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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20. 퐁 데 자르 다리에 묶어놓은 사랑

정택영

작열하며 부서져 내리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유유히 흐르는 센 강가로 향합니다.

 

파리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강가 주변은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으로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땀을 식히고 지난날 기억의 편린을 더듬게 하는 추억의 정경이 커다란 화폭으로 펼쳐지는 곳입니다. 도심의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강에 자그마치 서른 일곱 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1600년경에 건설된 오래된 퐁 네프 다리부터 최근에 놓여진 시몬느 드 보봐르 인도교 등 그 다양성이란 마치 프랑스 문화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이들 다리 중 네 개는 보행자. 자전거용 인도교 용도로 놓이고 두 개는 지하철 수송 전용 다리로 놓여졌음을 알게 됩니다. 다리의 디자인부터 외곽의 장식물과 조각들, 가로등의 형태, 교각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다양성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를 가늠케 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의 다리든 그것은 무언가 추억과 이야기가 은밀히 스며있는 곳이며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풋풋한 정감을 자아내는 곳이기 마련입니다. 파리의 다리도 그러한 추억 만들기와 이야기가 가득 배어 있는 다리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70년대에 흥행했던 ‘퐁 네프의 연인들’ 영화가 이 다리의 아름다움과 연인들의 구슬픈 이야기가 아련한 실루엣처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다리 이름의 뜻은 ‘새 다리’란 뜻으로 명명되었지만 실은 가장 오래된 다리로 그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름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다리입니다.



퐁 데 자르Pont des Arts다리로 향해 봅니다. 놓여진 지200 여 년도 훨씬 넘은 데 자르 다리는 이름 그대로 ‘예술의 다리’를 뜻합니다. 프랑스 학술원과 르부르 박물관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보행 전용 인도교로 표면은 나무 널빤지로 깔려있어 운치를 더해주어 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이야기 거리를 만들고 가는 모습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포옹하는 연인들,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풍경화를 그려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화가들,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마드모아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외로운 초로의 노인들………….. 


그들의 모습들이 이 예술의 다리를 더욱 예술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리 좌우에 설치해 놓은 철망이 흥미를 끌어 다가가 봅니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자물통들이 철망에 굳게 잠가져 있고 자물통 표면에 여러 가지 사연을 새겨놓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내용들은 거의가 연인들이 ‘사랑해 영원히’ 라는 내용들 일색입니다. 수많은 지구촌의 사랑하는 이들이 이곳을 스쳐갔을 것입니다. 사랑에 열병을 앓고 애간장을 녹이며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무수한 미사여구의 언어들을 토해낸 바로 그런 곳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하며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애절한 사랑의 약속을 자물통에 새겨 다리 난간의 철망에 꼭 잠가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든 그 약속이 지켜지길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를. 사랑은 고뇌와 계약을 맺는 일이며 무한책임을 짊어지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초등학교 아이들의 반이 좀 안 되는 수가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중인 가족이라는 통계를 듣지 않더라도 사랑이란 잠가놓고 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서 시작하여 반감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랑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한 발자크의 말을 떠올리며 센 강물 따라 지나온 사랑의 세월을 비춰보게 하는 것입니다.


월간에세이 2010년 8월호

정택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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