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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가의 최고 무기는 직감?

변종필

미술품 감정가의 최고 무기는 직감이다?



한국 미술품감정평가원이 지난 10년(2003~2012) 동안 감정한 5,130점의 작품 중 4분 1(25%)에 해당하는 1,330점이 위작으로 판명 났을 만큼 미술품위작은 미술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위작비율은 2010년 약간의 내림세를 보였을 뿐 2011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실정이다. 미술품 위조는 미술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가짜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위작을 가려내는 감정의 기준은 무엇일까? 미술품 감정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현대에서는 과학감정이 미술품감정에 큰 힘으로 작용하지만, 여전히 감정의 꽃은 안목감정이다. 기계적 차가움이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경험과 직감은 변함없이 미술품감정에서 빛을 발휘한다. 경험과 직감 중에서도 감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직감이다. 직감은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때로는 경험과 무관하게 직감적으로 전달되는 무언의 힘에 의해 이끌려 진위를 판별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미국의 폴 게티 뮤지엄에서 쿠로스 상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는 인간의 직감이 과학을 뛰어넘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폴 게티박물관은 미술상 장-프랑코 베치나가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상으로 소개한 쿠로스 상을 보고 전례가 없는 완벽한 보존형태와 작품성에 반하여 소장하기로 결정하고 구매에 앞서 진위감정을 실시했다. 핵심표본을 채취해 전자 현미경과 전자 마이크로 분석기, 질량분석계, X-레이 회절, X-레이 형광 등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표본을 분석한 과학감정 결과 쿠로스 상은 고대 채석장에서 캐낸 백운석으로 밝혀졌다. 재료의 시대상로 미루어 모조품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과학 감정이 쿠로스 상을 진품으로 판정한 것이다. 폴 게티 박물관은 조사에 만족하며 쿠로스 상을 구입하기로 했다. 몇 달 후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각상”이라는 찬사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쿠로스 상을 소개하며 박물관을 대표하는 조각품으로 홍보하였다.

그런데 폴 게티박물관이 쿠로스 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들떠있는 가운데 이 조각상을 보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미술사학자이자 폴 게티박물관의 운영위원인 페데리코 제리였다. 제리는 조각상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석상의 손톱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오는 불편함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그는 쿠로스 상을 진품으로 믿지 않았다. 이 같은 불신은 제리의 직감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리스 조각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던 에블린 헤리슨 역시 쿠로스 상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디까지나 직감이었다. 두 사람이 겪은 직감은 전 메트로폴리탄미술 관장이자 전문미술감정가였던 토머스 호빙에게도 일어났다. 그는 쿠로스 상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2000년 전 조각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것(fresh)'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이라는 것에 의문이 든 순간이었다.

쿠로스 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혹이 잇따르자 폴 게티박물관은 뒤늦게 세미나를 개최하고,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조각상을 재 감정 했다. 그 결과 쿠로스 상은 처음 감정과 달리 위조품으로 밝혀졌다. 과학 분석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절대적 믿음을 가졌던 과학 검증의 신뢰도가 무너지며, 과학 감정 역시 어디까지나 하나의 감정 과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폴 게티박물관의 사례처럼 미술품 위조 여부를 밝히는 전문가들의 경우 상당수가 직감에 따른 판단을 한다. 위조품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가짜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직감은 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통한 연구는 미술품의 미술사적 가치와 의미를 배우고, 미술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연구결과가 미술품 감정 시 곧바로 직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감은 타고나는 것인가?

20세기 전반 미술 감정가로 화려하게 활동했던 미술사학자 버나드 베런슨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감식안을 지녔다.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직감으로 진품과 위품의 차이를 찾아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버나드 베런슨 자신도 어떻게 그러한 직감이 생기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감정과 관련하여 덧붙인 그의 말에서 직감의 근원을 찾아 볼 수 있다.

“감정은 경험의 문제이다. 무의식적으로 직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림을 보면 그것이 대가의 진품인지 아닌지 단번에 알아본다. 그 다음은 어떻게 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지 그에 필요한 증거를 모으는 일을 고심할 뿐이다.”

실제 버나드 베런슨은 자신이 관심 있었던 시대의 미술에 대해서 심취한 만큼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그 감상에서 얻은 감정을 축적했다. 이러한 경험은 어떤 작품을 대했을 때 그동안 축적된 수십 가지의 데이터가 순간적으로 작동하며 직감적으로 진위를 판단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버나드 베런슨 같은 직감은 미술 감정가 토머스 호빙이 여러 위작감정가들을 인터뷰한 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의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감정가들이 작품을 대하는 순간 축적된 각종 시각정보가 마음속에서 폭풍처럼 밀어닥치는 증세를 경험했다고 한다. 위조품을 대하면 무의식적으로 거부의 소리나 어떤 암시가 내면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로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위조품사례를 보면 직감에 의해 진위가 결정된 사례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이러한 증언들을 부정하기만은 어렵다. 오히려 경험과 직감이 미술품감정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감정에 있어 방해요소는 언제나 존재한다. 또한 미술품감정의 신뢰도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나 제도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위작 판별에 경험과 직감이 커다란 작용을 한다는 결과로 볼 때 생활 속 미술품 감상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한다.

“수천 개의 미술품을 아는 사람은 수천 개의 위조품을 아는 것과 다름이 없다(Horatius).”는 말처럼 많은 작품을 보면서 키운 미적 안목은 영리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미술품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성취할 만하다. 직감은 타고난 것이지만, 남보다 뛰어난 직감은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 그 쌓임에서 싹튼다.


비자트2월호

관련해서 읽을 만한 책 : 말콤 글랜드웰 저 이무열 옮김 『첫 2초의 힘 블링크』21세기 북스. 2005. / 토머스 호빙 지음, 이정연 옮김『짝퉁 미술사』이마고.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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