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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국립현대미술관은 왜 관장을 뽑는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은 관장자리를 놓고 몸살 앓았다. 아니, 관장실 비워두고 1년 세월을 그냥 보냈다. 공석의 관장, 미술관에 관장이 꼭 있어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실 정부는 신임관장을 위해 고심하는 모양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급공무원 선임은 인사혁신처에서 주관한다. 하여 해당 부처는 관장 공모형식을 통하여 최종 후보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로 보냈다. (아휴, 정부 부처 이름이 왜 이렇게 기다란가. 체육이나 관광이나 크게 보면 다 문화이다. 그런데 문화부문 가운데 핵심인 ‘예술’은 빠져 있네. 이왕 예술이 빠졌으니 그냥 ‘문화부’라고 명칭 변경하면 어떨까. 문화융성시대라고 주장하는 정권이기도 하니.) 문화부는 관장 후보 2명의 명단을 받고 끌탕 끝에 결국 적격자 없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관장 선임 과정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점이다. 문화부는 인사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 국민에게 원성을 자초하기도 했다.
문화부는 다시 관장 공모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 와중에 장관은 외국인 관장을 뽑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지구촌 시대에 외국인 미술관장이란 명분은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2차 공모에 외국인 10명이 관장직에 도전했고, 이들 가운데 2명이 5명의 최종 후보명단에 포함되었다. 미술계에 축구의 히딩크 같은 거물이 존재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내국인 상대의 ‘좋은 관장’을 뽑지 못하고 원성만 자초한 문화부의 처지로서 국면전환용 새로운 카드가 절실했다. 하지만 대부분 여론은 외국인 관장 선임을 반대했다. 국가 정체성까지 들먹이면서 외국인 불가론을 주장했다. (과연 외국인 관장은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 텃세 심한 한국 풍토에서 임기나 다 채울 수 있을까.) 어떻든 관장 선임 절차의 과도한 시간 끌기는 민망할 따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정 관장이 필요한가. 문화부는 관장 공석 기간에 제도를 바꾸어 관장의 역할을 대폭 축소했다. 관장은 인사, 재정권을 비롯하여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관장은 큐레이터 선발, 전시 기획, 작품 구매 등 미술관 고유 업무의 책임에서 배제되어 있다. 신임 관장은 별로 할 일이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관장을 뽑을까. 이제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기왕에 정부는 미술관의 법인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차라리 미술관을 빨리 법인화하여 책임기관으로 ‘독립 운영’을 도모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이제 관장 공모형식은 폐기해야 한다. 관장 공모형식은 떨어져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사람들이 주로 참여한다. 역량 있는 적임자가 응모할 수 없는 구조라면, 이는 국가적으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해답은 간단하다. 미술관 법인의 이사회(명칭은 운영위원이든 아니든 두 번째 문제이다.)에서 관장을 초빙하는 제도의 시행이다. 이와 같은 형식에서의 전제 조건이 있다. 미술관 이사는 권리와 동시에 의무를 실천하는 능력과 사명감 있는 인사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들러리 이사명단은 금물이고, 미술관에 기여도가 높은 인사 중심이어야 한다. 초빙된 관장은 업무 평가로 관장직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능력 있는 관장이라면 관장직을 10년 아니, 20년 이상 ‘봉사’할 수 있다.
나는 관장직만 30년 이상 역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몬테벨로 관장을 부러워했다. 아니, 관장 개인을 부러워했다기보다 미술관의 그런 안정적 제도가 부러웠다. 나는 몬테벨로 관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적재적소’라는 단어와 아주 어울렸다. 이제 우리도 더욱 성숙한 미술관 관장 선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언제까지 ‘촌스럽게’ 관장 공모제도로 만신창이를 연출할 것인가. 특히 지역 공립미술관 관장 선임제도의 경우, 형식만 국립현대미술관을 흉내 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미술관 업무는 호흡이 길다. 전시 하나 제대로 추진하려 해도 몇 년씩 걸린다. 미술관은 단거리 선수의 대기실이 아니다. 관장실만 지키는 관장은 사실 무능한 관장이다. 관장은 대외적으로 굵직한 일, 즉 협찬금 유치 같은 후원제도, 좋은 작품 기증 유도, 대중 참여 교육 프로그램 개발, 한국 근현대미술사 정립, 그리고 한국미술의 국제무대 진출 등 이런 선이 굵은 일에 매진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절실한 시기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서도 버릴 수 없는 의문 한 가지.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관장을 뽑는가. 1년씩 관장실을 비워두고도 미술관 문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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