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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국-백자인체조각

정영숙

백자인체조각 

- 재료의 확장을 넘어서



정영숙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갤러리세인 대표)




백자로 만든 인체 조각은 이헌국 작가의 40년 도예가의 길에 새로운 시작이다. 인체 사이즈와 흡사한 백자입상은 기존 국내 도예계에서 볼 수 없는 시도로 현대도예 역사에 기록 될 의미 있는 작업이다.  

2008년, 제8회 개인전에 발표한 [사람과 사람]시리즈에서 백자로 흙의 속성에 충실하고 변형된 추상 인체를 표현했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흙의 재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으로 풍선을 이용했는데 수축과 팽창을 자유롭게 구현하여 흙의 본능을 이끌어내었다. 겹겹이 변형된 형태는 뚜럿한 형상이 아닌 몸체, 얼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결합된 추상적 인체로 보여진다. 대부분 백자에 투명유로 소성한 작업으로 흙으로 빚는 사람에 대한 작가의 관심 방향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같은 해 연이어 발표한 [인간미학]전시에는 ‘나의 자화상’, '함께 하는 사랑’, ‘춤추는 사람’, ‘흐뭇한 시간’ 등의 작품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감성적이고 따듯한 인간애를 표출한 방식이었다. 이 시기로부터 10년 전, 1998년에는 [잉태와 생성]을 주제로 개인전을 발표한바 있다. 휴머니즘 사상의 근간에는 1990년에 출생한 쌍둥이 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의 삶의 오롯이 작품에 반영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더러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생명 탄생과 조형도자의 형태적 실험, 공간의 확장을 꽤하게 되었다. 작가는 “도자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갖는 의문이지만 도자기의 속을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이 자연적으로 일게 됩니다” 라고 그 당시 작업에 대한 태도를 말한바 있다. 개인적 삶의 경험과 조형도자의 실험정신이 융합된 결과이리라. 원형 항아리 형상에서 증폭된 많은 기형의 결합은 무한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이처럼 도예가로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실험성은 동양의 정신을 담아내는 ‘생성과 한얼’ 을 통해 반영하며 그 후 작업에도 적극 드러내고 있다. 

2010~2012년 발표한 작품은 재료로는 백자를 사용하고 표현방식으로 기존에 발표한 생명과 생성의 주제를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전진하였고 특히 주목 할 점이 타 재료와의 적극적인 융합이다. 최근에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다종(多種) 혼성의 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로 인해 하이브리드 현상은 대중문화로 이동하며 하위문화(sub culture)가 부상하였고, 한편 영상과 정보통신매체의 발전은 수용자의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디지털문화를 이끌며 아날로그와 접목을 통해 통섭(統攝)문화가 형성ㆍ진화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변화를 능동적으로 작품에 반영하는 이헌국 작가의 뉴트렌드 정신이 돋보인다.        

첫 번째, 작가의 뉴트렌드 정신은 도자기와 유리의 융합이다. 이미 2010년 시그마창립기념전을 개최하였다. 도자 ㆍ유리예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로 재료의 융합을 넘어 미의식의 확장을 꽤하였다. 이는 예술가의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조형어법을 얻기 위해 재료의 유기적인 결합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도자표현영역의 확장이다. 흙을 이용한 인체 표현은 동⦁서양의 역사에도 새로운 일은 아니다. 신라시대 토우, 서양 조각 역사의 시조라 불리는 여성의 인체를 표현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조각에 용이한 대리석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인체조각이 표현되었으며, 브론즈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대 조각가들이 대형화하는데 용이한 재료로 사용한다. 이와 같이 대리석, 브론즈, 나무 등을 넘어 최근에는 스테인레스나 철 등의 재료로 대형화하는 인체를 표현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백자는 예외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백자로 작업하며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형태를 표현하였기에 흙의 역량을 넓히고 깨지지 쉽다는 고정 관점에서 벗어난 백자 인체를 만들고 싶었다. 또한 현대미술가들이 온갖 재료를 혼용하여 기존과 다른 표현성을 찾아가듯이 도예가들도 흙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도예가로 활동한 40년전을 준비하며 몇 해 전부터 구상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경덕진으로 떠났다. 대부분 견고한 대리석, 브론즈로 조형화된 기념조각에 도전한 것이다. 





