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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팡세 : 48. 진실은 밝혀진다- 1

정택영

<진실은 밝혀진다 ㅡ 1>

The True Should Be Probed,Thereafter Should be proved!

 

'갤러리 건국'으로부터 개관전 첫 작가로 선정되고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하고 초대전을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초대전시를 마친 후 얼마전, TV방송국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고 작가의 삶과 생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방송녹화 전 저의 화가 이력을 정리하기 위해 지난날의 제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전시회는 1986년 서울프레스센터 1층에 소재한 '서울갤러리'에서 열었는데 세월이 30여 년이나 흘러 첫 개인전 팜프렛을 구할 수가 없어 <한국미술정보센터> 김달진 소장님께 전화로 문의를 하고 구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몇일 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40년 동안 모았던 미술자료와 서류뭉치 속에서 제가 찾고있던 <제 1회 정택영 개인전 ㅡ 보이는 것과 그리는 것 Seeing &Drawing> 팜프렛뿐만 아니라 저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오래된 서류를 자료더미 속에서 찾아냈다며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소식을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첫번째 개인전 팜프렛을 구하게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오래된 서류를 찾았다는 소식에 더욱 놀라 기뻤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질곡이 있으며 자의든 타의든 고통과 참변을 당할 수 밖에 없으며 누구도 이를 피해 갈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일 것입니다.

저의 삶도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젊은 청년시절, 어떤 한 사람의 기만과 거짓에 의해 아주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의 한국의 여러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은 권력자들의 무소불위無所不爲 시대로 한갓 민초의 한사람이자 약자의 약자인ㅡ '을 乙'의 입장에 있던 저로서는 꼼짝없이 그 사람의 농간대로 큰 봉변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진실이 오도되고 땅 속에 묻힌채, 무수한 고통과 고초를 겪게 되었었는데, 세월이 지남과 함께 당시 일은 사람들 입에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설왕설래 오해가 풀려나갔지만 그 '고통의 기억'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김달진 선생이 산더미처럼 쌓인 엄청난 미술관계 서류더미 속에서 찾아냈다는 그 서류는 거짓과 기만을 일삼아 저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바로 그 사람이 '진실을 자백하고 토로한 내용을 자필로 쓰고 우측 엄지손으로 지문을 날인한 서류'였던 것이었습니다.  

간악하고 야비한 인간의 생각과 획책과간계는 찬란한 빛으로 밝혀진 세상을 결코 가리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떤 비밀도, 그 어떤 오해도 결국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햇빛 아래 낱낱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 곧 진실이고 진리입니다.

이제 그가 찾았다는 그 서류 한장으로 어처구니 없이 당한 오해와 곤란으로부터 마침내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여 년 전은 아날로그 시대로, 이 거짓 사기로 야기된 일의 전말을 알리기에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은 오늘, 진실은 결국 아주 쉽게 밝혀지게 되는 것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으며 오해의 눈총을 받아가며 못본 척 그 기나긴 30여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티기에는 보통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참고 또 참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미술계의 안녕을 위해! 

 

자료와 정보의 중요성을 통탄하며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 그 서류를 찾아내어주신 <김달진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쏟아드리며 그가 누구인지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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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뛰며 모은 자료 어언 40여 년!>

 

지난1970년대, 모두가 자신의 인생의 성공을 위해 문과로 이과로 예술계로 청운의 꿈을 꾸며 각자의길로 뿔뿔이 흩어져 나아갔을 때, 앞뒤 옆 기웃거리지 않고 오로지 한길로만 걸어가며 미술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자료를 끌어모으는데 전력을 기울였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대학교수로, 과학자로, 정치가로 발돋움을 하며 각자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 그 사나이는 결코 남의 눈치를 보거나 입신양명을 위해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며 고급승용차와 고급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녀들을 선진국이라는 외국에 유학을 보내고 떵떵거리며 기를 세우는 풍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미술계자료를 모으며 자신의 길을 걷기만 하였습니다.

폭우와 폭설이 길을 가로막아도 앞을 향해 걷는 자에게는 장애물이거나 애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청년을 보았습니다. 구두 뒤축이 닳아빠져 푹 주저앉은 구두와 앞부분은 헤져 양말이 보였습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앞뒤 가리지 않고 체면을 내세우지 않은 불굴의 의지는 오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90년대 IMF시절의어두웠던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2000년대 디지털시대를 우리가 맞이했을 때, 우리는낯선 현대용어와 조우遭遇 했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아카이브 Archive>였고 마침내 그 청년은 미술아카이브 시대를정복한 첫 번째 사람이며 유일한 사람으로 정상에 우뚝 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바로<걸어다니는 미술박사 ㅡ 김달진>선생님 이십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일에 자랑거리로 삼거나교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겸비한 자세로 남을 높이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진 유일한 자산은 성실성!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성실성은 그의 취미이자 특기이며 전문업이자 직업이 되었던 <미술자료모으기>를 중단없이 이어갈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하찮은 일이라 조롱하고 그의 행동거지를 비하하고 깎아내릴 동안 그는일개미처럼, 쉬지 않고 그 일을 지속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해냈습니다. <한국미술정보센터 Korea Arts Archives InformationService Bureau>의 설립! ㅡ

국가의 유관기관도 해내지 못했던 거대한 일을 그가 해냈습니다. 국가유관기관이해내지 못했던 이유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옛날 디지털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미래에 대한대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관료행정의 근시안적 태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돈으로 그까짓것 다 할 수 있다'는 지극히 안일하고 비창의적사고, 이 두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하듯, 그와 그의 생의 동반자는 겸손과 검소의 생활을 통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마침내 서울 한복판에 빌딩하나를 장만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의 미소만큼이나 저의 가슴도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November 15 Saturday 2014

www.jungtak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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