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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누가 가짜그림 사건을 막을 수 있는가

윤범모


천경자 <미인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술계가 시끄럽다. 아니, 한국 사회가 미술계 일로 불편하다. 더불어 검찰과 경찰이 미술계 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참, 희한한 나날이다. 어찌 이런 날이 왔는가. 부끄럽고, 참담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그림도 잘 그려?” 대중은 이런 감정으로 재주꾼 조영남을 좋게 봐주었다. 그런데 조영남은 무명화가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하고, 자신은 마무리와 서명만 해 비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조수 활용에 대하여 조영남은 현대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변명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아니, 미술단체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참으로 희한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현대미술에서 조수 활용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노동력이 아니고 작품의 내용(독창성 등)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저작권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중요한 핵심이 된다. 다만 조영남의 경우는 인기가수의 조수 활용이라는 점, 여기서 사태는 악화되고 증폭되었다. 조영남 사건은 핵심사안에 비해 확대 선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법당국이나 언론 매체 그리고 미술계 모두가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사안이었던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을.

천경자의 <미인도> 사건이 다시 점화되었다. 유족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 사건화했다. 문제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상대의 소송이었다. 생전의 작가는 문제의 그림을 가짜라고 주장했는데, 미술관 등은 진짜라고 주장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미인도> 사건은 한국미술계의 슬픈 자화상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문제를 방기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술품의 진위문제를 법정에서 가려야 할 ‘사건’인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미인도>의 실체를 본 바 없다. 실체는 장막 뒤에 가려져 있고 무수한 소문만 떠돌아다녔다. 엄청난 미인이 미술관 안에 있다고 떠들고 있는데, 막상 그 미인을 본 사람은 없어 문제는 스스로 증폭되고 있다.

이우환 사태는 또 무엇인가. 미술시장에 이우환 가짜그림이 돌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수사결과, 13점은 가짜그림이고 또 위조범까지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데, 문제의 폭발적 핵심은 따로 있었다. 이우환은 문제의 가짜를 두 차례에 걸쳐 감정하고 자신의 진품이라고 발표했다. 아니, ‘과학감정’에 위작 범인까지 구속했는데, 작가는 진품이라고? 물론 여기서 경찰의 작가에 대한 예우 문제도 불거졌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이런 사태까지 맞게 된 한국미술계의 오늘인가. 국제무대와 미술시장에서 생존작가로 최고의 작품가격을 기록하고 있는 이우환, 그리고 한국미술계에 이 무슨 재앙인가.

작금의 미술품 가짜 문제는 항시 가능성 있는 사태라고 본다. 과연 한국에 미술품 감정문화가 정착되어 있는가. 정답은 없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표현이다. 나 또한 미술품 감정위원을 지낸 바 있고, 또 감정가협회의 회장까지 지낸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 미술품 감정에 대하여 할 말 또한 많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미술품 감정가라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전문가는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권위 있는 감정가’라고 자처하면서. 나는 없다고 본다. 특히 생업으로서의 미술품 감정가는 전무한 현실이다. 그러니 무슨 미술품 감정? 수십 년 뒤 현재의 미술관(국립 등) 소장품 전량을 정밀 감정할 때, 과연 모든 작품이 진품 판정을 받을까. 나는 부정적 대답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런가. 미술품 감정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작가에 대한 전문학자의 부재(不在), 미술품 재료의 집성을 위한 자료실의 부재, 과학적 기자재의 실험실과 전문 미술요원의 부재, 주요 작가 카탈로그 레조네의 부재, 권위 있는 감정기구의 부재, 분야별 전문성 있는 감정가의 부재, 미술품 소장가에 대한 사회적 예우의 부재 등등. 전문성 부재의 미술계 현실은 ‘사건’을 피할 수 없다. 제2의 천경자와 이우환은 얼마든지 속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불행한 한국미술계의 현실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한 한국미술계! 우울한 계절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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