세 번째, 백자로 기념비 조각을 제작하다. 기념 조각은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트, 그리스 로마 조각의 인물조각과 르네상스 시대 천재 조각가의 활동으로 이상적인 조각이 주를 이루었다면, 19세기 로댕에 의해 동시대의 인물조각이 표현되면서 리얼리즘 조각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조각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종교적인 성향이 주를 이루다가 현대조각에 이르러 인물조각이 본격적으로 제작면서 기념조각은 어느 인물, 사건 또는 어느 시대를 영구적 기념하기 위하여 예술적으로 표현한 조각물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시대 감정이나 의식의 산물이자 민족성과 얼이 담겨져 있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기념조각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건립된 것과 기념비적 조각으로 구분한다면 이헌국의 백자인체조각은 실용적 목적에 부합된 입상이다. 인물조각은 역사적 고증에 의해 인물의 위대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념조각상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기념하기 위한 장치로 이용하기 위해 세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가 입상으로 표현한 인물은 7분이다. 1900~2000년까지 우리민족의 고난의 길을 갈 때 국가의 소중함을 강조한 분들로 선정했다. 작가가 인물을 선정한 기준에는 “그 대상이 갖는 객관적이고 정치적, 사회적 인식 이상으로 현대 우리의 삶에 힘을 주고 정신적 터전을 갖춘 인물의 긍정적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자 했다” 라는 작가의 글로 알 수 있다. 헤겔은 “조각은 물질적 성질을 초월하여 그 속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은 것이다'라고 했다. 입상과 반신상으로 주요 인물들의 정신성을 표현하기 위한 재료로 선택된 잘 정제된 백자는 인간이 갖는 고귀함과 순수함을 표현하는 최적의 흙이다. 

김구 선생 입상은 독립운동가 정신을 오롯이 담아 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김구 선생이 즐겨 입었던 민족적 특성이 강한 흰두루마기와 한 쪽 손은 앞으로 향하게 하여 남북을 하나이기를 염원하는 평화적인 제스처와 또 다른 옆구리에 단단히 대고 있는 손은 지도자로서 자의식의 강조한 표현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입상은 대한민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자유주의 정신을 강조한 부분 이외의 행적으로 음양이 교차하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형태와 겸손함을 느끼게 하는 형태이다. 전 대통령 박정희 입상은 강대국의 열강 속에 자주적이고 산업화를 이끌었던 새마을 운동에 동참한 국민에게 소박하게 다가가서 인사하는 형상이다. 손의 높이를 낮춰 권위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기도 한다. 정치인 외의 종교적 지도자로는 김수환 추기경 입상이다. 스스로를 낮추어 바보 김수환으로 애칭을 받으며 소외된 이웃과 병자를 치유하는 우리시대의 우리들의 안식처로 추기경은 두 손은 앞으로 내밀어 사랑을 나누는 고귀함을 조형화한다. 불교계 지도자로는 법정스님 입상이다. 철저히 나눔과 무소유를 실천한 고귀한 정신을 담아내어 후세에 전달하고 싶은 염원으로 남루한 옷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한 모습이다. 기업인으로 현대건설의 창립자 정주영 입상이다. 불굴의 의지로 기업을 일구고 특히 남북의 소통에 기여로는 소떼를 이끌고 분단경계를 넘는 장관을 연출하고 금강산관광 사업을 진행한바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주머니에 금강산 산 형태를 표현한다. 다음으로는 작가가 경희대학교 설립자 조영식 박사의 입상이다. 세계평화는 교육과 민주화로 이어짐을 강조한 사상을 높이 든 손을 통해 표현한다. 학생들을 마주칠 때도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던 실제 모습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렇듯 정치가, 종교인, 기업가의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여 백자로 기념인체조각으로 발표하는 방식은 처음이다. 또한 기념조각은 대부분은 의뢰를 받고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헌국 작가는 40년 도예가의 일생을 종합하며 도예 영역의 무한 확장을 꽤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이다. 인물 선정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은 백자로 180cm의 입상을 수차례 실패 거듭하여 결국은 두께 1,2cm의 얇고 견고한 백자인체조각이 완성한 것이다.  

1978년 첫 개인전 이후 지속적으로 발표한  작가의 창조적 에너지와 실험정신은 작품으로 응축되어 드러났다.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 발표된 작품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백자인체조각에 있다. 도예가로서 재료적 실험과 더불어 무엇을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드러난 것이다. 한편으로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후학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학교발전과 가르침은 도자문화에 활동하는 제자들과 젊은 도예가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어 자양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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