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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직설화법-김소연의 행복민화

변종필

욕망의 직설화법-김소연의 행복민화


민화는 이성적 진리탐구보다 자연과 신화에 바탕을 둔 감성적 믿음을 여러 상징적 대상으로 나타낸 그림이다. 이에 민화는 과학이나 수학적 진리보다, 감정의 직설화법으로 한국인의 생활 태도와 정신을 명료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요즘 한국 미술계에서 현대 민화가 새로운 소통의 장르로 부각 받는 것은 시대를 넘어 민화의 보편성과 대중성이 그만큼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던한 스타일과 독특한 화면구성으로 민화의 보편성과 대중성을 확장하는 민화 작가 김소연은 Stephanie S. Lee라는 이름으로 최근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의 민화는 뚜렷한 자기색깔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한국민화를 모티프로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무병장수(無病長壽), 부귀영화(富貴榮華), 입신양명(立身揚名), 백년해로(百年偕老), 부귀다남(富貴多男), 부귀공명(富貴功名) 등 인간의 본질적 욕망은 과거나 현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선조들이 그림을 통해 바라던 건강, 장수, 다산, 성공, 부부사이의 화합 등의 염원은 모습만 바뀌었을 뿐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바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전통적인 배경 속에 현대물들을 배치하여 인간의 욕망을 상징화 하고 있지만, 이것은 물질세계에 대한 비판이나 소모적인 한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닌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작품 속의 보석이나 명품들은 외형은 바뀌었을지언정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표현 한다…인간의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희망일 수 있다. -작가노트

 

김소연은 전통 민화에 담긴 건강, 다산, 장수 등의 상징성을 강조하지만, 표현 작품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에 집중되어 있다. 더하여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부정적 의미가 아닌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한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인간의 행복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예로부터 물질적 풍요를 행복의 절대 요소로 여기고, 미래의 희망으로 생각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소연의 민화작품은 물질적 욕망을 장식적으로 표현하여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보편적이며 대중적 욕망으로 극대화했다. 이는 주요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Cabinet of DesireⅠ>, <Cabinet of DesireⅡ> 시리즈는 인간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대표작이다. 전통 책가도의 구성을 차용했지만, 정조가 책가도를 단순한 기쁨이나 욕구를 채우는 물질이 아닌 올바른 삶, 고결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을 쌓기 위한 필수 공간임을 강조했다던 것과는 다르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책이나 문구류가 아닌 보석과 보석상자이다. 명품가방을 비롯한 티파니, 까르띠에의 보석과 상자들이 19세기 책가도를 장식했던 중국 도자기나 귀중한 소장품을 대체했다. 캐비닛을 채우고 있는 보석상자, 하늘색 상자위에 십자형 흰색 리본은 모든 여성을 설레게 하는 티파니의 유명한 포장. 그 포장만으로도 행복함을 부풀게 한다는 푸른 상자와 다이아몬드를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는 ‘티파니 세팅(Tiffany Setting)’이 돋보이는 보석이 캐비닛을 채우고 있다. 이는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상징한다. 결국에 정조 때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그려졌던 책가도가 변질되어 조선후기에 개인적 욕망이 가미된 진귀한 도자기와 희귀한 장식품들로 채워졌고, 현대 민화에서는 현대인이 소유하고 싶은 명품과 보석이 책가도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김소연 작가의 민화는 현대인의 욕망, 엄격하게 말한다면 자신(가족포함)의 욕망을 대변한다. <Mother, my history>, <Daughter, my future> 등은 가족 중심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욕망으로 근본적으로 <Cabinet of Desire> 시리즈에 담고자한 상징성과 맥락적으로 같다. 민화의 보편성을 차용했지만, 주관적 욕망이 강하다. 그녀의 민화는 차용과 변용을 통한 비교와 대조 형식으로 민화의 재해석을 시도하는 특징을 지녔다. 화면구성은 민화의 형식을 취했지만, 표현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유행, 자연과 인위 등 상호 비교되는 대상을 대련 식으로 배치하여 인간의 욕망을 드러냈다. <traditional Family & Modern Family>, <Modern Wish & Venerable Wish>,<Dream ChasingⅠ&Ⅱ>, <Haute ChasingⅠ&Ⅱ>, <Haute Pattern & Natural Pattern> 등이 여기에 속한다. <traditional Family & Modern Family>는 과거와 현대의 가족구성원을 비교했다. 전통과 현대의 가족을 대련 식으로 비교하고, 배치하여 행복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행복의 가치관을 ‘물질’에 두느냐 ‘가족애’에 두느냐의 차이랄까. 현대사회에 가족은 대가족보다 핵가족 중심이다. 많은 자녀보다 한 명을 낳아 남부럽지 않은 물질적 풍요 속에 키우는 것이 대세처럼 바뀌었다. 그러나 고가의 물건에 쌓여있는 Modern Family와 가족 간 화목함이 충만한 traditional Family 중 어떤 가족구성원이 더 행복할지는 알 수 없다. 대련형식으로 비교한 <Modern Wish & Venerable Wish>란 작품 역시 행복의 기준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소원이 있다. 그러나 그 소원이 누군가는 대의를, 누군가는 개인적 욕망에 치중되어 소원의 의미와 가치가 다를 수 있다. <New peace & Nu piece>작품처럼 같은 발음이지만,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욕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식 표현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밖에 전통 민화의 ‘호작도’를 여러 화려한 색채와 색다른 구성으로 표현한 작품들 역시 유사한 소재의 반복을 통한 인간의 보편적 희망이나 욕망의 표출이다.

