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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7. 가격과 가치 사이에서

정택영

파리 중심가 ‘아름다운 마을’이라 불렸던 보부르 Beaubourg지역에 자리잡은 퐁피두센터에서 현대추상의 거장 피에르 술라주 전시가 열렸습니다. 가는 길목 곳곳에는 많은 조각들과 예술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고 찬란한 태양이 조각들 위로 하얗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전시장 바닥에서 천정에까지 닿을 정도의 거대한 검은 캔버스 앞에서 부딪히게 되는 느낌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90 이었습니다. 결코 해독이 쉽지 않은 작품의 표현들은 얼핏 보면 검정색으로 화면을 뒤덮은 듯하지만 콜타르나 아주 두꺼운 안료를 분할된 화면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붓질이 되어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기법이었습니다. 빛을 거부하는 검정 사이에 내재된 역동적인 화면을 통해 우리에게 빛을 선사하는 것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빛과 생명, 환희 등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드넓은 전시장 저 켠에서 어린이들 수십 명이 바닥에 주저앉아 작품을 설명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갔습니다. 일견 칠십은 넘긴 것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아 최대한 몸을 어린이들에 맞춰 낮추고 손짓을 해가며 이 추상작품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뒤 켠에서 들으니 그 설명은 가히 시 낭송에 가까우리만큼 감미롭고 부드러웠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데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저 뒤에 드넓은 들녘이 보이지요? 그 사이를 부드러운 바람이 풀잎 사이로 살며시 불어와 어린이 여러분들 볼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지지요?’ 설명을 듣는 어린이들 얼굴빛에서 한결같이 그 검은 들판에 앉아 감미로운 훈풍의 파도를 느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 이곳 저곳을 자리잡고 설명은 계속 이어져갔습니다. 그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어릴 때 가르치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가치-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모든 것들은 스스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값으로 매겨지게 마련입니다. 많은 이들은 가격과 가치 사이에 서서 갈등합니다. 세상은 이제 정보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시대를 맞았고 사람들은 정보를 찾아 줄기차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세상이 그것입니다. 얼마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는가를 찾기보다 자신의 몸값은 얼마나 되는가가 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학의 전공을 택하는 것도 자신의 적성이나 미래의 비전에 의해 정하기 보다는 어느 분야가 뜨느냐에 따라 전공학과가 정해지며 직업을 구하는 것도 잘나가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입니다. 우선 수입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는 신분과 지위가 가늠됩니다. 소유한 차와 집, 몸에 지닌 패물들과 걸친 옷과 외양으로 보여지는 생김새에 의해 가격은 엄청난 차이를 빚습니다.


 

인생살이는 계획과 세운 뜻에 따라 그대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삶의 묘미일 수도 있고 그러기에 사람들은 좀 더 깊은 사려와 성숙을 요구하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은 때로 아주 모순적이기도 하며 이율배반적이기도 합니다. 가치가 가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분노하고 자신을 괴롭히다가 병을 얻기도 합니다. 널려져 있는 수많은 예술품들의 가치를 이미 알고 소중히 보존하려는 파리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참으로 윤택한 건강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월간에세이 2010년 5월호

정택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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