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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 느린 풍경을 깊게 그리다

정영숙

느린 풍경을 깊게 그리다


한국화의 정신 담는 ‘꿈을 낚는 예술가’… 영화 <취화선>

장승업역 배우 최민식 대역도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한국화가 김선두는 20대 중반에 중앙미술대전 대상, 30대 중반에는 석남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화단의 중심에 섰다. 아울러 소설가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의 표지그림, 소설가 이청준의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의 표지와 본문 그림작업 등으로 대중과 만남도 깊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조선시대 최고 화가 오원 장승업을 열연한 배우 최민식의 대역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대중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김선두는 우리나라 산야의 서정성 가득한 느린 풍경을 ‘진경’으로 담백하게 풀어놓는 작가다. 여기에 독창적인 장지기법, 역원근법, 최근에는 철묵화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왔다. 김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찰진 느낌을 준다.



<봄비> 188x97cm_장지에 먹 (2013)


작품으로 ‘꿈’을 나누는 화가


그의 작업실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 주택가에 있다. 바로 옆에 공원이 있어서인지 자동차 소음이 잘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이다. 거실 중앙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 그가 작업 중인 대작이 펼쳐져 있다. 작업실 이젤에 놓인 작품은 광주박물관의 대나무 기획전 <풍죽>전에 출품할 예정이다. 봄비 내리는 대숲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뽀루퉁한 표정으로 서있다. 작가는 유년시절을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전남 장흥에서 보냈다. “비 오는 날 놀 거리가 없을 때 집 뒤편 대숲의 산비둘기 우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그리워했던 내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한쪽 벽면에는 가로 길이가 제법 큰 작품이 걸려 있다. 내년 개인전 주제인 <별을 보여 드립니다> 연작의 하나다. 소설가 이청준이 쓴 동명의 단편에 대한 오마쥬라고 한다. 미 발표작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그는 대학(중앙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올해는 안식년이어서 작품 제작에 오롯이 시간을 배분할 수 있어 내년 개인전에 발표할 작업에 무리가 없다. <별을 보여 드립니다>는 기존 작업의 주제와 사뭇 다른 접근이다. 약 1년 동안 작가의 내면의 갈등과 변화, 별의 기억에서 비롯된 꿈과 욕망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조형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한다.

그의 고향 마을은 뒤로는 큰 산이,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에 마당의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에서는 별이 투명한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간혹 친구 집에 마실을 갈 때도 그의 시선은 늘 하늘에 가득한 별에 머물렀다. 그러다 몇 년 전 주작산에서 바라본 별을 보고 “저렇게 아름다운 별이 낮에도 보이면 어떨까?” 하는 뻔하지만 약간은 엉뚱한 상상을 하다 별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꿈이 모이는 밤하늘. 살면서 꿈이 실현되는 것은 어렵지만 하나의 꿈이 사라지면 또 다른 꿈이 피어난다.

그가 꿈의 메타포인 별을 통해 바라보는 욕망은 부정적 욕망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삶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욕망을 바라본다. 긍정적 욕망, 에너지 넘치는 욕망이다. 그 욕망은 <변두리> <도시의 구석> <골프장>으로 변주되다가 <싱그러운 폭죽> 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는 작품을 통해 꿈을 나누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삶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데 그는 예술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는 “이청준의 소설이 우리네 삶에 뿌리를 둔다는 점과 나와 이웃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사랑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결국 내가 그림에서 구현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라고 한다. (‘옴니버스 화폭에 실은 삶의 긍정’ 중에서)

이청준과 그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후반 신진작가였던 그에게 이청준은 <샘터>에서 발행한 한국의 전래 동화책 표지그림과 삽화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청준과의 인연은 선생의 문학 작품을 여러 편의 영화로 찍은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작고하기 두 달 전쯤 이청준은 그에게 묵직한 수석 하나를 주며 “김 화백이 저 돌의 무게를 알랑가 몰라” 하는 선문답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던 선생의 뜻을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당신이 가고 난 이후에도 좋은 작가로 거듭나라는 고향 후배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묵직한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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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을 보여드립니다 A hole in one>. 130x162cm. 장지에 분채(2013)

2 <진도아리랑-소리따라 떠도는>142x71cm. 장지에 분채 (2012)

작가 이청준과 30년 인연 맺어


한국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산수화는 반드시 넘어야 할 높은 산이다. 최근 30~40대 한국화 작가들의 경향은 현대적 풍경을 수묵과 채색으로 혼용해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료의 경계도 없다. 서양화 재료와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다. 김선두의 한국화는 80년대 중반 인물로 시작하여 90년대 초부터 <남도시리즈>로 거듭났다. 그는 남도 지방을 수없이 걷고 스케치하며 우리 산야의 형상을 탐구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서야 어느 순간 비로소 남도의 속살이 보였다.

 그는 첫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풍경그림으로 뭔가 새롭게 발표하고 싶은 열정으로 조형적 방법을 탐구했다. 현대미술가 가운데 마르셀 뒤샹을 넘을 수 있었던 사람은 백남준이었다. 뒤샹이 선택할 수 없었던 비디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는 겸재 정선이 가지 않았던 곳, 남도를 향했다. 그리고 민화의 평면성과 색채에서 영감을 받아 남도의 논과 밭을 클로즈업해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역원근법’이 구축되었으며, 달개비 등 잡풀의 새싹이 거대한 꽃처럼 대지 위에 피어나는 풍경을 그리는 그만의 진경산수화가 시작되었다.

