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파리스케치 : 19. 파리지앵의 분별력이 던져준 작은 감동

정택영

삶은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실로 행동한 작은 조각들의 커다란 다발입니다. 한 해의 반을 지내고 유럽사람들은 바캉스를 준비하며 파리로 여행을 온 이들이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파리의 지하철 안은 삶의 숨결을 느끼기에 가장 생동감 넘치는 곳임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그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파리 메트로에서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구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키만큼이나 되는 크고 낡은 첼로를 연주하거나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색소폰이나 트럼펫, 흑백영화에서 본 듯한 아코디언 연주자들, 이동식 미니 벤드를 틀어놓고 서로 다른 악기를 합연하는 이들 속에서 고달픈 삶의 여정을 목격하곤 합니다.

 

 

이들의 연주나 노래가 끝나고 작은 동전그릇을 들고 승객들 사이를 오가는데 그 반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거의 무관심하거나 눈을 감고 또는 책이나 신문을 보며 외면하는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 많이 지쳐있음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어로 대화하는 가족인듯한 대여섯 명의 여행객이 지갑을 열고 몇 닢의 동전을 넣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난 번, 파리 중앙을 가로지르는 메트로 노선을 갈아타고 자리를 잡았을 때 한 이방인 여인이 오르더니 노래를 시작하려고 막 입을 여는 모습이 곁눈으로 보였습니다. 신문을 펼쳐 읽던 나는 노래가 끊긴 것을 이상히 여기고 힐끔 올려다 보았습니다. 노래를 멈춘 그 여인의 시선을 따라 아래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를 태운 푸세트가 있었고 그 아이의 어머니가 그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여인이 노래를 멈춘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푸세트에 잠들었던 아이가 노래 소리에 깜짝 깼다가 다시 잠든 모습을 보고 그 이방인은 노래를 멈췄던 것이고 아이의 어머니는 그 이방인과 눈이 마주치고 있었습니다. 다음 메트로 역에 정차할 즈음, 그 어머니는 구걸하던 가수 이방인에게 ‘메르시(고마워요)’했고 내 옆에 탄 아내가 쥐어준 동전 한 닢을 손에 쥐고 그 여인은 내렸습니다. 메트로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고 그 아이도 잠에 빠져든 모습이 참 평화스러워 보였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거리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급하게 길을 재촉하며 자신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된 언어가 없다면 그 사회는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입니다. 파리라는 사회의 공통언어는 관용이라는 언어와 연대의식이란 언어가 조화롭게 쓰여지는 곳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평등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고 자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신분이 무엇이든 인간의 본질, 즉 인간이 스스로 지녀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많이 갖고 있어 오만하거나 가진 것이 빈궁해 비굴하고 소외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됨과 인격을 스스로 발하고 자존을 경작하는 사람들이 일군 터전임을 알게 하는 곳입니다. 서로의 배려와 사랑- 그것이 참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임을 파리에서 보게 됩니다.

 

‘고립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슬픈 자는 타인을 슬프게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말이 귓전을 맴돌며 세련된 사회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서녘의 노을을 바라봅니다.


월간에세이 2010년 7월호

정택영(화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