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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창현 / 경험의 현상학적 환원

정영숙

방창현 -Monolog

경험의 현상학적 환원


정영숙(경희대학교 겸임교수, 갤러리세인 대표)


 인간의 삶은 경험의 연속이다. 경험하는 방식은 인간의 뇌와 무의식을 통하는 마음의 작용과 몸의 감각을 통하는 직접적인 반응, 그리고 마음과 몸의 통합작용으로 볼 수 있다. 경험철학자 존 듀이는 행위와 사고가 모두 경험 속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통합적 일원론적 견해를 주장했다. 미술가 중에는 개인의 통합적인 경험을 조형언어로 시각화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방창현 작가는 지각과 기억의 인식을 작품으로 조형화한다. 주관적인 경험에 의한 감정적 인지를 이번 전시에서는 ‘독백(Monolog)’이라는 주제로 담아낸다.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감정의 농도, 몸을 관찰하는 감각의 촉(觸), 오래전 기억의 편린에서 끌어올린 내면의 생체기 등을 인지론적 측면과 유물론적 측면을 시각화한다.

 작품의 핵심적인 조형적 특성은 콘트라스트(contrast)이다. 사물의 성질이 음양(陰陽)으로 구분되듯이 부드러움과 강함, 밝음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한 것이 상생과 상극을 이룬다. 첫 번째가 건축적 구조(공간)와 동물의 공존과 전화(轉化)이다. 기학적인 건축 구조는 미니멀하다. 이중적 공간과 층위의 개념이 간결한 선으로 함축된다. 이와 같은 형태는 7년 전부터 시작했지만 소성 후의 실패율은 줄어들지 않다고 한다. 소지와 유약, 불의 온도를 수없이 실험하지만 작가가 원하는 기하학적인 구성을 맞추기에는 도자기는 너무 까다롭다. 완성작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작품의 개념이 중요하다면 재료적인 특성을 달리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 질문을 던졌다. 작가는 '미국 대학원 시절엔 흙과 유약이라는 재료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작가의 컨셉을 표현하는 미국의 교육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미술계에서 경쟁하려면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가장 도자기적인 것이 미술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 한다. 브론즈, FRP 등 실패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있음에도 도자 재료를 고집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재료로 담은 조형적 방식은 타 작가와의 차별화의 시작이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는 원동력이 된다. 동물의 형태는 돼지가 중요한 상징을 띄는 주요 형상이며 사슴, 당나귀, 산양도 몇 점 있다. 건축물이 기하학적이면 동물은 유기적인 형태이다. 건축적 형태와 달리, 동물을 표현하기에는 흙의 물성이 더 없이 좋은 재료이다.

 두 번째는 색의 이중성이다. 검은 색은 태양의 빛을 수렴하고 흰 색은 태양의 빛을 거부한다. 붉은 색은 양(陽), 파란색은 음(陰)으로 상징된다. 작품에서는 건축물이 밝은 색이면, 동물은 어두운 색으로, 건축물 내에서도 면과 면을 구분하여 단일 색과 꽃 무늬를 혼용한다. 유약으로 코발트유와 러스트유를 주로 이용한다. 파란색과 녹색의 건축물 구조 위의 흰 동물, 꽃 무늬는 붉은 색, 파란색, 그리고 금색을 대조적으로 표현한다. 기하학적인 선과 유기적인 선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듯이 따듯한 색과 차가운 색, 원색과 단색의 대비가 작품마다 절묘하게 드러난다.

 세 번째는 조각과 글자의 결합이다. 은유와 역설을 개념화하는 시각적인 중요한 장치이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구분 되듯 인간에게도 겉으로 들어나는 성질과 안에서 잠재된 다른 성질이 존재한다. 작가는 예민한 촉각으로 인간의 양면성을 읽어낸다. 이를 은유화하는 장치가 동물이다. 겉으로는 유순하고 착한 동물들을 선별한다. 그리고 '당나귀가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냥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 유추한다. 동물의 몸에 내면의 목소리를 옮겨 놓는 장치가 글자이다. 'бог е курва'은 마케도니아어로 한글이나 영어처럼 쉽게 인지되는 언어가 아니다. 고어사전에 찾아서 적용한다.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 개념미술가 형식의 유형이다.


  

 이번 작품 컨셉은 독백을 주제로 한 5가지 스토리로 전개하는데 그 중 <Pseudo Innocence>는 인간의 내면을 응시한 작품이다. 겉으로는 웃음 짓고 밝아 보이지만, 권력 앞에서 허전한 감정, 고통스러움의 은유이다. 인간적인 연민과 씁쓸함을 함축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내 안의 나의 모습이다. 작가의 독백이자 우리의 독백이다. <부풀어 커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의>는 블랙유머다. 거대한 건축물 구조 위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왜소한 사람이 있다. 풍선껌을 한껏 부풀리는 입에서 위태로움이 감지된다. 조금 후면 터지고 마는 순간, 부풀어지는 욕망의 덩어리는 성기로 극대화한다. 무거운 양의 실체는 성기로, 가벼운 음의 실체는 풍선껌으로 대조되며 사건의 진상을 그려보게 된다. 성공한 사람의 완벽했던 모습이 욕망이라는 덧에 빠지면 한 순간 추락한다. '욕망을 제어 하세요'라는 경고문 이상으로 위트 넘치는 메시지이다. <기억의 비밀정원>은 더욱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의 내밀한 독백 속으로..그 동안 기억나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작가는 몇 년 전에 기억해내며 본격적으로 작품에 옮기고 있다. 꽃의 형태도 도자 장식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전통 문양을 선택한다. 순결한 꽃들의 환호성과 꺾이는 아픔을 그 정원에서 바라 본 관찰자가 되었다. 오랫동안 감정을 단련하며 역설적으로 그 상황을 담아냈다. 그 후 건축물에 꽃이 피어났다. 돼지에도 꽃무늬가 새겨지고 불운한 문신은 엷게 사라지고 있다.

 경험은 그 대상과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관계이다.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사물 자체로 돌아가는' 현상학을 메를로 퐁티는 '공간과 인간과의 상호 주관적이고 얽혀있는 관계를 드러내고, 인간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되는 우연적인 사건을 현실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자 하는 철학이다.'라고 한다. 방창현은 독백으로 근본적인 인간에 양면성에 질문을 던지고, 컨트라스트를 통해 상황을 은유와 역설로 시각화한다. 사물의 본질적인 음과 양의 움직임과 섞임의 관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충돌을 블랙유머로 이끌어내는 조형성이 돋보인다. 맑은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러내고 싶은 허위와 맞닿으며 독백한다. 작가의 축적된 독백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라고 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페러독스이다. 


  

출전: 방창현개인전서문(갤러리웅 2013.8.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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