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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9)] 아미미술관 박기호 관장

정영숙


[정영숙의 아트테크-컬렉터의 수장고를 열다(9)] 아미미술관 박기호 관장 

당진 베스트 여행지… 인생 컷을 찍는 미술관 


폐교를 미술관으로… 관람객 연 16만 명 문전성시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미술관… 레지던시도 운영

▎박기호 아미미술관 관장. / 사진:아미미술관
충남 당진에 위치한 아미미술관으로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당진의 여행지’를 검색했다. 왜목마을과 삽교호 등이 관광 여행의 대표적 명소라면, 아미미술관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부동의 1위였다. 당진터미널에서 버스로 7분 거리에 있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당진IC를 나와 15분 내 거리에 있다. 아미의 뜻은 당진에서 가장 높은 아미산과 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의 아미(ami)에서 연유됐다. 친구처럼 가깝고 친근한 미술관을 뜻하는 셈이다. 아미미술관에 거의 도착할 때쯤 길가에 키 큰 나무들로 빼곡하게 둘러싸인 담벼락이 보였는데, 바로 곁에 주차장이 있어 그 안쪽이 미술관임을 알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건물 벽에 담쟁이 넝쿨과 유사한 녹색 글씨의 아미미술관(Ami Art Museum) 안내판을 보고 입구로 들어갔다. 수국이 피어난 양쪽 길로 걸어가니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듯 내부 공간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미미술관은 폐교를 미술관으로 등록한 곳으로, SNS에서 명소로 꼽힌다. 먼저 입구 오른쪽에 나 있는 작은 길을 따라가면 작은 잔디밭 운동장이 있다. 안쪽 건물에는 지베르니 카페가 있었다. 우선 전시를 보기 위해 교실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중앙에서 좌측 3개 교실을 각각 전시장으로 개조했는데,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획전 주제는 . 다채롭게 연주되는 초록의 향연으로 관람객들의 내면에 작은 울림이 깃들기를 바라는 전시였다. 초대작가는 김물길·유근영·장노아·최나무·최선령·홍일화 작가다. 주제에 맞는 작품들이 공간과 어울려 전시돼 관람객들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오른쪽에 있는 3개 교실 전시장과 복도에는 설치 작품으로 구성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은 사진을 남긴 왼쪽 3개의 공간이 아미미술관의 핫 플레이스다. 분홍과 파랑 그리고 흰색으로 구분된 각 전시장은 강렬했고, 나뭇가지를 활용한 설치 작품이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복도까지 연결된 나뭇가지의 잎새는 깃털로 구성돼 ‘인생 컷’을 남기려는 관람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교실을 나와 뒤편 아담한 복합문화공간 ‘메종드 아미’를 찾았다. 판화와 아트상품으로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복도에 ‘나의 정원… 모두의 정원, 박기호’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 한 줄의 글에서 생태문화예술 미술관을 만든 박기호 관장의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마추어 사진가들 입소문에 당진 핫플레이스로


▎아미미술관 작품1, 2 / 사진:아미미술관
박 관장과 만나기로 한 지베르니 카페로 향했다. 설치 작품으로 구성된 교실에서 분홍색 셔츠를 입은 모습에서 설립자이자 아티스트의 모습이 물씬 풍겼다. 박 관장은 미술관을 운영하기 전에는 아티스트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화가를 동경했고, 이후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1983년 추계예술대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산동네에 살면서 느낀 삶의 애환을 담은 작품 ‘골목-83’으로 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그 후 파리 국립미술대학(E.N.S.B.A)으로 유학을 떠나 파리에서 8년을 거주했다. 파리 체류 중에 설치미술가 구현숙 작가를 만난 것이 인연이 돼 귀국 후 결혼했다. 모교에서 6년간 겸임교수를 하며 작품활동을 하다 고향인 당진으로 옮겼는데, 당시 폐교였던 유동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두 작가는 1994년부터 임대 거주하며 교실을 작업실로 사용, 학교 내외부를 다듬어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나무와 꽃을 심는 일에 주력했다. 나무들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찾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 앞은 비포장도로였는데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폐교를 작업실로 사용한 지 7년 후 교육청에서 매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입찰에 참가해 끝내 낙찰 받았다. 하지만 당시 졸업생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교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상실감이 커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곳곳에 걸고 매각을 반대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폐교를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건물의 원형을 살리면서 작품을 조화롭게 설치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 후에는 생태적인 환경을 조성하려고 학교와 주변을 가꾸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2011년 박 관장은 아미미술관으로 등록했다. 당시 컬렉션은 대부분 박 관장의 작품이었다. 이 외에는 구 작가의 작품 일부, 그리고 기증받은 골동품들로 목록을 구성했다. 그 후 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구입해왔다. 미술관 운영 초기에는 입장료 1000원을 비닐봉지에 넣게 했는데 며칠 지나면 비닐 속이 가득했다. 전국에 있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사이에 촬영하기 좋은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일반 관람객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전시장과 외부 공간을 더 보강해 입장료를 3000원으로 올렸다. 그럼에도 그 당시 연 16만 명, 주말에는 약 1000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래서 주차시설을 확대하고 전시장의 설치 작품 등을 확장해 현재는 입장료 6000원을 받고 있다. 초기에 반대했던 분들은 폐교가 예술 공간으로 활성화되고 지역을 빛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홍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 관장은 지방의 작은 미술관에 관람객이 몰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세계적인 작가와 유명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서울이나 대도시의 미술관을 가면 될 것이다. 지방의 작은 마을을 찾아 오는 것은 힐링을 느끼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박 관장은 프랑스 체류 당시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에 가서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이런 공간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남기며 그 후 매년 두세 달은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세계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특히 오지의 문화공간에 더 매력을 느꼈는데, 1984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은 첫 방문 후 두 번을 더 방문했다. 조선과 철강이 무너진 작은 도시에 개울 위를 고가로 연결해 미술관을 만든 초기의 모습과 지역 주민이 도시를 청소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를 목격했다고 했다. 특히 식물원과 미술정원·미술관이 통합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이뇨칭 미술관(The InstitutoInhotim)은 박 관장이 가장 많이 방문한 곳 중 하나다. 독일의 인젤 홈브로히 미술관(Museum InselHombroich),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뮌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Projekte Münster)를 찾았고,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VeneziaBiennale )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 이런 경험으로 그는 향수·자연·미술의 조화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아미미술관에도 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학교 건물 내외부에는 예술이 자연과 더불어 피어나고 있었다. 예컨대 운동장의 나무 중에는 반쪽만 푸른색인 나무가 있다. 어느 날 죽어가는 나무가 마음에 걸려 푸른색으로 칠하고 장식을 했더니 자연을 이용한 설치가 되면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는 주요 장소가 됐다. 낙후된 건물 벽에는 옛 낙서도 그대로 남기고 드로잉으로 자연스럽게 예술장치를 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레지던스 운영하며 지역 문화역량 축적에 힘써


