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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근-비어있는 공간에 삶을 담는다

정영숙

'사진조각가' 고명근 
비어있는 공간에 삶을 담는다
사진과 조각을 융합해 '제3의 공간'을 탐색하는 실험적 작업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서울삼청터널을 지나 부암동 주택가 골목으로 올라가면 중턱 쯤에 고명근 작가의 작업실이 보인다. 주택을 개조한 내부는 작업환경에 적합하게 변형돼 작업공간, 연구실, 그리고 작품을 보관하는 옥탑방으로 나뉘어 있다. 옥탑방 창문 밖으로 야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주택가 풍경이 펼쳐진다. 화창한 날에는 평온한 경치를 바라보며 작업으로 쌓인 피로를 푼다.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작가가 활동하기에 편리한 도심 내에서 맑은 공기를 찾아 선택한 곳이다. 
 작가의 방에서는 중견사진작가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진행 중인 작업들을 제작하는 현장에는 작업도구들이 눈에 더 띈다. 작업실 탐방의 묘미가 이제부터 시작된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데 테이블 위쪽에 환풍기가 보인다. 고기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색의 둥근 쫄쫄이를 작업환경에 맞추어 설치한 것으로 마지막 작업 공정(인두로 면과 면을 연결한 때)에서 환기를 하는데 필요한 도구라고 한다. 그 밖에도 신기한 작업도구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다른 사진작가의 작업실과 다른 풍경은 작업 방식의 차별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환풍기처럼 특수한 용도로 제작된 필름 출력기와 고급 HP출력기는 작업의 특수성을 가늠케 하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이다. 인터뷰 중에 그가 테크놀로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가는데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얼리어답터에 가깝다.그가‘사진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서 출발되지 않았을까. 그의 작품은 사진을 찍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렇지만 찍은 사진을 암실에서 인화하지 않는다. 찍었던 많은 사진은 종류별로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화가들이 캔퍼스 옆에 물감을 나열하듯이, 그는 컴퓨터 내에 찍은 사진을 나열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배치하며 고유한 느낌을 찾아낸다. 화가들이 드로잉으로 표현대상을 밑 작업 하듯이 말이다.

뉴욕, 사진조각의 시작 
        
 작가는 1988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M.F.A). 그 당시 현대미술은 미국을 중심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이 주류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터, 바젤리츠, 안젤름 키퍼 등 독일 작가는 신표현주의(New expressionist)에서 강세를 보였고, 트랜스 아방가르드(Trans Avant-gard)란 명칭으로 프란체스코 클레멘트, 산드라 키아 등 이탈리아 작가는 표현적, 혼합적 성향이 주축이 됐다. 쥴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살르 등 뉴욕에 거주하는 뉴 페인팅(New Painting) 작가는‘혼성모방’의 형식으로 전통을 파편화하고, 심지어 해체해 새로운‘양식’과‘역사’를 만들어갔다. 1984년경 사진분야에서는 사진개념주의, 사진의 역사 및 사진이론에 관한 글쓰기 방식이 등장하고, 동시에 시간적, 공간적 차원을 기록하는 매체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점차 개념적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는 국내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였으나 유학 중에는 타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통합적 커리큘럼에 의해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사진, 필름, 설치 등을 자유롭게 공부했다. 조각 작업이 대체로 제작기간이 길었던 반면 사진은 낮에 찍어서 밤에 인화해 완성된 작품을 빠르게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즉시적인 결과물로 인해 다양한 장소를 촬영하고 인화방식도 풍부하게 실험할 기회였다. 특히 낮에 본 건물을 찍은 이미지를 인화할 때 더 또렷해지는 짜릿함이 점차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공을 사진으로 바꿀까도 생각했으나 조각과 사진을 동시에 표현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귀국 후 1997년, 페이퍼사진을 나무구조물(건물적 형식)에 부착한 입체적 사진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그가 선택한 이미지는 뉴욕, 브루클린 등에서 촬영한 오래된 건물들이다. 당시의 팸플릿을 보자 곧바로 직접 작품을 보고 싶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응접실 옆 작은 방이다. 보여준 작품은 원형으로 제작된 구조물이다. 표면은‘문’을 찍은 사진과 부분적으로 오브제가 부착된 회화적인 터치감이 인상적이다. 작은 방, 이곳에는 작품 한 점만 놓여있고 앞쪽에는 오디오 시설이 돼있다. 중형정도의 스피커와 턴 테이블, 그리고 CD.. 독일의 베이스바리톤‘한스 호터(Hans Hotter)’의 노래 중 명곡‘보리수(Der Lindenbaum)’를 들려주었다. 음악감상은 작가에게 외로움을 이겨내고 풍성한 정신적 교감을 안겨 준다. 음악 감상의 시작은 원로사진작가인 주명덕 씨로부터 접하게 됐고, 음악에 조예가 남다른 황규태, 강운구 작가의 작업실에서도 배우며 감상했다고 한다. 인터뷰가 2시간 이상 진행 될 즈음 한스 호터의 음악은 귀에서부터 마음으로 전해지는 힐링의 순간이다. 작가는 처음 시설을 갖출 때보다는 빈번하지 않지만, 여전히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할 때 안정감과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가 주관하는 문화예술지원 사업 중 <Korean Artist Project>에 고명근 작가가 선정됐다. 인터넷 웹사이트의 온라인 미술관 구축 프로젝트에 5분 정도의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그는 사진조각을 통해 조형적 차별화를 시도했고,“텅 빈 공간”에 대한 화두는 작품 내용의 핵심이다. 



