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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뷰1]우리에게 냉장고란 무엇일까?

정영숙

우리에게 냉장고란 무엇일까?
[냉장고 환상] 전시 리뷰

정영숙(문화예술학 박사, 갤러리세인 대표)





(사진01)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특히 식품의 냉장 보관 기술은 가히 식문화의 혁명이다. 하루에 수십 번씩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냉장고에 의존하는 일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대형 냉장고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일반 가정에서도 수백 리터에 이르는 대형 냉장고를 사용하게 되었다. 용량뿐만 아니라 기능 면에서도 김치냉장고, 화장품 냉장고, 와인셀러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는 냉장고까지 나오게 됐다. 최근에는 농산물 등의 신선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콜드체인(Cold chain)이 식품뿐만 아니라 온도 관리가 필요한 의약품, 전자제품 등으로 그 쓰임새가 확장되는 등 냉장 관련 산업은 앞으로도 무한히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일 매일 뜨거운 열기로 순간을 견디기가 벅찬 이 즈음, ‘이제, 당신의 냉장고를 열어라!’라는 [냉장고 환상] 전시가 ACC 문화창조원에서 개최돼 흥미를 끈다.(사진 01) 이 전시는 ACC/ACI 아시아문화연구소의 연구 테마 중 하나인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주제 중 ‘식(食)’에 대한 연구로 준비되었다. 얼음을 사용한 인류의 역사에서부터 가정용 냉장고의 100여년의 진화, 그리고 음식과 생활 문화의 변천사를 조망하는 전시다. 편리한 냉장고를 사용하는 이면에 존재하는 문명사회의 다양한 상황과 논의 거리를 제공하고, 냉장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층적 방식으로 보여주며 그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전시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각 부는 인류의 역사, 냉장고의 진화, 음식과 생활 문화의 변천사를 조망한다. 전시 작품들의 구성은 시각 예술가, 디자이너, 메이커들의 제품, 그리고 다큐멘터리 필름과 방송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동원해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사진02)


1부, ‘차가움의 연대기’는 얼음과 냉장고와 관련된 역사적 정보와 지식, 이야기를 연표, 예술가의 작품, 광고 자료 등을 통해 전달한다. 전시장 중앙에서는 실물 냉장고 5대가 진열되어 있다.(사진02) 냉장고의 역사를 느끼게 하는 나무로 제작된 냉장고에서부터 냉장과 냉동이 분리된 초기의 근대식 냉장고다. 좌측 벽면에는 ‘차가움의 연대기:미완의 연표’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냉장고 발명 이전에 인류는 어떻게 식재료를 보관했는지 시대별 도표로 친절하게 작성해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BC1800년 얼음과 관련된 인류 최초의 기록에서부터 6세기 삼국시대 석빙고, 1965년 국내 최초 냉장고의 탄생과 2020년 백신 보관용 초저온 냉장고의 역사까지 정리되어 있다. 예술가의 작품으로는 준 양(Jun YANG) 작가의 [중국 황제 얼음, 땅에 얼음 1000kg을 묻은 아티스트]는 고대 중국에서 겨울 동안 얼음 덩어리를 땅에 묻었다가 여름에 아이스크림으로 먹었다는 전설에 착안한 작업을 오스트리아 조각공원에 설치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냉장고 광고 읽기’ 섹션도 흥미로웠다. 선진국을 동경하고, 건강을 저장하는 키워드로 당시의 광고영상을 통해 우리의 시대상과 문화적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 



(사진03)


2부, ‘당신의 냉장고를 열어라!’는 냉장고의 이면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전민제 작가의 [우리가 믿는 신 아래](사진 03)는 다채널 비디오 설치 작업이다. 7개의 화면으로 냉장, 냉동을 도포화, 데이터화 하고 그리고 순환원리, 마지막으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제기한다. 냉장고가 신격화된 상황을 스팩터클하게 영상으로 보여주며 “그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신다.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부패함까지 보듬으며 생명을 보존해 주신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냉장고의 양가적인 측면을 은유적으로 비튼다. ‘이미화/이모저모 도모소’그룹의 [2,000kal -0kal]은 노년 세대의 이슈를 1일 평균 칼로리 권장량으로 비교하며 영상과 함께 보여주어 냉장고의 내용물과 칼로리로 노년노동에서 고독에 이르는 노년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진04)