▎위에서 내려다 본 아미미술관 전경. / 사진:아미미술관
야외전시장으로 사용되는 아미미술관 운동장에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놓여 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자연에서 발견하는 예술작품의 매력을 즐기게 된다. 아울러 실내 전시실 총 6실, 복합문화공간 ‘메종 드 아미’, 한옥, 카페 지베르니, 산책로가 정갈하게 구성돼 있다. 한옥은 전통가옥을 복원하여 선조의 생활도구와 생활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레지던스 작가들의 거주 숙소로도 활용 중이다. 연구실엔 2000여 권의 교양·미술·철학·종교 서적을 비치하고, 200여 점의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박 관장은 작가를 지원하는 창작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당진 오섬포구에 있는 오래된 소금 창고를 매입, 직접 복원했다. 아미미술관에서 6년간 진행됐던 레지던시는 총 47명의 작가를 지원했다. 2019~2022년에는 ‘에꼴 드 아미 레지던시’를 운영하며 실험적이고 주제의식이 투철한 작가들을 지원했다. 특히 2021년에는 ‘당진의 포구’라는 주제로 창작을 진행했는데, 한때 당진의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포구들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포구와 관련한 문화와 기억을 되살리고, 예술로서 재탄생시키고자 하는 취지였다고 했다.

입주작가들의 당진 포구에 관한 워크숍과 열정적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레지던스는 당진의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거듭나 당진의 지역 문화 역량을 축적하는 문화저장고 역할을 했다. 당시 입주한 정희기 작가는 국문학을 전공한 설치·회화 작가로, 바느질을 통해 지나간 포구의 흔적을 표면화시키는 데 주목했다. 입주 작가 중에서 이지수 작가는 복합문화공간 ‘메종 드 아미’에 작품을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포구, 집을 떠나 어디론가 흩어진 사람들이 꿈을 통해 또는 신적인 존재의 도움으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으며 바다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았다”는 이 작가는 당진에서의 작품 활동을 오롯이 작업으로 승화시켰다.

뚜렷한 주제 담은 전시… 관람객에 즐거움 선사

2021년부터 박 관장은 (재)당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당진에 시립미술관 개관을 추진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석문방조제에서 세계적인 아트 축제를 열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석문방조제는 당진 장고항리 바닷길을 연결하는 방조제다. 길이 10.6㎞, 높이 13 로, 방조제 위로는 왕복 2차선 도로가 곧게 뻗어 있다. 그 벽면을 그라피티(graffiti) 작품으로 연출한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방조제로 거듭날 것이라 한다. 그는 이사장으로서 인사말을 할 때 “Art(문화예술), Eat(먹거리), Shop(살거리)”3가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지역에 맞는 지형과 바람결 등을 고려한 장소 특수성 복합문화공간 구축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박 관장은 13년째 아미미술관을 운영하며 시립미술관으로서의 역할 또한 충분히 해내고 있다. 미술관 운영을 지역과 특수한 공간, 그리고 관람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시대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미미술관을 찾는 사람은 작품 감상만 하려고 방문하지 않는다. 꾸미지 않은 자연의 숲에 아늑하게 자리한 폐교의 정서, 그리고 인생 컷을 찍고 추억을 남기려는 목적도 있다. 이런 관람객의 심리를 반영한 독창적인 설치 작품들, 그리고 뚜렷한 주제를 담은 전시는 기본이고,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전시에 그는 주력한다.

아미미술관은 당진시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중요한 문화 쉼터이자 공공자산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미술관 기능을 떠나 자칫 관광지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 박 관장은 “(예술)정신은 고착화되면 안 된다”는 철학으로 매년 여행을 떠나고 있다. 세상을 보는 그의 눈빛에는 아직도 호기심이 가득하다.

※ 정영숙 - 갤러리세인 대표. 전 현대백화점 현대아트갤러리 수석큐레이터.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으며, 추계예술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행정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여주시 명장심사 도예파트 자문위원이며 ㈔한국지역문화학회 감사로 있다. 대학과 기업에서 미술시장과 투자 등을 강의하는 한편 미술비평 등 글쓰기와 컬렉터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다.



원본출처: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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