Building with Trees-8
61x39x33cm film, plastic 2012-2008, 뉴욕

꽉 찬 이미지와 비어진 이미지

 그는 인터뷰에서“세상은 그저 이미지이다.”,“그저 비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을 중심으로 집(건물), 몸 그리고 자연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아카이브를 보며 작품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서재 옆 책상 위에서 작가는 모니터를 보며 설명한다. 20년 이상 촬영한 사진들이 종류별, 시기별로 정리돼있다. 테이블 위에 있는 <Chamber-9>에 사용된 몸의 이미지는 런던에 위치한‘빅토르&알버트 뮤지움’에 대리석 누드조각을 촬영한 수십 컷의 이미지 중의 한 컷이었다. ‘몸’의 이미지는 서양 근대의 인체조각이 중심을 이룬다. 사실적이지만 그 당시 조각가에 의해 이상화된 몸. 실제의 몸이 아닌 허구의 몸이다. 그가 제시하는 허구의 공간을 만드는데 그 시대의 인체조각은 아주 용이한 소재이다. 대리석으로 깍은 매끄러운 누드조각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후 아카이브에 저장해 여러 차례 관찰하고 비교하며 최후에 결정적인 한 장면을 선택한다. 
 이런 과정으로 필터링된 이미지는 다섯 겹을 하나로 압축한 인화지 위에 특수 제작된 기계를 통해 출력된다. 다음으로 <Building with Tree-8>은 언 뜻 보면 2층 건물로 보인다. 건물은 첫 사진조각의 주요 콘
가의 터치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그러하기에 초현실적인 분위기도 얼핏 보이면서 이미지로 감춰진 빈 공간이 투영된다. 과거 작업은 건물, 몸, 자연이 각 독립 테마로 표현됐다면, 건물과 자연이 섞이는 공간처럼 현재는 몸과 자연 몸과 건물이 혼용되는 공간, 제 3의 공간 탐색이 시작된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몇 해 동안, 작가는 지역·문화적 특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마도 건물을 찍으면서 여백(공간)을 보았고 그 속에 자연이 비쳐지는 과정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장소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그는 조금씩 진도가 나가는 과정을 즐긴다. 오전 9시경, 거의 유사한 시간에 출근하고 저녁 7시경 퇴근한다.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에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탐색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이러한 과정을 규칙적으로 행하면서 작업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발명품처럼 뭔가 대단한 것을 창작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것, 그 안에서 보람을 찾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단순 반복적인 노동의 가치를 즐기고 기계적인 과정을 즐기는 것이 그의 작업태도이다. 그는 사진조각이 완성되는 마지막 공정, 환풍기 아래에서 인두로 면과 면을 고정하는 순간, 그 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된다고 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경지, 일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경제학자 토트 부흐홀츠‘러쉬’의 주장이 작가의 작업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5 여 년 전 투명한 디스플레이 장치를 개발하고 사진과 조각을 융합하여 주목을 받을 때에 비해, 지금은 중년 작가로서 꾸준히 지속하고 조금씩 변하는 자연스러움을 즐기는 여유가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지향하는 작품 내용 “세상은 비어 있고, 이미지로 만들어져 있다”와 연결된다. 그는“공간에 사진을 넣기보다는 공간에 이미지를 넣은 것이 정확하다. 필름으로 구조를 만들고 필름 자체가 어떤 골격이 되고 본체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은 이미지로써 공간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딱딱한 물질이 시간이 지나면 먼지로 변화고, 시간 또한 찰라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유공(有空)의 중도(中道)에 맞닿는 비유(非有)이면서 비공(非空)의 뜻이 포함돼 있다. 꽉 찬 이미지로 만들어진 투명의 공간은 가득 차 있음과 동시에 비어 있음의 공간이다. 그가“진실을 찾는 작업(work seeking the truth)”은 허구의 공간에서 유공의 공간을 찾는 길이다. 

