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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4)] 구정순 구하우스미술관 관장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4)] 구정순 구하우스미술관 관장 
집 같은 미술관, 미술관 같은 집으로의 초대 

“예술품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 현대 미술의 개념과 정수 고스란히 담아
미술품은 주인의 안목과 교양 대변… 평생 수집한 작품 500여 점과 절묘한 조화


▎본관 앞에 앉아 있는 구정순 구하우스미술관 관장.


미술품은 작품이 가진 예술성을 바탕으로 소비자가 장식적·지적 만족감을 갖게 한다. 아울러 사치재이자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장식용 작품은 ‘공간을 꾸미는 그림들’을 말한다. 일상적인 공간에 미술품을 장식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곳을 좀 더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을 통해 좀 더 정신적인 안정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진정한 장식의 조건은 장식이 다른 어떤 곳이 아닌 그 위치에서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건물의 다른 부분의 효과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즉, 장식의 화려함으로 인해 다른 부분들이 단조로워 보여서는 안 되며, 장식의 섬세함으로 인해 다른 부분이 조잡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모든 장식의 질은 그 위치나 용도와 관련이 있다. 그 장식이 없을 때 결점이 생기거나 부족해 보인다면 그 장식은 효용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집이나 사무실에 걸려 있는 미술품은 주인의 안목과 교양을 대변한다.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구정순 관장


▎구하우스미술관 정원 및 별관.



경기도 양평군에 소재한 구하우스미술관은 2016년 7월 1일 개관했다. 세계 유수 작가들의 컨템포러리 아트와 디자인 작품으로 구성된 컬렉션 미술관이다.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구정순 구하우스미술관 관장(디자인 포커스 대표)이 예술에 대한 열정과 심미안으로 평생 수집한 500여 점의 예술 작품들을 기반으로 ‘예술품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철학 아래 설립했다.

벽돌 건물의 특색있는 픽셀레이션(pixelation)을 따라 미술관에 들어가면 1·2층으로 규모가 큰 내부에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의 외부를 둘러본 후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자 마침 [Moving Focus·움직이는 시선]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다. 기획 취지는 “관람자의 위치, 즉 시점(point of view)에 따라 이미지가 미묘하게 혹은 상이하게 변화한다. 시각 예술가들의 ‘보는 방식’에 대한 고찰과 저마다의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지각과 인식이 파편적, 상대적이며 가변적임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고 소개돼 있다. 권대훈·서도호·데이비드 호크니·윌리엠 켄트리지·구사마 야요이·줄리안 오피·펠리스 바리니·토비아스 레베스거·로버트 라우젠버그·데미언 허스트·다니엘 뷔렌·막스 에른스트·어윈 올라프 등 20세기 미술사에 거론된 작가부터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전시 공간에는 가구와 디자인 작품이 곳곳에 있었고, 복도·거실·작은 룸·화장실 등에는 가구·소파·의자 등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집과 미술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공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층 마지막에는 손님방으로 꾸며진 건축가 장 프루베 룸이 있다. 침대·책상·암체어·욕실이 갖춰져 투숙도 가능할 법하다.

2층에서는 또 다른 기획전인 [일인칭 일기 시점]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관찰자인 예술가가 기록하는 자서전적 이야기가 곧 작품이 되고 개인 일상의 기록이 공명해 보편적인 시대의 서사가 된다. 작가의 일상적 이벤트와 감정들이 치환된 이러한 현대 미술 작품들을 마치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일기처럼 전시 [일인칭 일기 시점]에서 감상해 본다”는 게 기획 의도다.

전시 작가는 조너선 브로프스키·키키 스미스·배형경·줄리언 오피·백남준 등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와 개념미술 작가부터 국내외 주요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별관에서는 [Light] 특별전이 한창이다. 빛의 물질성을 연구하고 지각예술(perceptual art)을 작업하는 세계적인 작가 제임스 터렐의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 작품을 푹신한 소파에 앉아 바라봤다.

위 기획전들을 보면서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그리고 국제적인 경매회사에서 거래되는 작품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감각적인 작품을 컬렉션한 관장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하우스미술관의 구정순 관장을 야외 뜰에서 만났다.




세계적 명성 얻은 작가들의 작품 전시


▎제임스 터렐의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와 서도호 작가의 [Gate-Small].



인터뷰는 첫 컬렉션 작품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구 관장이 23살이었던 시절, 그러니까 반세기 전에 구입한 박수근 작가의 드로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 구 관장은 MBC 계열 광고회사에 재직하고 있었다. 회사가 인사동 홍익건물 1층이라 점심시간에 주변 갤러리 작품을 보는 게 즐거운 일과였다. 어느 날 혼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전시 감상에 매료됐는데, 특히 박수근 작가와 권옥연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입사한 해인 12월 보너스를 두둑이 받게 돼서 망설임 없이 수중에 20만원으로 박수근 작가의 작품을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사게 된 것은 30대 후반이었다.