3부, ‘거대한 냉장고 작은 세계’는 다양한 식품의 생산,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부분이 설득력 있는 주제와 내용으로 구성했다. 5점의 사진은 콰트레 캅스의 [낫 롱거 라이프](사진04)로 모네와 고전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멀리서 보면 잘 그린 정물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비닐로 포장된 과일, 야채 그리고 음료수와 술병 등 냉장보관을 통해 싱싱하고 시원함을 유지하는 물건들로 구성됐다. 이렇듯 블랙유머로 표현된 정물화는 현대인의 과소비하는 물질의 현상과 편리한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스크리닝 룸’의 발렌티 투른 감독의 다큐멘터리 [음식물 쓰레기의 불편한 진실]은 55분 동안 선진국에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 영상의 일부에서 “시장에서 버리는 먹거리 중 해산물의 비율은 더 높다. 당일 안 팔린 해산물은 쓰레기통으로 직진한다. 먹어도 되는 음식을 도소매상이 나눠 주지 않고 버리는 이유가 뭘까? 원래는 먹어도 될 만한 것만 추리지만 일부러 버린다.”는, 식품소비의 부조리한 실상을 수산물시장 취재와 상인 인터뷰를 통해 담아낸다. 과잉생산과 유통구조의 모순, 과도한 신선도 유지 등으로 엄청난 쓰레기가 버려지면서 온실가스의 과잉 배출 현상에 이르는 상황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사진05)


(사진06)


4부, ‘냉장고 없는 부엌’에서는 식재료 고유의 특성에 대한 연구와 적정 기술을 이용한 식품 보관법, 염장과 발효 등 저장음식 연구 등 냉장고에 의지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 냉장고 없이 살아가자는 주장이라기보다 과연 냉장고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일종의 제안이다. 디자이너 듀오 지연&다비드 작가의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라](사진05)에서 유독 발길이 오래 머무른다. 싱싱한 과일, 야채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일까? 재료의 특성에 맞춰 냉장고없이 보관, 저장할 수 있는 비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해 설치했다. 수분이 필요한 채소는 하단 쟁반에 물을 담아 수분을 공급하고, 양념 속에 쌀을 보관해 굳어지지 않게 했다. 뿌리 식물인 파, 당근 등은 모래에 세워 보관하고, 감자의 싹이 빨리 트지 않게 사과를 위에 보관하는 것 등 일반상식만 제대로 알면 냉장고 없이도 얼마든지 식품을 싱싱하게 보관, 저장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비전화제작자 그룹의 [오래된 미래: 저장에 대하여](사진06)는 전기 없이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에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오랫동안 저장하며 생활한 옛 선조들의 지혜와 다양성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전기 효율을 걱정하기보다 내 삶의 효율을 더 늘리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돋보인다. 커피를 내리는 데 20분이 걸리지만 태양열을 이용해 아이스박스 온도를 10도로 유지할 수 있고 각 채소의 특성을 이용한 가구형태의 통풍이 잘되는 기능성 보관함과 햇빛에 말리는 세련된 건조대 등 작은 기술로 스스로 제작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을 제안한다. 마지막 설치작품은 광주의 젊은 예술가 ‘장동 콜렉티브’그룹의 [굿 플레이스: 조왕신들을 위하여](사진07)다.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을 소재로 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대,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로운 부엌의 단면을 조왕신을 모시는 장소로 해석했다. 모든 설치는 흰색으로 통일하였다. 제삿상에는 제기들이 풍성하게 놓여있다. 벽면에는 신당을 상징하는 종이 오브제가 올오버로 부착되었고 좌우측 기념비에는 각 음식의 레시피를 부착했다. 그 하단에는 레시피를 관람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했다. 선조들의 지혜를 각 가정에서 실행하며 기억한다면 전시 이상의 의미가 있을 듯하다. 



(사진07)


이번 [냉장고 환상] 전시는 국내외 총15팀의 출품작으로 구성되었다. 다층적인 연구와 조사로 이루어진 기존 자료와 영상, 조각과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시각으로 광범위하게 접근한 결과다. 주제는 PART1~4로 구분, 전시하여 냉장고 이전 얼음의 역사부터 냉장고 출현 이후 발생된 식품의 생산, 유통 과정의 변화, 그리고 현대인에게 냉장고 없는 일상은 과연 가능한지, 또 그에 대한 제시 등 냉장고를 매개로 한 인류의 문화 발전 양상과 음식의 보관 및 쓰레기 문제까지 거론했다. 전시 관람 후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는 냉장고 문을 열면서 잠시 잠깐이라도 전시에서 본 내용을 되새기며 냉장 이전과 이후의 음식문화와 그로 인해 파생하는 여러 문화의 변동 조짐까지 사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 정영숙 jysagnes@daum.net(문화예술학 박사, 갤러리세인 대표) 
사진 :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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