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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0. 파리지앵의 표정이 만든 도시

정택영


도시의 모습은 색칠로만 아름답게 꾸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도시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과 같아서 그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사람들이 급하면 급한 표정의 도시가, 여유롭고 사색하는 사람들이면 도시는 훨씬 차분하고 아름다움으로 채색되게 마련입니다. 파리 시내의 모습은 매일 새롭게 변하지만 표정은 언제나 한결같아 보입니다. 약동적이고 중후하며 회갈색의 느낌을 주는 듯하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롱한 보석의 색을 띠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파를 가르고 도시를 횡단해 봅니다. 그런데 그 숱한 파리지앵들을 지나쳐도 눈을 마주친 기억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가끔은 동양인이라 해서 무관심이 지나치다고 푸념할 정도로 눈맞춤이 없습니다. 우리의 외국인에 대한 비수 같은 눈총과는 참 대조적입니다. 그들의 표정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속에 배려가 깔려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무관심한 듯한 태도가 상대방을 더욱 편하게 만드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지나친 시선과 관찰은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다양한 모습의 얼굴들이 도심을 채색하고 일렁입니다. 이들 속을 지나가며 얼마 전 읽어본 한국의 성형에 대해 생각에 잠겨봅니다. 어림잡아 5조원을 육박한다는 성형비용, 그리고 대학이 개강하고 나면 학생을 잘 몰라보는 교수, 거의 비슷비슷한 눈매와 표정들에서 통일감을 보게 되는 야릇함!


‘규범과 모형이 천재와 예술을 파괴한다’고 했던 영국의 비평가 윌리엄 헤즐릿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어떤 이상적인 대상이 등장하면 너나 없이 그것을 닮아가려는 욕망- 그 허구와 맹목적 지향성에 대하여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미의 기준에 대한 강박관념과 집착이 비슷한 표정을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획일(uniformity)과 통일(unity)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규범이란 틀을 짜놓은 사회는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획일화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외모와 걸친 옷으로 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당당함과 자존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임을 거리를 활보하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요즘, 파리지앵들이 사는 파리시내에서는 양봉으로 인기도 좋고 고가로 판매됩니다. 고색창연한 도심 속에서 웬 양봉일까? 이들은 도시공간에서 벌이 살 수 있도록 해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파리의 명소에서 생산된 꿀들이 그 자체로 고유한 브랜드가 되어 양봉업자에게 수익을 안겨주며, 생산지로 소개된 명소들은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로 대중의 호감을 사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봉이 가능한 까닭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아! 도처에 꽃이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마다, 아파트 베란다에, 카페에, 작은 공터 중앙에, 도로 변에, 버스 정류장 옆에, 빵가게 앞에…………….. 벌들이 자연히 살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농약이 살포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각자의 고유함을 지니고 다른 이의 자존을 인정해 주는 것-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가꾼 도시는 아름다움이 절로 배어 나오게 됩니다. 파리는 파리지앵의 표정으로 빚은, 점잖은 듯하나 찬란한 빛을 발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도처에 어둠을 밝히는 거리의 가로등처럼.        



                                                        정택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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