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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케치 : 16. 상상력으로 낳은 어린 왕자

정택영

오랜 동안 꿈을 그린 자는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한 프랑스인은 앙드레 말로였습니다. 이 말 속에서 세 개의 중요한 의미를 새겨보게 됩니다. 살아있는 자들은 꿈이 있습니다. 소망과 바라는 바가 있기에 모든 이들은 삶의 고비마다 부딪치는 쓰디쓴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 속에 그것을 그려야 합니다. 어떤 대상을 그려보는 것- 그것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워하는 행위를 줄인 것이 그림이고 그림이 줄어 글이 됩니다. 그리워하는 것-그것이 바로 철학 하는 일입니다. 그리워하는 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한두 번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그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잊혀지고 맙니다. 결국 자신이 그리워하는 무엇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것을 그리워하고 그려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워하던 것이 이루어져 수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바로 어린 왕자입니다. 그리고 상상으로 어린 왕자를 잉태하고 세상사람들 가슴 속에 존재케 했던 사람이 바로 리용에서 태어난 생텍쥐페리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로 활동하면서 지구 밖의 세상에 대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별들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모든 어른들에게 감동과 자성을 촉구하게 한 상상 속의 어린 왕자를 데리고 지구로 귀환합니다. 우주인들이 말하는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 그 찬란한 청록색의 검푸른 바다와 누런 대지가 햇살에 비취어 영롱한 빛을 띈 모습을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종종 봅니다. 우리가 서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별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참담하고 참혹한 모습으로 얼룩진 곳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어린왕자가 태어나 잠시 지구별에 머물렀던 그 때와는 이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있고 땅거죽이 곪고 찢어져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생각 없이 추구했던 부와 돈이면 찢기고 무너진 삶의 터전을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구호와 자선이 무너져 내린 땅과 구멍 난 가슴을 복구하기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이들이 기쁘게 살아갈 권리와 자원이 넉넉하게 지어졌음에도 소유욕에 길들여진 적잖은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고 노인의 손등처럼 갈라져 많이 심하게 모질어져 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상상으로 잉태하고 머리로 낳은 어린왕자로 하여금 거칠고 모진 어른들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권위적이고 높임 받기를 원하는 왕을 통해 끝없이 남에게 군림하려고만 하는 어른들을, 자기를 칭찬하는 말 이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허영쟁이를 통해 위선 속에 사는 어른을, 술을 마신다는 것이 부끄러워 그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꾼을 통해 허무주의에 빠진 어른을, 우주의 5억 개의 별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되풀이하여 세고 있는 상인을 통해 물질 만능의 표본 같은 어른을.


그리고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인을 통해 남을 위해 유익한 일은 하고 있으나 기계 문명시대에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 자기 일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른을, 자기 별도 여태껏 탐사해보지 못한 지리학자를 통해 이론 속에서만 사는 행동이 결여된 어른들을 말입니다. 어린왕자는 지구별에서 만난 여우를 만나 세상을 보는 지혜를 배웁니다.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파리의 길거리 이름에서, 책 읽기에 빠진 메트로의 청년들에서, 미술관과 미디어센터에서 턱을 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들 속에서 지금도 살아있는 어린왕자를 봅니다. 그들의 상상이 수백 수천의 자동차와 핸드폰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값으로 그들 품에 안기는 것을 지금 파리 거리를 거닐면서 발견합니다.        


월간에세이 2010년 4월호

정택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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