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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 정영숙의 전업작가 작업실 탐방기2> 서용선, 실천하는 예술가의 초상

정영숙

<디렉터 정영숙의 전업작가 작업실 탐방기2>
서용선, 실천하는 예술가의 초상 

                              정영숙(아트세인 디렉터,현대백화점 갤러리H 객원디렉터)
                     
 
 봄의 전령들이 들과 산에 자리를 잡아가는 길목에 양평으로가는 전철을 탔다. 몇 해 동안 자가용으로 이용하던 곳을 다른 교통방식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이색적인 여행의 흥분이 작업실로 향하는 발거름을 더욱 들뜨게 부추겼다. 1995년, 필자가 현대아트갤러리 큐레이터로 근무할 때 기획전을 통해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였고 잊혀지지는 않는 작품 목록의 중심에 자리 잡혀 있었다. 그 후 간헐적으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감상하며 관심을 지속시켰고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전시를 통해 대작과 설치, 역사화의 중심이었던 그의 작품 속을 거닐며, 이제는 작가를 만나고 싶었다.     

역사를 담는 그림은 현실의 반추이다.

 종점 버스정류정에서 차로 5분 정도, 낮은 산 가까이에 그의 작업실은 위치해 있다. 15여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학교에 출퇴근하였으니 서울에서 이주한 초창기 도시인일 것이다. 천고가 높은 작업실에는 진행 중인 역사화, 초상화, 드로잉 등이 펼쳐져있다. 작품 속의 마르지 않는 물감은 강한 색채와 인물들에 더욱 주의하게 한다. 그가 보여준 두껍고 큰 화집은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목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의 기능을 하고 있다. 작업실 내부를 천천히 살피며 전철 안에서 생각했던 질문 덩어리를 어떻게 풀어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직접어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우리 역사 중에 조선시대의 단종과 그 시대적 인물을 돌출하여 담아내는 작가의 역사에 대한 견해, 혹은 역사 지식의 결과물로 표현되는지 궁금하였다. 50대 후반의 작가는 유신정권,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굴곡의 한국정치사가 진행되는 때에 청년시절을 보냈기에 역사성에 대해 연관성이 있었을 거라 지례짐작하고서. 그의 대답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에서 고전미술은 그에게 풀어야할 대과제였다. 신화와 역사, 종교화 중심의 고전미술은 서양의 것이었기에 우리나라 역사에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단종을 중심으로 한 역사화는 사육신 등이 등장하며 그 시대의 창(窓)으로의 표현에 힘을 싣게 되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단종 시리즈는 끝났나 싶었는데 작업실에 진행 중이 작품을 보니 아직 덜 표현한 무엇인가가 작가를 붙잡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역사화에는 현대인의 갈등과 권력,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화는 신체작업이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큰 변화없는 표정과 더불어 진솔하게 진행되었다. 차 한잔을 마시며 또 다른 벽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인물이 배재된 풍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역사화의 무거운 주제에서 잠시 벗어나 가벼운 호흡으로 다시 질문을 하였다. 기존에 주로 발표한 주제나 소재가 역사화, 초상화였다면 풍경화는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먼저 보여준 화집에서 1980년대의 소나무, 풍경에 대한 작품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사진과 회화는 다른 성격의 재현이다. 궂이 차이를 말하자면 사진은 렌즈와 화학작용에 의한 작업이며, 회화는 신체작업이다.’ 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양평 작업실도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곳이기는 하지만 특히 그는 잦은 여행을 즐기는듯하다. 지리산에서 마고할미를 전설을 접하듯 그 곳 풍경을 작가의 신체감각을 총 동원하여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는 풍경을 그리는 과정이 인물화보다 어렵다고 한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특정한 계절을 표현하는 것이 쉬울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인물을 그릴 때 오랫동안 관찰하고 현실을 담아내려는 주의력을 풍경화 제작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 뿐만 아니라  시간성, 빛의 흐름 등을 체화하는 신체작업이기에 짧을 수 있을 것이다. 

