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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택 / ‘미술도 엔터테인먼트다’

정영숙

팝아티스트 홍경택

‘미술도 엔터테인먼트다’


회화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강렬한 시각적 흡입력이 특징

작품성 인정받고 대중적 인기 누리면서도 실험정신 왕성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작품성을 인정받고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는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미술계에서는 더 그렇다. 홍경택(46) 작가는 지난해 두 가지 경사를 만났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연필 1>이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액(약 9억6천만 원)으로 낙찰돼 유명세를 탔다. 또 14회 이인성 미술상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작품은 뉴욕·홍콩·중국 등 해외에서 극찬 받았고, 올해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왜 정물화나 풍경화만 그려야 하나?


‘스타작가’라는 선입견과 달리 그의 작업실은 서울 천호동의 한적한 주택가 안에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이자 4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집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한창 진행 중인 작품들 외에도 그가 수집한 LP레코드판, 어항 속을 헤엄쳐 다니는 금붕어와 색색의 금붕어 모형들, 미니어처 등이 구석구석에 진열돼 있다. 그의 취미는 금붕어 키우기다. 하루에 서너 차례 금붕어에게 밥을 주고, 간간히 금붕어를 바라보는데, 작업에 방해 받지 않을 정도로 즐긴다. 그가 금붕어 종류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줘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금붕어마다 색상과 지느러미가 유난히 화려해 보였다. 그의 작품 색감도 화려한 것으로 보아 연관성이 느껴졌다.


그는 언제부터 미술가를 꿈꾸어왔을까? 


“유년시절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었고 상도 받으니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디자인에도 재능이 있다는 소릴 자주 들었지만 화가가 되고 싶어 전공은 회화를 선택했다.” 전업작가가 되기로 작정한 계기는 2000년 인사미술공간 공모전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그에게 미술가의 길은 천직처럼 다가왔고, 그 역시 그림 그리기를 즐겼지만 10여 년 동안은 무명작가의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그의 대표작 시리즈는 <펜> 연작, <서재> 연작, <훵케스트라> 연작으로 구분된다. 그중 대중에게 가장 크게 각인된 작품이 <펜> 시리즈다. 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필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은 30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때 주변 친구들이 연예인을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이 “그런 소재는 작품이 될 수 없다”며 훈계하는 모습을 자주 봤단다. 그때 그는 “왜 정물화나 풍경화만을 그려야 하느나?”며 선생님에게 반문했다. 다행이도 대학에서는 그가 주변의 사소한 연필과 책장을 그린다고 해서 “시대정신에 뒤떨어졌다느니, 소재가 빈약하다느니 하고 질책하는 교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예리한 관찰력과 정교한 표현으로 연필뭉치를 그만의 색감과 터치로 그려 나갔다. 대학 때부터 그렸던 연필 그림은 지금은 국내외 미술관과 개인컬렉션의 1순위가 되었다. 그를 세계 화단에 널리 알린<연필1>은 캔버스 3개를 붙인 크기가 259x581cm에 달하는 대형작품이다. 커다란 화면에 연필과 펜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돼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한다는 평을 받았다. 


2005년 아르코미술관에서 발표한 <훵케스트라(funkchestra)> 연작은 지속성과 변주로 색채와 형태의 하모니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운율회화’다. “훵케스트라(funkchestra)는 휭크(funk)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합성어다. 흥(groovy)을 느끼게 하는 모든 음악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작가의 설명이다. 음악이 가사와 운율로 만들어지듯 그는 그림과 문자의 조합도 과감하다. 예를 들면 <PLUR DMSR(2005)>의 그림 사각 귀퉁이에 각각 표기한 PLUR은 ‘Peace, Love, Unity, Respect (평화, 사랑, 화합, 존중)’의 약자다. 그림 중앙에 있는 DJ 초상화는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밤샘 파티, 즉 레이브 파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는 이렇듯 대중문화의 단면을 훵키 음악을 즐겨듣는 무대로 강렬한 시각적 요소로 표출한다. 훵케스트라 시리즈의 중심에는 대중스타가 있다. 마이클 잭슨, 존 레논, 마돈나, 오드리 헵번등이 형형색색의 원형에 둘려싸여 작품의 중앙에 위치한다.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원광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저는 대중문화나 순수미술의 경계를 가르고 싶지 않고, 추상과 구상의 경계도 구분하지 않는다. 제 안에서 모든 것은 공평하고 평등하다”라는 작가의 한마디가 작품을 뜯어보며 애써 이해하려는 혼란한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그의 작업실 벽면 한 켠에 수많은 LP레코드판이 꽂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것이 창고에 쌓여 있다고 한다. 문득 작업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음악을 듣고 작업한다는 작가의 일상이 무대처럼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50 여 종의 악기를 조율하며 하모니를 연출하듯이 그는 작업실에서 매일매일 지휘를 한다. 하얀 캔버스는 그의 무대이고, 조형이미지와 문자는 악기들이며, 색상은 운율이다. 격정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지휘는 강렬한 시각적 흡입력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하는 바이다. 한 순간, 작품에 몰입하는 그 순간을 이끌어내기 위해 힘찬 지휘는 계속된다. 작가는 스스로 규정한 신전에서 마에스트로를 꿈꾸다. 그는 신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좌) 2008년 칠레 산티아고 미술관에서 전시한<훵케스트라(Funckestra)> 시리즈의 한작품.

