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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2)]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2)]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예리한 감각과 안목으로 시대를 읽어내는 예술애호가 

초기 인연 맺은 작가와 평생 함께하는 진정한 컬렉터 미술 담론 이끌어내는 전시회로 ‘예술경영대상’ 받아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26년째 컬렉션으로 활동 중인 진정한 예술애호가다.


전문적인 미술 컬렉터는 예술적 가치와 장식을 위한 수집과, 투자를 위한 수집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미술사에 대한 기본 지식과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한 후에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적 분석기술을 갖추는 게 바람직하다. 즉 자신의 수집 목적을 분명히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후 미술관과 갤러리 커뮤니티 형성과 거래 정보를 얻는 관계지향적 방식을 취하는 게 도움이 된다. 따라서 미술 컬렉터는 자신의 미술품 수집 목적이나 취향을 분명히 한 뒤 가치판단과 조언을 할 수 있는 미술 전문가를 만나거나 전문 프로그램 등을 함께했을 경우 컬렉터로서 성장할 수 있다.
서울시 은평구 소재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컬렉터로 출발했다. 다양하게 컬렉션을 하는 중에 1996년부터 인사동 사비나갤러리를 운영, 전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컬렉션에 뛰어들었다. 당시 ‘인간의 해석’, ‘자연의 풍경’, ‘이발소 그림전’ 등 다채로운 기획을 통해 섭외된 작가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게 되면서 컬렉션은 풍부해졌다.
2002년 미술관 등록 후에도 그의 컬렉션은 계속되고 있다. 이 관장은 앞서 언급한 대목, 즉 ‘자신의 미술품 수집 목적이나 취향을 분명히 취하는’ 컬렉터다. 그의 컬렉션 취향은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이 관장과 인연이 된 동시대 작가가 우선이다. 컬렉터와 함께 성장해가는 작가 작품을 선호한다. 또한 조형 방식이 독창적이고 스타일이 분명해 미술사에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작가에게 주목한다.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젊은 작가를 무수히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 30번째 책 준비

사비나미술관의 정면과 측면. / 사진:사비나미술관




그의 초기 컬렉션은 사비나미술관을 개관했을 당시 초대하고 기획한 작가들로 구성됐다. 안창홍·홍순명·유근택·이명호 작가 등이다. 영화계에서도 담론을 형성하는 박찬욱·봉준호 감독처럼 이들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넘나드는, 미술계에 영향력 있는 중견 작가들이다. 이 관장의 예리한 감각은 작가주의 작품에 주목한 컬렉션에 투영돼 사비나미술관 정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관장은 또한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저자다. 사비나미술관 사이트에 업로드된 저서는 총 29권. 현재는 30번째인 [그림 감상도 공부가 필요합니다]를 마무리 중이다. 초기의 저서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등으로 2005~2006년 출판된 책이다. 미술과 타 분야가 융합된 책이 전무했을 때다. 최근 도서는 [시를 좋아하세요], [국민화가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등 일반인을 위한 에세이다. 칼럼도 꾸준히 연재 중이다. 2020년부터 한 신문사에 연재하고 있는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는 미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는 이 관장의 보폭이 전문 컬렉션을 탄탄하게 구성하는 힘이자 미술관 운영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이제부터는 사비나미술관으로 떠나보자.

삼각형 부지의 미술관(지상 5층, 연면적 1740.23㎡) 저 멀리 북한산의 능선과 그 앞으로 은평 뉴타운이 펼쳐져 있고, 미술관 앞으로 진관내천이 흐른다. 은평구의 유일한 사립미술관이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다. ‘제37회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고, 시민공감특별상 1위에 선정됐다. 2018년 11월 안국동에서 은평구로 신축 이전할 당시 건축가와 미술가가 협업한 ‘AA(Art & Architecture)’ 프로젝트로 진행했는데, 기존 사비나와 함께한 작가들과 건축가의 협력으로 설계 때부터 작품을 설치하는 장소와 방법이 고려됐다.

건물 흰 벽면에 쓰여진 김승영 작가의 ‘말의 풍경’, 2~3층 내부 계단 벽면에 설치된 김범수 작가의 ‘Beyond Description’과 3~4층에 자리하고 있는 황선태 작가의 ‘빛이 드는 공간’이 시선을 끈다. 반달 모양의 조형물은 러시아의 설치미술 작가 레오니드 티쉬코프의 ‘달로 향하는 계단’으로, 영구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1층과 2층으로 이어지는 벽에는 정연두 작가의 ‘춤추는 댄스’ 벽지가 부착돼 있다.

오랫동안 컬렉션을 하면 작가와 컬렉터와의 관계가 형성된다. 마르셀 뒤샹과 아렌스 버그, 잭슨 폴록과 페기 구겐하임, 제프 쿤스와 루이비통 등을 소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관장 또한 사비나갤러리를 운영할 때부터 이어진 작가들과의 인연으로 컬렉션을 하고 전시를 기획하면서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확고히 펼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시대를 반영한 기획전시, 미술 담론을 이끌어내는 중요 작가들의 초대전이 밑거름이 됐다. 이 관장의 뛰어난 안목도 빼놓을 수 없다. 최첨단 기술을 전시에 도입, 대형 미술관보다 빠르게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여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를 높였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예술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속 과학자들의 합동 워크숍 결과로 탄생한 ‘KIST 창립 40주년 기념전 ArtiST PROJECT’, 그리고 국내 최초 미술과 수학을 융합한 ‘미술과 수학전’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중앙과학관에 과학예술관이 설립되는 데 사비나미술관이 핵심 역할을 한 사례도 언급된다.



