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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3. 감사가 배인 사람들

정택영

‘만일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존재한다면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넉넉할 만큼

충분히 넓지를 못하다고 칼릴 지브란은 인간 세상에 대해 일갈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그 헤아리기 어려운 본성의 내밀함과 집착, 소유욕에 대해서

날카롭게 꼬집은 것입니다.

자연의 적은 놀랍게도 인간이라고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친화하라고 지어놓은

이 세상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자연의 얼굴을 잃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상처 나고 파괴된 자연의 몸부림과 신음소리를 여기저기서 듣습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결과물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몸살을 앓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대안을 내놓습니다.

가스배출, 오염, 인구팽창, 무차별 개발 등이 지구를 더욱 아프게 합니다.

살만한 곳을 만들기 위해 솟구친 문명은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삶을 척박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고도로 성장한 문명과 문화가 과연 얼마만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인지

의문을 낳게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환경에 의해 많은 현대인들이 얻어낸 것은

스트레스라는 달갑잖은 병입니다.

 

그로 인해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은 혼미해지며 불안하고 의지할 곳이 없이 방황하고

고독한 많은 이들을 옥죄고 지치게 만듭니다.

이상적인 사상과 소수의 지도자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삶의 질은 그들에 의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이웃들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파리에서 보게 됩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어디나 번잡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비대해진 도시일수록 마찰과 소음은 한층 더 커져 삶이 팍팍해지기 십상입니다.

많은 관광객과 이방인들로 넘실대는 파리는 거리 풍경이 이색적입니다.

주고받는 언어도 몇 십 종이 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말, 중동, 러시아, 북유럽, 인디아, 중국 등 도처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귓전에 들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따스한 인간애와 정을 느끼게 합니다.

모든 시스템이 서민과 대중을 위해 거리의 표지판과 버스 난간의 높낮이가

조화롭게 만들어진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In Paris Street-1, 29.1x21cm, watercolor on paper, 2010

 

메트로 출구 문을 열고 나가 뒤이은 사람을 위해 잠시 잡고 있는 사람들,

부부가 함께 동승한 모습을 보고 자리를 비켜주는 이들,

승객이 많은 러시아워 시간에 좌석을 비우고 일어나 공간을 최소화해 주는 아량,

승강장에 내리는 유모차를 함께 거들어주는 배려,

그리고 오가는 좁은 길에서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 가슴을 옆으로 돌려주는 넉넉한 배려들 ………

그들의 입가엔 언제나 메르시(Merci- 감사)가 배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 듣는 이 감사의 말 속에서 그들의 훈훈한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In Paris Street-2, 29.1x21cm, watercolor on paper, 2010

  

어느 사회든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이 문제입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 사회에서는 살만한 가치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메르시는 ‘자비’라는 말에서 나온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베풂이 있는 사람들, 이 파리에서 그 따스함을 느낍니다.

갓 구워낸 바게뜨 빵집에서 스며 나오는 구수한 향내처럼 그런 냄새 말입니다.

  

                        정 택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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