 
1                                                                   2
                             
3                                                     4
                                                                    
1. Chamber-9 40x27x12cm film, plastic 2012-2006 런던
2. Room-17 66x44x35cm film, plastic 2012-2006 파리,2010 샌프란시스코
3. Chamber-4 40x30x20cm film, plastic 2009
4. Building with Trees-6 56x45x26cm film, plastic 2012-2010, 강원 태백시

 
1. Water 4 50x38x38cm film, plastic 2009                      2. Stairway 7-1 190x80x80cm film, plastic light, 2011

일상,진실을 찾는 직업

“작가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작가는 당황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의 영감의 산물이라고 착각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유년시절에서 대학 때까지 두각을 보였던 많은 작가 지망생이 40대 이후까지 작업을 지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작업을 꾸준히 해도 주목받는 작가가 되는 확률은 낮다. 
 예술가에게 예술 행위는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그리고, 찍고,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어제 생각하고, 한 달 전에 생각한 것을 조금 얻는 것, 한 걸음, 한 걸음 벽돌을 쌓듯이 앞으로 나아갈 때, 예술이 뭔지 살짝 보인다.” 
 작가로부터 이런 답을 얻었다. 덧붙여“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때문에 날마다 작업실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그가 매일 작업실에 가서 지속적으로 노동하는 시간, 그것은 '진실에 대한 정의'를 찾아가는 수행의 길이다. 
 장시간 동안의 인터뷰에 대한 피로를 풀고 작업 공간을 다시 관찰할 겸 1층에서 3층을 오르내리며 미쳐 못 본 작품도 감상하고 특별한 작가의 방도 살펴보았다. 광대한 바다 풍경을 담은 부조형식의 'lake-4.1'과, 부암동 뒤 쪽 숲의 풍경을 담은 반원형의 입체 'Forest-16', 그리고 바탕에 LED를 설치하여 빛과 조응하는 입체를 표현한 'Stairway7-1' 이 눈에 띈다. 
 이 중 몇 작품은 개인전(2013년 2월,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소재에 관심이 크다. 그가 10여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 특수 제작 필름은 기술의 발전에 의한 것이다. 앞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필름에 담아내는 테크놀러지 기술이 나오면 작업에 차용할 예정이란다. 신기술의 도입은 작업 과정의 변화를 가져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접하는 관람객은 사진이면서 조각이고 풍경이면서 인물이 담겨있고, 단면이 아니라 옆과 뒷면도 들여다보게 하는 방식에 호기심으로 접근한다. 투명필름에 이미지가 담겨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 존재로 인해 투명한 공간에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공간의 유희가 점차 증폭돼 나아간다.      
                                                                                                                                     월간중앙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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