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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의 조화속에서 피어나는 여인의 이데아

정영숙

임종두개인전. 2010. 9월9일~9월13일. 본갤러리(KIAF)
씨줄과 날줄의 조화속에서 피어나는 여인의 이데아  


                                                 정영숙(아트세인 디렉터, 전시기획자)
                                                                 사진 : 임종두 제공 

 붓을 든 임종두는 미완의 작품 앞에서 깊은 사색에 잠긴다. 형태와 내용의 관계를 역동적인 기운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전체와 부분을 면밀히 살피며 긴 시간 숙고한다. 여인과 자연의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는 형상에 색채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작가는 마지막 붓 터치를 한다.  
 임종두가 2000년 중반부터 발표한 작품명은 <동행(同行)>, <화화(花花)>, <오계(五季)>, <숲>, <관음(觀音)>등이다. 여인, 꽃, 새 그리고 물고기 형상 등이 주로 등장하며, 캔버스에 식물, 동물, 인간이 경계 없이 동화되는 형식을 취한다. 이번 발표한 <동행>시리즈 중 캔버스 중앙 윗선에 위치한 여인의 모습과 물고기에서 그가 천착하는 ‘비천상’이 오버랩 된다.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믿고 의지하며 바랐던 비천상의 개념을 빌어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형상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인간의 이미지를 표현하였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사실 날고 있습니다…….”라고 작가노트에 적은 바 있다. 삼국시대의 비천상은 하늘에 사는 여자 선인(仙人)으로서 휘날리는 천의(天衣) 자락이 유려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며 구름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비천상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티브가 된다. 그리스 아프로디테 여신으로부터 중국의 여와, 우리나라의 우주 창조 설문대할망 여신 등, 각 지역별로 여신들이 지배한 태초의 신화는 평등, 생명, 상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임종두의 작품에서 여인은 비천상을 기본 형상으로 하는 여신의 모습에 가깝다. 특히 <동행>시리즈에서 물고기, 나비와의 대화, 꽃 무더기 속에서의 여인은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여신의 자태이다. 우주만물의 생명이 공존하는 중심에 선 여인은 태초의 인간 탄생을 상징하며, 인간이 염원하는 이상향의 아름다움을 투영시키고 있다. 아프로디테와 같은 8등신의 아름다움도,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여와신의 반인반수 형상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인과 유사한 의상을 입은 모습이다. 두상은 옆모습으로만 제한적으로 표현된다. <오계>, <화화>, <동행> 시리즈의 모든 작품에서 여신은 옆모습이다. 이집트미술에서 두상은 옆모습, 몸체는 정면성을 강조하였음에 비해, 이 여인의 두상은 옆모습이지만 몸체는 정면과 측면을 작품에 따라 달리 형상화하여 작품별로 차별화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 외에, 작품 속 여인을 주목하는 형상은 머리장식이다. 2000년 대 초반까지의  <삼합>시리즈에서 여인의 머리모양은 우리 주변에 있는 여성의 모습과 유사하였으나, 중반부터 여인의 머리에 장식성이 가미되더니 근래에 와서는 크기와 형상이 여인을 압도한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화화>시리즈에서 머리모양은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성의 극대화이다. '서화는 심화(心畵)니라. 물(物)을 빌어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인즉 반드시 물의 실상(實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라고 소설《금시조》에서 석담이 제자 고준에게 말한다. 그의 머리형상은 형태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내적에너지가 발현된 정신적 형상이다. 여인과 물고기 그리고 새 등 개별적인 소재가 화면에서 조화롭게 연출될 때 작가가 추구하는 상생의 의미가 보다 크게 와 닿는다. 주체와 객체의 혼입, 시간과 장소의 초월성은 새로운 미의 세계를 제시한다. 동양의 미가 사물과 인간과의 동질적 관계를 모색하고자 하였듯이 작가는 머리 형상을 빌어 의식의 지평을 넓힌다. 
 전통 수묵화를 시작으로 예술가의 길에 접어든 작가는 ‘한지에 채묵’에서 ‘한지에 분채’, ‘한지에 석채, 분채’로 재료를 변화시켜 채색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몇 번의 붓 터치로 강한 색상을 표현하는 아크릴 재료에 비해, 한지나 장지위에 스며드는 분채와 석채를 통해 원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십 차례를 터치로 덧입혀야 한다. 매끄럽게 얹어진 색채는 겹겹이 쌓인 지층의 구조처럼 단단하면서도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중심이 되는 색은 우리의 전통색상인 오방색이다. 특히 붉은 색은 주조색으로 작품의 배경은 물론 여인의 몸과 얼굴의 색이다. 작가는 ‘나만의 붉은색을 만들고 싶다.’라고 한다. 오방색에서 붉은색은 태양과 불,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나타낸다. 이렇듯 붉은 색은 생명의 색이요, 풍요로움과 왕성함을 상징한다. 마티스의 붉은 방, 박생광의 무속에 기반을 둔 불 꽃 같은 붉은 색의 이미지처럼 그는 그만의 붉은 색으로 속력을 내고 있다. 악기 연작 중에 <관음>에서 ‘피아노 치는 여인’, ‘바이올린 켜는 여인’에도 주조색은 붉은색이다. 여기(餘技)로 그렸다는 피아노 치는 여인은 프리재즈 연주가의 강렬함이 묻어난다. 다른 작품에 비해 대담한 구도, 여백의 미, 선의 혼용이 주제를 부각시킨다. 선과 색 그리고 여인 얼굴 뒤쪽의 노란색은 열정의 공간을 빛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민화적으로 표현한 평면화는 색상에 숨겨진 선이 얼핏 보여 지며 공간을 나누고 있다. 공간감을 배재한 평면적 방식은 오히려 공간의 확장, 의식의 확장을 끌어내고 있다. <화화>, <숲>시리즈는 평면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또한 운동성을 가미하고 있다. 특정한 양식을 떠나 심장과 힘줄로 그림을 그리려 했던 야수파의 어느 작가처럼, 그도 의상(意象)을 형상화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붓을 잡는 손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일체, 우주적인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작가 정신은 작품으로 소통되고 있다. 한국화를 그리는 그의 몸에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시작한 한문 공부와 붓을 잡았던 학습 효과가 스며들어 있다. 또한 작업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가까이하고 바둑과 녹차를 즐기는 여유를 통하여 작가의 내면을 견고하게 다지고 있다. 무릇 작품은 작가 정신의 표출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10여년을 비슷하지만 조금씩 차별화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매 작품마다 혼신을 힘을 다하는 작가에게는 유사함은 조화로운 세계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캔버스에서 적절한 긴장감이 있는 형상, 원색과 보색의 조화는 성장하는 나무인양 각 부분이 생물처럼 움직인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조금씩 작품은 성장한다. 작품의 변화가 더딘 걸음처럼 보이지만 달리 해석하면 긴 호흡으로 걷는 중이다. 가끔은 한지에 번지는 우연적 효과를 주어 작품의 긴장감을 해소하거나 한국화의 자연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어 때에 따라 그의 호흡은 역동적이기도 하다.      
한국의 미의식은 음과 양 혹은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일원론(一元論)적 입장이 강하다. 그의 작품은 추와 미, 색과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여 아름다운 직조를 만들듯이 환상과 현실이 융화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무의식을 깨운다.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삼합(三合)>에서부터 독특한 머리 장식모양이 강조된 여인상을 직조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작품들은 에우토피아(Eutopia)를 향한 감각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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