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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4. 파리- 그 거대한 살아있는 교실

정택영

파리 5구 카르티에 라틴 거리에 솔본느, 파리 고등 사범학교 등 여러 대학들이 자리하고 있는 대학가를 거닐다가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라는 벽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헤밍웨이는 1922년 1월부터 1923년 8월까지 이 건물 3층에서 배우자 헤들리와 함께 살았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의 젊은 날,파리에서의 삶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고 남긴 그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표지판은 아주 견고한 동판에 각인되어 오래도록 보존 가능케 제작되어 있었으며 네 귀퉁이에 나사못으로 고정되어 건물 벽면에 잘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2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파리에서 생활했다는 기록을 건물에 붙박이 판으로 남긴 것을 두고 거리를 거닐며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 후, 파리의 여러 좁은 거리를 지나면서 그러한 표지판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파상,피카소, 볼테르, 앙드레 말로, 발자크와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등.

어느 거리든, 어느 건물이든 필적할 만한 유명인이 거처했던 역사는 아주 선명하게 기록되고 보존되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쉬이 발견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 관한 기록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의 완공 년도와 건축가의 이름, 건축을 시행한 회사 이름이 대리석에 깊게 각인되어 벽돌 사이에 부조되어 있고 각 지역마다 이름 지어진 일화나 역사의 기록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보행자에 방해가 되지 않을 장소에 잘 세워져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표지판은 보통 철판을 잘라 파이프에 용접을 하는 방식으로 성글고 급하게 제작한 것들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모형을 만들고 녹은 쇳물을 주물에 부어 그 자체가 하나의 현대적 조각을 연상케 할 만큼 견고하고 미려한 형태로 제작되어 설치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는 곳곳마다, 시립 도서관이나 또는 멀티 미디어 비블리오 텍이나 공공시설물들에는 반드시 그곳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나 설립자, 시기, 주요 인물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아주 견고하게 설치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질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제작공법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핏, 보잘것없는 일이나 사람에 대하여도 그것이 파리라는 곳에 자리하는 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파리를 잠시 들르는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시의 문화적 풍요로움에 놀라고 문화의 열기에 두 번 놀라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또 놀란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섬세한 관찰을 통해 본 그들의 기록문화를 들여다보고 이해를 한 후에는 그리 놀랄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파리를 ‘꽃의 도시’라 불리게 되는 것이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실임을 느끼게 합니다.



문화Culture 는 경작한다Cultivate 는 말에서 온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과 사고를 경작하고 마음을 경작해야만 합니다. 마음의 밭을 갈지 않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를 심지 않고 열매를 기다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람에 대한 존엄성, 그 사람과 사물에 대한 기록성, 그리고 견고성…. 한번 만들면 몇 백 년은 끄덕 않고 보존되는 그 찬란한 문화의 견고성에 대하여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 생각의 긴 꼬리만큼이나 길게 늘어선 르부르 박물관 앞의 관광객과 세느강의 긴 물줄기가 더욱 길어 보이는 까닭입니다.

 

                                                                                    정 택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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