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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31. 파리-양파 같은 외화내실外華內實의 그 섬세함!

정택영

동트기 전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는 새벽녘, 이른 시간의 모임을 마치고 나온 파리 거리는 구수한 빵 굽는 내음과 갓 볶아 낸 커피 향이 이곳 저곳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찬란한 하루의 대문을 여는 파리의 거리는 언제나 그렇듯,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의 일들을 똑같이 반복하면서 시작됩니다. 평범한 일을 평범하게 하는 일이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 말한 앙드레 지드의 말을 되새기게 하는 정경입니다. 식품   수송차량에서 싱싱한 과일과 막 짜낸 듯한 우유를 가슴에 부여안고 분주히 레스토랑 안으로 옮기는 요리사 앞을 지나, 지금 막 갈아 내린 듯, 코끝을 감미롭게 하는 원두커피 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파리 시내는 이렇듯, 늘 보아왔던 그 모습들의 연속무늬와 같습니다.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 패션을 두른 어린 학생들이 바쁜 총총걸음으로 학교 앞에 가득 메우고 대문이 열리기 전까지 웅성웅성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봅니다. 파리의 학교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만 교문을 개방하기 때문입니다. 들쑥날쑥 교실로 진입해 지난 밤 짧았던 잠을 채우려고 잠시 책상에 엎드린 모습이나, 책상 위로 날아다니며 난장판을 만드는 난잡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길들여진 그들의 질서의식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성숙함을 더해갈 지도 모릅니다. 파리의 학교들을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면 아주 작아 보이거나 학교 시설물들이 별로 갖춰지지 않은 듯 비춰집니다. 그러나 애정 어린 눈빛으로 대문 너머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경이 펼쳐집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다만 대문과 철 담장 바로 가까이에 건물만 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잠시 시간을 갖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도서관부터 과학실험실, 미술실기실, 연주실, 발레실 심지어, 수영장까지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보고는 지금껏 얼마나 주마간산 격으로 파리의 외양만을 보아 왔는지 가슴을 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이 마구 솟구칠 것만 같은 그런 형형색색의 컬러와 조형성을 살려 미려하게 디자인된 건물들과 놀이기구들을 보면서 그 어린이들의 가슴 속에 드리워진 잠재력을 가늠해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퀴리부인 같은 세계적인 화학자를, 아폴리네르 같은 시인을, 발자크를, 메를로 퐁티 같은 철학자를, 어린 왕자를 태어날 수 있도록 꿈이 서려 자라나는 환경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학교 공부는 곧 놀이이고 놀이는 곧 학문이며, 그룹을 지어 만든 과학작품이 곧 꿈이자 곧 출시될 아이디어 제품임을 이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파리 시내 중심가에 웅대하게 서있는 건물들도 막연한 건물더미가 아니라 건축물 하나하나마다 건축디자인이 다르고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클래식한 자연이미지의 부조외벽으로 완성된 건축물들은, 건물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독자적인 입체조형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미 건물이라는 느낌이 아닌, 손으로 만져질 듯, 매우 부드러운 무명천 같은 질감으로 지어져 사람이 그 따스함 속으로 다가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사람 키의 몇 배나 될 듯한 드높은 아치형 대문을 달아놓았는데 그 대문을 여는 순간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 안은 또 다른 길이 있고 또 다른 회랑이 있으며,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대문 안의 길 안에 또 대문이 있고 그 투명 유리창 벽 너머로 높다란 나무들과 잔디밭이 잘 가꾸어진 야외가 건물 안에 조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힘이 있다 함은 겉으로 화려하나 보잘것없는 속이 아니라, 겉의 섬세함과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먼 안목을 예정하고 견고하고 견실하게 맺은 그 열매로 판단되는 것임을 파리 거리에서 보는 것입니다.


월간에세이 2011년 7월호

정택영(화가/프랑스예술가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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