실존적인 색, 선으로 말하다 

 화집 뒤쪽에는 자화상 작품이 12점 수록되어 있다. 작가에게 자화상 작품을 직접보고 싶다고 요청하니 작업실 한 켠에 포장된 한 점을 펼쳐 주었다. 1996년 작품으로 화집과 조금씩 색감이 달랐다. 10년이 지난 작품도 현재에 펼치면 다시 붓을 대는 경우가 있어 간혹 그의 작품에는 1985~1999년의 형식으로 작품년도가 표기되어 있다. 그의 작품의 주요색인 붉은색과 녹색을 쩌렁쩌렁한 고음처럼 처리한 자화상은 작가의 낮은 음성과 대조를 이룬다. 보링거에 의한 추상충동은 대자연의 경외심이나 현대인의 공포감으로 인해 독일식 표현주의가 발전하였고, 추상미술에 반동한 형상성의 회복을 주장하는 신표현주의는 선명한 색상, 어울리지 않는 배색사용, 전통적 구도를 무시한 구도 등이다. 이러한 사조의 특징이 그의 작품에도 엿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그를 표현주의 작가 계열로 구분짓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가 활동하던 1970년대 국내 화단에 주를 이루었던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반발적 표현이, 신표현주의 작가들이 지나치게 지적인 추상미술을 벗어날려는 시도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 일 것이다. 다만, 도시생활의 가치관을 반영하지만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뚜럿한 조형성을 배재한 방식 등과는 차별화가 있다. 작가의 자화상, 그리고 도시인의 초상, 심지어 역사화의 인물에는 뚜렷한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실존적인 모습을 강조한 작가의 태도가 작품에 투영된다. 

작품 밖에서... 환경예술가, 기획자의 모습으로     

 실존하는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현장성은 2001년부터 시작된 ‘철암 그리기’로,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진행한 태백 탄광촌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요 구성원은 [할아텍] 소속의 화가, 조각가, 설치예술가 등이다. 작가는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기본이고 전시계획, 공간구성 연출하며 공동대표로 지역주민과 지역공무원을 만나서 기획서의 프로젝트를 실현한다. 작업실에서의 긴 인터뷰가 끝난 후에 양평 두물머리로 갔다. [할아텍] 이름으로 기획한 양평지역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작가는 나무로 제작한 2개의 대형 인체 작품을 설치 준비중이다. 두물머리 산책로가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강가에 설치된 작품들로 인해  예술이 흐르는 강으로 변하지 않을까? 교수라는 직함을 버리고 전업작가가 된 후로 그는 더욱 활발한 전시와 기획, 문화활동을 진행 중이다. 양수역 근처에 지난달 오픈한 <갤러리 소머리국밥집>은 [할아텍]이 운영하는 갤러리로 대안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갤러리는 많지만 모든 작가들에게 전시기회가 있는 것이아니기에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발표의 장을 마련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강조한다.  
 단종 연작 20여년, 철암그리기 8년, 그는 긴 호흡으로 작업한다. 공공미술, 환경미술 영역에는 도심에서나 주요 중심지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굳지 외딴 지역, 문화적 혜택이 낮은 지역에서 묵묵하게 진행하는 이유가 궁금하여 슬며시 작가가 오래전에 1997년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Vermont Studio Center)에 참여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버몬트는 사회개혁자 스콧 니어링(Scott & Helen Nearing)부부가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인적이 거의 없는 북동부 버몬트(Vermont)주의 숲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현장성있는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작가를 만나기 전에 조사한 비평가의 글, 서문, 기사 등은 간단한 약도였다면, 반나절을 작업실과 현장에서 느끼고, 보고, 들은 시간은 작품세계로 진입하는 위성형 지도 같았다. 기운찬 작품의 에너지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대변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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