미술과 타 분야 접목한 융·복합 전시 활발



안창홍 작가의 작품 ‘유령패션전’. / 사진:사비나미술관


이 같은 융·복합 전시로 2016년 전 세계 상위 미술품 컬렉터의 데이터를 보유한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와 AMMA(Art Market Monitor of Artron)가 공동 조사한 ‘사립미술관 보고서’에서 사비나미술관이 한국의 3대 우수 미술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7 예술경영 컨퍼런스’에서 미술관으로는 최초로 ‘예술경영대상’을 수상했다.

이 관장은 26년 동안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미술관 운영의 핵심 목표인 ‘융합·창의·변화·혁신’의 철학을 놓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에는 버추얼 리얼리티 촬영기법과 큐레이터의 음성 해설이 결합된 전시 감상을 내놓고, 디지털 도록 아카이브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관람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비대면 전시 관람 프로그램 ‘언택트 뮤지엄(Untact Museum)’을 기획해 안심하고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세계 각국 문화예술계와의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2018년부터 일본 시로타 화랑, 2019년 캐나다 Gallery 101, 2020년 폴란드 와지엔키 왕궁박물관 등 각국 문화예술계와 협력해 전시를 개최했다.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국제 문화예술 교류의 모범 사례로 남았다. 2021년에는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안창홍 특별초대전’을 기획 개최했다. 한국과 에콰도르를 대표하는 두 미술관의 첫 번째 협력 전시이자 양국 간의 첫 문화 교류 행사였다.

사비나미술관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미술관 찾기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 모바일 도슨트(docent·전시 해설 자원봉사자) 도입, 버추얼 전시 투어 및 VR 전시장 구축 면에서 그렇다. 아울러 미술의 융·복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하며 스마트 뮤지엄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와 로봇, 문학과 무용 등 다양한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기술 입은 문화예술교육 - 너와 나, 우리가 함께하는 메타버스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국내 미술관 최초로 가상미술관 ‘메타사비나 아트플랫폼’도 개관했다.

은평구 문화예술위원장이기도 한 이 관장은 미술관의 사회 환원에 주목해 지역주민과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 향유 프로그램 운영에도 적극적이다. 2021년 국내 최초 전문 장애인문화예술공간 ‘에이블아트’와 협력해 발달장애인 예술가 전시 멘토링 워크숍인 ‘인사이트 에이블아트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또한 서울미디어대학원과 발달장애청소년교육재단 ‘하트-하트 재단’과 협력해 발달장애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인 ‘미래로 에이블아트 팩토리: Taste Our Senses Series’를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컬렉션 기준은 독창성과 스타일에 달려


유근택 작가의 작품 ‘수평적 이사2’. / 사진:사비나미술관




2층의 1전시장을 둘러본 뒤 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북한산 능선 위 달과 마주하는 초승달 조각이 설치돼 있다. 미술관 내·외부에서 감성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미술관 소장품전으로 김창겸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중 AI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린 그림도 함께 걸려 있었다.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이 관장의 열정적인 미술관 운영의 한 부분을 보는 듯했다. 미술관 관장의 능력에 따라 미술관이 어떤 모습으로 지역사회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지 더 알 수 있었다.

필자는 기업의 큐레이터로 근무할 당시 인사동에 위치했던 사비나갤러리를 종종 다녔다. 주목받는 전시기획과 획기적인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기억에 더 남았다. 또한 안국역 바로 옆 사비나미술관에도 트렌디한 전시들을 보기 위해 빈번하게 방문했다. 벌써 25여 년 전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관장은 여전히 미래형 모습이다. 당시의 날 선 비평적 태도에 더해 사립미술관 협회 창립을 주도하던 모습, 2대 회장으로 초기 토대를 구축하며 쌓은 경영 노하우와 베스트셀러 저자 활동 등으로 연륜은 더 깊어졌다. 인터뷰 동안 그가 보여준 생동감 넘치는 미래지향적 태도가 사비나미술관의 내일을 견인하는 중요한 힘임을 다시금 발견한다.

이 관장의 ‘아트테크-컬렉션의 노하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관장은 작가와의 관계지향형 예술애호가다. 컬렉션 초기부터 관계 맺은 작가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때때로 전시기획으로 소통한다. 30대 작가보다는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은 중견 작가 작품 위주로 컬렉션한다. 비영리 미술관을 운영하기에 작품 판매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아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컬렉션 작품을 종종 옥션이나 개인 거래에 내는 컬렉터들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1~2년 컬렉션한 초보 컬렉터가 매매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단타 투자가들의 양상일 수 있고 경험을 위해서, 아니면 급격한 경제 사정으로 거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예술지향형 소비자나 관계지향형 소비자와는 거리가 있다.




2018년 신축 이전 개관 기념전 ‘예술가의 명상법’. / 사진:사비나미술관



아트테크는 주식처럼 오랫동안 작품을 보유했을 때에나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주식 고수들도 가족에게 한 주식을 10년 이상 보유하라고 강조하듯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운영은 컬렉션이 기본이다. 좋은 컬렉션은 미술관의 자산이자 공공재로서 일반인들에게 미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예술 나눔터가 된다. 사비나미술관을 나오면서 벌써 다음 전시가 기대됐다. 다음에 북한산을 오를 때 사비나미술관 전시 스케줄을 살펴봐야 할 이유가 늘었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 글 정영숙 갤러리세인 대표 gallerysein11@hanmail.net /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park.jo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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