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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희' 제7의 풍경 Flowscape of 7sense

정영숙

신승희 제7의 풍경 Flowscape of 7sense
-그곳에 내가 있었다 - 


정영숙(문화예술학 박사, 갤러리세인 대표)


시간이 목을 축인다. 물이 물컹물컹 흐른다. 몸은 Flowcatching을 한다. 신승희 작가의 ‘제7의 풍경’이 서서히 열린다. 일곱 번째 개인전 이후 작가는 흐름에서 캡처한 현상들을 채집한 이미지의 본질과 섞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Flowscape of 7sense’로 2013년 ‘모든 것은 흐른다’, 2018년 ‘흐름의 변주’, 2019년 ‘흐름의 변주2’, 2020년 ‘청산 도자 위에 흐르다’, 그리고 2021년 가을 ‘Flowcatching’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연장선이자 한 챕터의 마무리다. 

작가는 수용미학자다운 면모를 지녔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작가는 부드러운 풀잎의 떨림까지 느끼는 고밀도 촉수를 지니고 국내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자연 속을 걸으며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유려하면서도 강한 면모를 잡아낸다. 사람들과 관계에서는 거침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30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치고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때, 그리고 독일인과 결혼하면서 동서의 문화의 다름과 서양문화의 특성을 수용한다. 작가의 취미활동도 남다르다. 오래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국선도, 단전호흡 등을 수련했으며 최근에는 해금을 배우며 동양의 미학을 온몸으로 수용하며 감각을 훈련 중이다. 이러한 삶의 궤적에서 ‘흐름’은 작품의 중요 주제이자 철학이 됐다. 

이번 작품의 ‘흐름’을 표현하는 조형 방식으로는 우선 10여 년 동안 거듭 연구하며 발전시켜온, 도판 위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도자회화가 있다. 또 다른 방식은 순수회화이지만 캔버스에 도자 광물과 회화 재료를 섞어 밑작업을 시작해 ‘흐름의 파장’를 일으키는 실험적 회화다. 

지난 늦여름, 작가의 작업실에서 실험 중인 작업 과정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도자회화는 10년 넘게 다룬 재료로 작가가 의도하는 표현방식을 세밀하게 잡아낼 수 있는 노련함을 취했다. 반면 일반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회화 또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었다. 수 년 동안 실험을 거듭한 재료 연구와 조형적 표현 연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번 늦가을, 작가가 보내온 작품의 이미지는 기존 작업과 다르면서도 한 궤적으로 흐르는 대서사적 메타포다. 에레베스트산 정상으로 치닫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빙하 층, 페루 인더스 문명의 강가에서 보이는 퇴적층, 그리고 태백의 산자락에 깊게 몸을 담근 심연의 숲 등 다양한 나라의 세월과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겹겹의 결이 숨쉰다. 그리고 일주일 후, 작가로부터 최종 작품 목록을 받았다. 작가는 8년 전, 다도 행사 ‘선차(禪茶)’ 시연을 보면서 동양의 선 사상에 매료됐다고 한다. 초의선사의 다도 정신이 깃든 ‘다선일여사상’ 연구자로서 학습을 병행하며 재료를 잡은 손끝에서 그 정신이 발현되기를 기도하듯 온몸으로 그렸다. 

작업에 임하는 작가의 행위는 그린다기보다 오히려 행위미술에 가깝다. 몸으로 체화한 정신과 경험이 층위를 분리하지 않고 작업에 스며들 듯, 한 호흡 한 호흡 얹히며 춤사위가 펼쳐진다. 발길은 저절로 따라간다. 유영하듯 이리저리, 저기 여기, 천천히 빠르게 몸이 가는 방향으로 질료들이 흐르고 겹치고 흐르고 스며든다. 태백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작가는 서울에서 청년기와 대학 시절을 마쳤다. 그 후 독일 니더라인대에 다니면서 유럽 문화를 익혔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경험한 시지각의 촉을 축적했다. 그러한 일상이 엮은 삶의 층위가 내재하여 몸으로 표현되니 어느덧 땀 몸, 온몸으로 그려 나간다. 

이미 발표한 도자회화는 작가의 조형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다. 도자기의 특수한 재료와 메커니즘을 모르고는 표현하기 어려운 테크닉을 지녔기 때문이다.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즐겨했기에 가능한 방식이다. 작가의 주조색은 블루다. 이브 클라인이 IBK를 만들어내듯 작가는 세상의 기본색, 우주와 인간 본질의 색, 블루만 사용한다. 색을 선택하는 것 또한 근본적인 질문의 종착지인 삶의 본질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작업의 첫걸음이다. 

허만하 시인의 시작품 ‘그곳에 개울이 있었다’에 이런 대목이 있다. 

“뜻밖에/그곳에 개울이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시간이 목을 추이고 있었다 // 그때/사라지는 것이 태어났다/있다가 없어지는 것/어느덧 보이지 않는/소실점을 향하여 // 손을 흔들며/이별과 출발 사이/손을 흔들며 // 그것은 멀어지고 있었다/그곳에도 천체가 있고/해와 달이 돌고 있었다.

허만하 시인은 ‘물은 촉감이다’라는 또 다른 작품에서 ”물이 다른 물과의 접촉을 사랑한다면 숲을 떠나는 새가 바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새는 깃털 몸무게를 구름처럼 바람에 얹는다“고 언급했다. 유영하는 블루의 덩어리는 시간과 시간의 결이 촘촘하게 엮인, 지금은 바다가 된 땅이었다. 작가의 행위는 경험이 녹여낸 삶의 언어다. 작가는 국내에서 10여 년 생활하다 이번 겨울, 다시 독일로 떠난다. 작가의 여정이 어떤 층위로 쌓일지는 미지수다. 기존 작품으로 미루어보자면, 큰 산에서 하산하는 산인, 높은 직책을 내려놓은 기업인, 도를 얻은 수행인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는 여분의 힘을 모두 뺀 자유로운 예술가의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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