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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1. 밤을 하얗게 만든 예술의 힘!

정택영



나무들이 하나씩 잎을 떨어뜨립니다. 땅 속 물기가 서서히 말라감을 알아차린 나무들 스스로가 잎자루와 줄기꼭지 사이를 매몰차게 틀어막고 말라 비틀리게 합니다. 햇볕에 그을린 녹색 잎이 수분이 차단된 채 누렇게 탈색되어 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낙엽이라 부릅니다. 낙엽을 보면 누구나 우수에 찬 시인이 되고 숙연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건 아름다운 시가 아니라 매서운 삭풍을 이기고 겨울을 나겠다고 자해하는 그들의 처절한 고통이며 결단입니다. 모든 고통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보상을 받기 마련입니다. 대지는 서서히 식어지며 사람들은 웅크린 채, 조용히 사색의 거리를 거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얻기 위해 함성 없는 투쟁으로 그것을 갈구합니다. 삶의 실존에 필요한 물질을 획득했다고 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님을 많은 이들은 조만간 알아차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환경의 소산이기에 그렇습니다. 결코 환경은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굴레일 것입니다.


파리 거리에 하나씩 낙엽이 굴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파리 사람들은 더욱 차분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유 값이 너무 싸서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며 살수기로 밭에 우유를 마구 뿌려대는 모습, 임금이 적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어느 공공기관 직원의 슬픈 소식과 길가에 스러진 걸인의 갈대같이 파삭파삭 마른 피부를 보고 지나치며 문명과 삶의 질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같은 시각,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이천삼백만 여명이 굶고 있다는 유로뉴스를 봅니다. 공평을 추구하나 공평하지 않은 것이 지구촌의 모습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파리사람들이 이런 불공평과 비애의 지구촌 현상을 보고 숨죽이며 비탄해 하고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밤을 하얗게 밝히는 기발한 창의력으로 빛을 발합니다. 그날은 밤새 내내 찬란한 빛으로 밤을 밝히고 그 구간의 전철은 밤새 내내 운행합니다. ‘라 뉘 블랑쉬’- 하얀 밤 즉, 백야라는 문화예술 축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2002년을 시작으로 이 축제는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12시간 동안 밤을 밝히는 파리시 기획의 예술축제입니다. 이 문화 예술축제가 밤새 내내 진행된다 해서 거리가 광란의 축제로 돌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출신 작가의 비디오작품과 프랑스 작가의 스케이터를 따라 미스터리를 맛보게 하는 비디오작품들, 상투화된 기호와 도표, 숫자 등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와 유머로 비판하는 비디오 설치작품들, ‘키스’라는 제목의 독일작가 사진과 비디오작품들, 광장을 울룩불룩한 여러 봉우리 축소판처럼 만들고 잔디를 덮어 축구장으로 각색한 설치작품 안에서 축구를 즐기며 웃음을 연발하는 어린이와 어른들, 한 사람씩 녹음한 목소리를 40여 개의 스피커를 통해 한편의 장엄한 성가로 연출한 작품은 예술로 인간을 압도하는 향연, 바로 그것입니다.   

파리의 많은 시민들은 가족이나 연인들과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곳곳에서 펼쳐지는 하얀 밤을 거닐고 작품을 감상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공허하게 뚫린 가슴, 채워지지 않는 삶의 갈구,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엇을 예술이 밝혀놓은 백야의 거리에서 한아름 주워 담아 갑니다. 하얀 밤을 지샌 사람들 얼굴엔 감동의 물결이 가득 차 일렁입니다. 


바로 세느강에 비췬 퐁네프 다리의 가로등처럼 말입니다. 

 

                                                            정택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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