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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라스코 벽화동굴에서 깨달은 것

윤범모

라스코 동굴벽화의 이희세 복제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라스코 동굴벽화는 정말 세계적인 미술문화의 현장이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동굴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과 함께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 1만 년도 더 넘은 고대 유산은 어떻게 우리 곁으로 왔는가. 사실 이 동굴은 우연의 산물이다. 1940년 마을의 소년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스코 동굴은 바로 경악, 그 자체이다. 동굴 안의 벽화는 세계미술 역사의 첫 자리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중심 동굴은 길이 약 15m, 갈래의 동굴이라 해야 30m 정도로 아담한 규모이다. 이런 크기의 동굴 안 벽면에 갖가지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길이 5m가 넘는 들소를 비롯해 말, 소, 사슴, 돼지, 이리, 곰 등 야생동물 900여 점이 그려져 있다. 새 가면을 쓴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무당일까. 발기된 사내의 그림은 흥미롭다. 아마 여성성기 숭배 시대에서 남성성기 숭배의 시대로 넘어가는 길목의 상징인가 보다.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면서 남성 우위 사회로 변해가는 시대 분위기를 담았는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무엇 때문에 깜깜한 동굴 안에다 그림을 그렸을까. 분명한 것은 미술가의 작품발표를 위한 전시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례와 관련된 장소, 아마 동굴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절실한 염원을 담은 특수공간이었을 것이다. 동굴은 대지의 자궁이 아닌가. 생사를 가늠할 수 있는 특수공간, 동굴벽화의 상징성은 강렬하다. 나는 여기서 라스코 동굴벽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문화재 보존정책과 더불어 관광산업으로서의 활용 문제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문화재 보존정책과 활용의 모범사례
프랑스 정부는 라스코 동굴을 보존 차원에서 폐쇄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관광지 개발은 벽화 훼손 이유로 결국 20년도 되지 않아 문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형 동굴 부근에 복제 동굴을 만들었다. 건축가와 조소작가 등 전문가가 뚫은 동굴, 그것은 원형의 판박이 복제품이었다. 그리고 벽화가들이 참여하여 그림을 그렸다. 라스코 동굴벽화 제작에 한국인 화가도 참여했다는 사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희세, 바로 고암 이응노의 요청으로 동양미술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 도불했던 화가이다. 그는 라스코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동굴 입구의 대작 소 그림을 담당했다. 현재 이희세는 라스코 지역에서 독거생활하면서 노년을 즐기고 있다. 나는 이희세 화가에게 라스코 벽화 제작과 관련된 증언을 직접 들은 바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물론 현지를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특이 사항 하나가 있다. 동굴 입구에는 편의시설이 없다. 심지어 입장권 판매처까지 2km가량 떨어진 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그룹 투어, 즉 일정 숫자의 입장객을 묶어 시간대별로 입장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각국 언어로 안내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다는 점이다. 관광객은 입장권을 구매하고 최소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대기 시간 동안 관광객은 어디에서 기다릴까. 카페, 식당, 기념품 상점 등 마을은 성시를 이룬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라스코 마을의 경제를 살리고 있다. 문화재와 지역이 공존하는 제도, 현장에서 나는 커다란 깨우침을 얻었다. 한국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 문화재 지역에 호텔을 짓고 식당가와 상점가 등으로 북새통을 이루며 소수의 기득권자만 배부르게 할 것이다. 원형도 아니고, 복제 동굴로 이렇듯 문화재 보존정책과 활용방안의 모범사례를 일깨워 주다니!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토함산 석굴암의 입장권 매표를 경주 시내에서 한다고 상상해 보라. 가능한 일인가. 하기야 우리는 아직 석굴암박물관도 없으니, 할 말은 없겠지만. 한불수교 130년, 그래서 한불 상호교류의 해 기념사업으로 ‘라스코 동굴벽화 국제순회 광명 동굴전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스톤 베일 기법에 의해 원형인 라스코 벽화의 재현작업이 가능해졌고, 이런 결과로 순회전시를 할 수 있단다. 남불의 깊숙한 곳, 라스코 동굴벽화의 국내 전시는 관심을 이끌만하다. 하지만 구석기시대 그림을 엿볼 수 있다는 호기심 차원을 넘어 문화재보존 정책과 활용문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게 한다. 이웃과 더불어 공생하는 구조, 이 이상 훌륭한 덕목이 어디에 있을까. 라스코 마을을 산책하면서, 나는 깊은 자괴감과 더불어 경책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라스코의 교훈은 우리 곁에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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