김소연 민화에서 주목할 또 하나는 빼어난 장식성과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기법이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디자인은 제목의 ‘chasing(표면 디자인의 형태를 뚜렷하게 하거나 세밀하게 만들고 양각 부조의 높이를 필요한 만큼 높이는 데 사용되는 기법)’처럼 원석을 빛나는 보석으로 세팅하듯 감각과 세밀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구성과 형식, 기법 등에서 현대 민화에 새로운 형식의 패턴(Pattern)을 제시한 조형성은 그녀의 민화가 지닌 장점이다.

궁극에 김소연의 민화는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삶의 최대 목적은 ‘행복추구’라는 단순논리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근원에서 전통 민화가 추구했던 조형어법을 자신만의 현대적 화풍으로 재구성하여 민화의 미적가치를 넓히고 있다. 무병장수, 충효, 사랑 등 보편적 욕망이나 대의보다는 사적인 희망과 욕망을 세련된 장식미와 조형미로 구현하고 있다.

 

시대는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질 뿐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대 민화가거에 머물러 있는 정신이 아닌 현대인의 시대상을 담아야 하는 까닭이다. 현대인은 욕망의 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망이 끝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행복은 과잉과 결핍이 아닌 중도를 지킬 때 올바른 삶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김소연의 민화는 인간의 행복을 물질소유의 여부로 판단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정신적 만족의 여부가 행복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령 이것이 작가의 의도와 다를지라도 그림을 통해 우리가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물질의 탐욕은 탐욕,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현대 민화가 더는 무명화가의 그림이 아닌 이상 자신만의 스토리와 독창성 획득은 필수이다. 이는 민화가 무의미한 감각적 욕구충족이 아닌 현대인의 꿈과 희망을 비추는 심경(心鏡)이자 현대미술에서 논의의 대상(예술)이 되기 위한 요건이다.

결국, 인간의 기본 욕망을 표현하는 많은 작가 중 한국 민화의 대표성을 이어가는 것은 뚜렷한 자기 세계를 지속하는 작가일 것이다. 개별성 짙은 조형미를 추구하는 김소연 작가의 색다른 민화 탐미에 흥미를 갖는 이유이다.


월간민화-201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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