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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효-'내 작품이 책상과 의자가 되어도 좋다'

정영숙


‘환경조형 예술가’ 이재효 

'내 작품이 책상과 의자가 되어도 좋다'


내 작업의 절반은 자연의 솜씨...

나무와 낙엽을 오브제로 섬세한 손길과 시간을 결합하는 조각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위치한 이재효작가의 작업실은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대한 작품들 때문인지 흡사 거대한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1, 2층으로 이어지는 작품창고에는 나무, 철, 낙엽, 나뭇가지 등 재료의 특성을 이용한 입체작품이 디스플레이 돼 있고 2층의 한쪽 공간에는 드로잉 작품들이 보관돼 있다.


 작업공간을 갖추지 못한 일부 중견작가와 비교한다면 그의 작업실은 호화롭고 웅장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겠다. 그는 1990년 초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금의 장소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친환경적인 환경이 작품의 영감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합천해인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이곳이 고향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숲속을 거닐고, 낙엽을 밟으며, 자연스레 자연과 동화되어 갔고, 그는 대리석이나 브론즈보다는 낙엽, 나무, 나뭇가지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든 작업 재료를 자연으로부터 구했다. 나무와 나뭇가지, 떨어진 이파리, 크고 작은 돌, 풀 등이 작품의 주요 오브제가 되었고, 가끔은 못이나 볼트, 철제 와이어와 철근을 이용한 작품도 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컨셉트가 탄생했다.

“나뭇잎을 돌돌 말아서 구형으로, 무수한 나뭇가지를 결합해서 구형으로, 통나무를 휘어져 보이게 세밀하게 가공하여 다시 구형으로, 나뭇가지를 직사각형으로, 나뭇잎을 아주 긴 직사각형으로 이처럼 새로운 재료에 최적의 형태를 찾아가는 것이 저만의 조형성입니다. 재료에 따라 크기와 두께를 발견하고 그 성질에 맞게 형태를 찾아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나’가 아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작품


 다양한 모양의 나무를 집적해 둥근 구 형태로 만든 나무작품이나 나무에 박은 못을 구부리고 찌그러트린 뒤 표면을 마모시켜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낸 못 작품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대형호텔이나 병원로비, 관공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도 자주 눈에 뛴다.

 그를 유명작가의 반열로 올려준 작품은 파격적인 실내장식으로 개장 당시 화제를 불러모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 레스토랑의 ‘미로(maze)’다. 누구보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존중했던 W호텔 레스토랑 측은 그에게 전권을 주면서 진입로를 미로처럼 만들어 달라는 주문했다. 그는 개인설치 작업을 하듯 최적의 작품을 설치했고, 일약 유명 작가가 됐다. 이후, 그는 국내 미술계와 공공기관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건물에 공공미술 설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63빌딩,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등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MGM호텔, 스위스의 인터콘티넨털 호텔, 대만과 독일 베를린에 그랜드 하얏트 호텔, 중국 상하이와 미국 워싱턴 DC의 파크 하얏트 호텔 등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기계가 아닌 작가의 섬세한 손길로 하나하나 가공되고 결합된 시간의 흔적이다. 때로는 공예성이 부각되다 보니 아트퍼니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구형처럼 보이는 의자, 원기둥처럼 보이는 테이블 등 가구로 쓰일 수 있는 실용성이 부각된 작품도 다양하게 제작된다. 그는 ‘아트퍼니처’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는 않지만 “내 작품이 테이블이라면 많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낼 줄 알아야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의 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나’가 중심이 아닌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정신이다.”

 유년시절 선친이 운영하는 기와공장에서 흙을 만지고 놀면서 공예에 취미를 붙였다는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대학입시 때도 다른 입시생보다 월등하게 빠른 시간 안에 데생을 완성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오랜 무명시절도 그에게는 큰 도움을 준 듯하다. 대학졸업 후 1년 동안 150여 점을 작품을 만들며 오직 작업에만 매진했다. 그 시기에 작품 철학을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뭘 만들면 될까?”라는 질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0121-1110=107041, 520x520x520cm, Wood(big cone pine), 2007


0121-1110=106092, 100x100x340cm, Steel(reinforcing rod), 2006


한국 현대미술을 북한에 소개하고 싶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대상에 관심을 갖고 자연과 사물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작업장을 둘러싼 자연과 사물을 이용해 기발한 소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이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작품에 대한 고민의 밀도 때문일 듯 하다. 

 그는 얼마 전에도 중국 베이징에 건설 중인 대형 건물에 작품설치를 위해 중국을 다녀왔다. 그는 귀국길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500여 마리의 소를 이끌고 판문점을 지나지 않았던가.’ TV를 통해 지켜본 그 광경은 그 어떤 퍼포먼스보다 강려한 것이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민간차원의 순수 미술이 판문점을 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북한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는 완성된 작품을 트럭에 싣고 양평 작업실에서 서울로 옮기다 보면 운전자와 행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거기에 착안해 자신의 작품을 차량에 싣고 판문점을 넘어,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넘어 중국 베이징까지 가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북한으로 향하는 장면을 상상만 해봐도 황홀하다. 요즘에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구상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고 한다.

 박사 출신이 흔한 국내 미술계에서 그는 해외유학을 하지 않고도 대중이 공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용기만 있다면 학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에 몰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중국에 갔을 때 30여 명이 초대받는 식사 자리에 갔는데 인원수대로 큰 수박이 한 덩어리씩 후식으로 나왔어요. 사각형으로 깎아져 나온 수박을 보니까 갑자기 작품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수박을 구형으로 깎았죠.”

 이쯤 되면 그의 일상생활은 작품 구상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시도 창작의 열정이 식은 적이 없다. 새 작품 재료를 발견했을 때도 곧바로 조형을 탐색한다. 그때그때 눈에 띄는 재료를 드로잉하고 작업한다. 밤새 혼자 사색하고 새벽에 잠드는 것이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오랜 습관이다. 비몽사몽 간에 앉아서 생각을 집중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것을 적절하게 선택해서 작업으로 옮기는 것이다.

 유명작가의 일상은 늘 바쁘고 복잡할 듯 하지만, 그의 삶은 의외로 여유롭다. 작업실의 스텝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는 “작가는 한가로울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마음을 비울 때 작업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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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121-1110=1090312, Diameter 65~130cm, 6 pieces. Wood(chestnut & big cone pine), 2009

0121-1110=102101, 350x350x350cm, Wood(larch), 2002

0121-1110=106111, 320x100x320cm, Wood(chestnut), 2006

월간중앙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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