우) <PLUR DMSR> 181x227cm, acrylic & oil on linen, 2005.



대중문화와 순수미술의 경계는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신의 신전을 짓는 일이고,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는 작가의 신전에 초대받는 일이다. 신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 그림으로 인해 감상자가 어느 정도 나의 세계에 교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유달리 집착하는 애호물(이미지)들을 모셔놓는 곳이라 그렇다.”


다시 그의 작품 앞으로 갔다. 동서를 넘나드는 각종 오브제와 인물, 문자들이 충돌하면서 레코드가 돌아가듯 크고 작은 원형들 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문득 회화작업 이외에 영상작업 등 타 장르의 작업을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그는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필자를 안내하더니 영상전문가와 협업으로 만든 작품을 보여주었다. 훵케스트라 시리즈 부분을 편집한 것으로 회화를 보면서 움직임을 느꼈던 이미지들이 빠른 비트의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표현됐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이나 세계 주요기관에 컬렉션 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대중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회화를 영상으로 옮겨 스포츠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작업에서 뛰어난 협업 효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 아트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작업실 책상 위에는 동화약품 ‘활명수’ 제품의 패키지에 <pen> 시리즈로 아트콜라보레이션을 한 예쁜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미술도 엔터테이먼트의 부분이다.”라고 강조한 그는 “올해도 대중에게 다가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좌) <선물> 24.3x33.4cm, oil on linen, 2010. 손의 형상과 오브제를 배치했다.

우) <NYC 1519 (part2)>194x259cm, oil on linen, 2012.


원색은 나를 흥분시키지만, 무채색은 불편하다


역사상 최초의 갤러리는 기원전 285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궁전에 그림과 조각을 전시한 것이 효시이다. 갤러리의 전 단계인 캐비닛은 희귀한 것,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물, 식물 표본류를 전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서재> 시리즈는 작가 주변의 사물을 편집증적으로 집합한 초기의 캐비닛이나 갤러리 같다. 켜켜이 쌓이고 공간감을 형성하는 책들이 건축적인 골조를 이룬다면 각종 오브제(해골·신발·인형·장난감·음식·인체)들은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내부 요소다. 책과 오브제와의 공간구성은 낯선 이미지를 유발하며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플라스틱은 스마트폰·카드·비닐봉지·페트병 등 현대인들의 삶에 유용한 재료이자 유해한 재료이기도 하다. 작가는 플라스틱 사물과, 그 외의 사물까지도 플라스틱으로 치환한다. 플라스틱에 현란한 색상이 가미되면서 물질문명의 과잉과 욕망이 뒤엉킨 현대인들의 플라스틱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색채가 풍부하게 되어 있을 때, 형태도 충실하다”는 세잔느의 말처럼 홍경택의 색상은 폭발하는 불꽃같이 형태를 강렬하게 부각시키다. 본능적으로 색채를 탐닉하는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유년시절에 그의 부모님은 패션장갑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화려한 패턴은 그의 일상이었고, 색채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내면에 응축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2004년부터 발표한 <전쟁 레퀴엠(War Requiem)>, <곤충채집(Insect Collecting)>, <모놀로그(Monologue)> 시리즈는 회색계열이 주조색이다. 유명세를 탔던 작품들이 대부분 화려한 색채이지만 그는 무채색으로 주제를 부각한 간결하고 극사실적인 작업도 병행한다. 그는 어느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는 작가가 아니다. 새로운 작업구상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하면서 매일매일 완성하게 작업하는 작가다.


가장 최근작 <모놀로그(Monologue)> 시리즈는 기존에 그려온 대작 시리즈와 달리 3호 크기의 소품으로 손의 형상과 오브제를 다른 위치에 배치한 작품이다. <펜>과 <훵케스트라> 시리즈가 올오버페인팅(all over painting)으로 표현한 것에 반해 여백을 충분히 표현했다. 다소 전통적인 회화로 회귀하는 복고스타일로 보인다. 그는 “절대자의 손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아는 절대자는 선과 악의 경계에 있다.”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가 진행하는 작품의 변화속도는 미술시장의 변화보다 빠르다. 유명세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몇 발짝 앞서서 실험하는 작가의 치열한 태도가 돋보인다. 날로 확장되어가는 그의 작품 행로가 궁금해진다. 


월간중앙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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