구 관장은 30대에 최고의 CI(Corporate ldentity) 전문회사의 주역이었다. 금성사 CI를 시작으로 굵직한 기업의 CI를 진행하던 중 33살에 미국 디자인포커스 회사의 한국지사장이 됐다. KBS·KB국민은행 등 CI 전문회사에서 월등한 실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30대 후반 자금이 확보되자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사회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했다. 이탈리아 도무스, 뉴욕의 파슨스 등 교육기관을 염두에 뒀으나 미술관으로 결정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정신을 기조로 미술 전시를 보고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컬렉션하는 기준도 분명했다. 국내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은 기존 갤러리에서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제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컬렉션의 중심이 되는 작품 성향은 어떤 게 주가 됐을까? 기준은 까다롭지 않았다. 창의성을 갖고 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작가로서 스토리텔링이 풍부하면 좋았다. 그렇다 보니 전시된 작품마다 설명을 적절하게 표기해서 낯선 작가이지만 작품 감상에 무리가 없도록 했다.

구 관장이 처음으로 언급한 작가는 서도호 작가의 [Gate-Small]이었다. 이 작품은 ‘한국 전통 건축물의 문 형태를 반투명한 실크 천으로 만든 것으로, 천장에서 내려오는 와이어 끝에 매달린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인해 더욱더 가벼워 보인다. 육중한 무게감으로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실제 문과는 달리, 이 작품은 마치 개념으로 옷을 접어 여행 가방에 넣고 다니듯 소지하거나 이동이 가능하다. 본래 있던 맥락에서 옮겨져 매번 새로운 의미가 창출될 수 있는 건축물로 변모한다’고 설명돼 있다. 구 관장은 서도호 작가 모친과의 친분으로 서도호 작가가 실제 살았던 집의 전통 건축물을 본 인연도 있다. 작품의 형상은 작가가 살았던 고향 집에서 유학 중인 미국으로 이동하는 개념미술과 설치, 조각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컬렉션 기준은 창의성과 스토리텔링의 풍부함


▎데이비드 호크니 [Pictures at an Exhibition].



1층 ‘Living Room’에 설치된 작품 중에서 두 점을 살펴봤다. 먼저 미술관 컬렉션 중 가장 큰 회화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작품이다. 구하우스 미술관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있는, 무려 가로 길이가 873.8cm에 달하는 [Pictures at an Exhibition]이다. 구 관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LA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당시 데이비드 호크니는 작품이 미술관에만 거래되길 바랐고, 구하우스미술관의 컬렉션 스토리를 확인한 후 거래를 수락했다. 작가의 LA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그의 실존 인물들의 모습을 총망라해 2018년 제작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1980년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작업했던 ‘포토콜라주(photo collage)’의 디지털 버전이다.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함축해 모든 인물과 오브제는 부피감을 가진 입체적인 모습이다. 바로 옆에는 벨기에 출신의 한스 옵 드 빅(Hans Op de Beeck)의 이 있다. 한스 옵드 빅은 카셀도코멘터 등 세계의 굵직한 전시에 소개되는 아티스트다.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소녀를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자식의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이 부모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구 관장은 상하이 아트페어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2층 다락방(Attic)에 설치된 작품들 조각과 설치작품도 눈에 띄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대작이 있었다. 현재 베니스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뮤지엄 주인공,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전 남편이기도 한 에른스트는 우연적 요소·꿈·환상 등 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한 작품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작가의 후기작인 이 작품은 침대·우리(cage)·거울 등 그래픽 이미지의 조합으로 비논리적인 오브제의 병치와 몽환적 분위기가 살아 있다. 구 관장은 15년 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2층의 또 다른 초상화 방(Portrait Room) 중앙에는 대형 원형 구조의 설치 작품이 있다. 네덜란드 작가인 어윈 올라프의 [The keyhole]이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테리어로 꾸며진 작품으로 설치·사진·영상 등 세 가지 매체를 하나의 주제로 보여주고 있다. 외벽에는 총 10장의 사진이 걸려 있고 양쪽 문의 열쇠 구멍을 통해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장소와 걸맞지 않은 작품은 설치하지 않고 수장고 보관

▎어윈 올라프의 [The keyhole].


구하우스미술관의 설계와 전시 방식은 타 미술관에서 접할 수 없는 특색을 지녔다. 구 관장은 구하우스미술관을 시작하기 전 소장된 작품들을 건물 안에 설치하면서 공간과 작품이 어울리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리고 ‘집 같은 미술관’, ‘미술관 같은 집’을 구현하기 위해 최종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건축상을 받은 조민석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다. 건물 소개란에는 “구하우스미술관은 ‘하나이면서 여러 가지인’ 공간으로 표현됐다. 외부적으로는 직선과 곡선, 내부적으로는 직각과 예각, 둔각의 코너와 오목하거나 볼록한 공간들을 만들어내 상자형의 전시공간들 속에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유도한다”고 돼 있다. 야생화와 들풀, 수목으로 조성된 야외 정원은 ‘2021년 양평정원’으로 선정돼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공식 등록됐다.

미술품이란 감상과 소유를 할 수 있는 향유의 대상이다. 동시에 재산적 가치를 지닌 투자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 관장의 컬렉션은 투자성과는 거리가 멀다. 실험적이고 창의성이 뛰어난 작품 컬렉션에 집중한다. 미술관 개관 이후 작품 판매는 하지 않았다. 구 관장은 구하우스미술관 공간과 컬렉션 방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고른다. 때로는 장소에 걸맞지 않으면 구매한 작품을 설치하기보다 수장고에 보관하는 성향도 있다. 장식 지향형 소비자이자 순수한 미술애호가 소비자인 셈이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 사진 구하우스미술관 museum@koohou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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