 이청준을 만나기 전엔 고향 산야가 조형적으로만 다가왔으나 이청준과 동행이 잦아지면서 길은 노래로 다가왔다. “굽이굽이 가사가 있는 노랫가락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러면서 ‘남도 시리즈’는 ‘느린 풍경’으로 변모해갔다. 그 길의 여정은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영남의 글과 화가 김선두의 그림으로 엮은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 꽃 베고 누워> <남도 모든 길이 노래더라>라는 화문집을 낳았다.

 한국화의 매력, 선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기법은 그의 <행(行)>시리즈에서 주로 표현된 수묵 필선 오리기 기법이다. 붓으로 그린 다음 그 형상을 오리는 작업이다. 수묵화의 새로운 실험으로 묵유오채(墨有五彩. 먹에는 온갖 색이 들어있다는 뜻)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때까지의 수묵화가 색에서 먹으로 함축하는 과정이었다면, 그는 먹 속에 함축되어 있는 색을 다시 꺼내어 이를 새로운 수묵화로 정의하고 싶어 한다. 분청사기의 박쥐기법처럼 선이 남고 형상이 제거된다. 그리고 공간이 남는다. 이것을 작가는 ‘여백 콜라주’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일련의 꼴라쥬 기법은 중앙대 캠퍼스 내 R&D센터 로비에 걸린 <싱그러운 폭죽>이라는 대작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작품 제작과정부터 건물 로비에 설치될 때까지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한국화의 한계라고 여겼던 공공미술의 접근 방식을 새롭게 시도한 중요한 사례라고 하겠다. 젊은 한국화 작가들에게도 귀감이 될 방식이다. 야수파의 대가 마티스가 말년에 종이 콜라주한 것이 면의 예술이라면, 김선두는 선의 예술을 콜라주를 통해 새롭게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콜라주에서 확장된 기법이 ‘철묵화’다. 철묵화는 그가 자신의 스테인레스 스틸 작업에 붙인 기법을 말한다. 철로 그린 수묵화라는 의미다. 철판을 타공하여 표현한 것으로, 철묵화에 대해서는 작가의 더욱 세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작가는 필자를 거실로 이끌었다. 벽면에 10호 정도 크기 상자 모양의 스테인레스 스틸 입체 작품이 걸려 있다. 안쪽의 공간에 돼지 저금통을 넣고 LED 조명을 하여 1분마다 색이 변하는 작품이다. 그는 선 예술의 백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해 표현하고 있었다.

 이어 그가 컴퓨터를 켜 몇몇 작품 자료를 보여준다. 그 중 철묵화 <풀나라>는 서울 방배동의 전통시장인 이수시장 터 주상복합건물 앞에 세운 작품이다. 높이 5m, 폭 3m의 큐빅 형상으로 6면에 잡풀들이 선으로 투각되었다.



  
김선두는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과 30년의 인연을 맺었다.

이청준의 소설집 <매잡이>와 <신화를 삼킨 섬> 표지그림.

‘장지기법’ 전수할 ‘겹의 미학’ 그룹 결성


작가 김선두의 아버지는 한국 문인화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김천두 옹이다. 85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그의 훌륭한 스승이다. 그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두 스승이 산동 오태학과 일랑 이종상이다. 그들은 한국화의 모든 화목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한국화단의 대가이자 큰 스승이었다. 그는 산동을 학교 안에서 만났고, 일랑과는 학교 밖에서 인연을 맺었다. 두 선생은 작가로서의 기본기를 강조하였고, 동시에 과감한 실험을 주문하였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화선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그렇게 배워 예술가로서 탄탄한 토대를 구축했던 경험을 지금은 제자들에게 전수한다. “기본기를 튼튼하게 갖추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후배 작가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2010년 ‘겹의 미학’ 그룹을 결성했다. 여기서 겹이란 말은 색을 중첩하여 집적시키는 장지기법을 한마디로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다. 좋은 작품에는 수많은 의미의 겹이 있다. 한국화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우리 회화의 형식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이 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는 장지기법이야말로 우리 회화의 시발점이자 원류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기법인 장지기법을 토대로 작가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한국회화를 모색하고 현대회화로서 화려하게 꽃피우려 한다. 그가 처음으로 장지(화선지보다 더 두꺼운 한지)를 접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장지기법을 그가 가르친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이 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는 10년 전 미국 댈러스에서 3개월 동안 작업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 브룩 헤이븐(Brook Haven) 대학에서 주종근 교수가 진행하는 유화 수업을 들었다. 수업에서 접한 유화기법으로 인해 그 전까지 당연하게 선으로 구획했던 논과 밭, 땅과 하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면과 면을 넘나드니 색채가 자유로워지고 형태도 경직되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들판의 오묘한 색감이 제대로 살아나고 나비가 경계 없이 날아다니듯 그의 붓도 경계가 없어졌다.

 수묵과 채색의 경계, 추상과 구상의 경계, 선과 면의 경계가 해체됐다. 함민복 시인의 시 ‘꽃’의 첫 구절 “모든 경계에서 꽃이 핀다”처럼 한국화의 본질을 살리면서 서양화를 더했더니 새로운 장지기법의 그림이 피어난 셈이었다.

 중견작가로서, 가장으로서 그는 제자들이나 같은 길을 가는 아들의 꿈에 관심이 많다. 꿈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장지에 겹겹이 쌓인 푸른빛은 시간의 층, 우주의 거리다. 그가 표현한 별은 몽환적인 밤하늘의 별이 아니라 대낮의 별들이자 대낮의 꿈이다. 그는 꽃별, 나비별, 너와 나의 웃음별이 빛나는 세계를 바라본다. 역원근법으로….

월간중앙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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