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파리팡세 : 거리의 조형물과 조각

정택영

정택영 드로잉 갤러리 Takyoung Jung's Drawing Gallery







title : Il Ho Lee, sculptor

artist : Takyoung JUNG

size : 30 x 40 cm

medium : ink drawing on paper

year :2020

.............


나는 나의 조국 한국에 귀국하면 먼저 거리를 배회한다.

거리에서 나는 무수한 조형물들을 만나곤 한다.

코비드-19의 팬데믹 사태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 표정을 훑고 읽을 수는 없지만 우울함을 감춘 듯한 그들 표정에서 이 시대의 아픔을 읽는다. 

이런 우울한 표정과는 달리 우뚝 솟은 도심의 빌딩들과 번쩍이는 네온사인들로 날로 발전해가는 듯한 겉모습의 정경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어느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글라스로 외벽을 두른 번쩍이는 현대적 이미지의 빌딩 숲 사이에 여기저기 놓여있는 조각들을 발견하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을 감상한 후 이 작가가 누구이고 명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해본다.

나라가 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 조형물들도 현대적인 도시 이미지에 어울리는 첨단 조형물들로부터 추상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조각작품들이 꽤 많이 설치되어 있어 거리를 거닐면서 삶과 예술에 대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거리의 공공 조형물들이 다 미적 쾌감과 조형적 감각으로 빚어진 아우라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조형물들은 주변환경과는 아무런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있거나 조형물 형태가 시각 장애를 초래하는 듯한 조형물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조형물과 마주칠 때 우리는 차라리 아무 것도 없이 시각의 자유를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더 나은 질적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주위 환경을 조경하고 예술작품을 엄선해 설치하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 생활에서 더없이 중요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작품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작품을 창작해내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예술가는 제 스스로의 이명에 취해 세상에 없는 이상한 세계를 열어간다. 그런데 이런 똥고집은 멀쩡한 현실을 교란시키고 방탕하게 해 마침내 멀쩡한 자들의 권태를 치유하는 괴력을 지녔다.”고 예술가에 대해 일갈하는 작가가 있다.


40년 넘게 조각 작업에 열정을 바쳐 매진하고 있는 이 작가의 조각은 그 이미지가 주는 인상이 넓어서 흥미롭고 깊어서 심오하다. 미니멀적 추상에서 초현실을 넘어 초자연적 우주의 시원과 삼라만상 생멸의 근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조각들의 아우성을 들을 때마다 ‘글쎄 내가 왜 그랬지?’라고 생각하며 업보라고 믿는다고 한다. 한 작품의 살고 죽음은 그 작가의 지혜로움에 달려 있고 그 지혜로움이란 것이 작가의 정신력과 그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의 운 좋은 결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작가는 예술에 대한 자기 철학에 대해, 예술은 사실 혹은 현실로부터 미리 망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예술은 온갖 일상의 잡사를 털어내고 오직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선험적 의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조각가는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설명하려는 것은 철학자가 수락을 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의 해석이 오류에 빠지더라도 장님이 코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듯 내버려둬야 한다.”고 역설하고,

“무한으로 흩뿌려진 우주는 정교하면서도 무자비하다. 그곳은 여타한 이성이나 사소한 감정을 들이댈 수 없는 곳이다.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그곳에는 그 어떤 현묘한 철학도, 얼어 죽을 인간의 휴머니즘도 통하지 않는다.”고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과 예술의 고리를 풀어낸다.

그가 바로 한국의 조각계에 우뚝 솟은 작가 이일호 선생이시다.


“조각은 더디다. 더딘 만큼 천천히 흘러서 조각하는 자의 생각은 느슨하다. 조각은 알량한 것들을 성큼성큼 취하며 숨 가쁘게 달리는 현대미술을 따라 잡지 못한다. 조각이 현대 미술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도 조각하는 자의 시간은 온전하고 충실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선생님의 작업은 인체의 조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물과 불이 하나로 만나고, 현실과 초현실, 현실과 신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나로 통합되는 일련의 상징주의 경향의 작업들로 형상성을 띈 조각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고 깊다고 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들을 실험하고 의미로는 존재론적인 깊이를 탐색하는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엊그제 이일호 선생님을 뵙고 만찬을 함께 즐기면서 한국사회와 인간과 삶 그리고 예술의 담론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작가정신이 무엇인가를 기억에 오롯이 담아두었다.


이 선생님의 그 숱한 조각작품들이 지금 이 시대에 삶에 지쳐있는 기성 예술가들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별안간 유명 작가로 등극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조각이란 무엇인지, 조각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인간의 삶에 있어 조각과 예술작품이 대중들에게 무엇을 던져주어야 하는지를 음식점 조명등에 반사된 번쩍이는 그의 눈빛을 통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길에 과묵하나 주옥 같은 근사록 近思錄 을 기억에 되새기며 감사의 마음으로 이 드로잉을 완성해 공유한다.


통찰이 없는 예술은 사고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며 어둠 속에 명멸해가는 이 선생님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파리팡세 2020>

takyoungjung.com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4254292827946422&set=a.519400914768984&type=3&theater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