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사람들은 물이 흐르듯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결코 서두르거나 두려워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임시로 사둔 아파트 값이 오르기를 밤잠 설쳐가며 살피는 이도 없고 아등바등 모은 돈을 세어가며

자녀의 고액과외비로 지출하는 여인도 보기 어렵습니다.

과년하도록 집에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자녀를 보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 삶을 향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보게 됩니다.

이들 모습 속에 에리히 프롬이 쓴 ‘소유냐 존재냐’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소유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기 위해 소유를 필요로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본이란 스스로 통제하고 제어할 힘이 없는 까닭으로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소유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삶을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 사회로 전락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여름이 막 타오르는 절정의 파리 도심은 왁자지껄하고 군중심리로 움직이는 인파가 아니라 매년 세느 강가에 조성한 인공해변에서 자유의 기지개를 펴는 인파들과, ‘여름 지역 축제’로 한창 불꽃놀이를 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밤을 밝힐 뿐입니다.

매년 여름, 각 구마다 콘서트와 댄스, 뮤지컬과 퍼포먼스, 드로잉 미술전시와 힙합 페스티벌 등으로 밤의 물결이 출렁댑니다.  


긴 바캉스를 끝내고 다시 고요가 깃털처럼 쌓인 빈 방으로 돌아오면 파리 사람들은 삶의 결실이 익어가는 가을을 사색할 채비를 할 것입니다.

조용한 한 여름의 축제를 끝낸 이들 모두가 로뎅의 팡세가 되어 ‘생각하는 사람’들로 조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택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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