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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응시 : ‘내안의 또 다른 나’

변종필

6인의 응시 : ‘내안의 또 다른 나’

 

“언제나 나 자신이 두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Carl Jung


고딕 단편소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는 선과 악의 이중성을 지닌 인간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본성이 일으키는 끝없는 갈등과 고뇌를 심리적으로 잘 묘사한 소설로 유명하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내면에 잠재한 억압된 자아로 박사의 평소 모습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하이드의 세계를 향한 이유 없는 공격은 무의식적으로 내재한 지킬박사의 분노 표출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이중인격이 상충하는 갈등과 고뇌, 즉 인간의 내적 양면성을 상징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보듯 인간은 때때로 자기 안의 낯선 자아를 느낄 때가 있다. 칼 융의 주장처럼 ‘인간의 마음속에 전혀 다른 두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일종의 병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1)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는 전시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6가지 응시이자 탐구이며, 과정은 달라도 출발과 끝은 인간이란 존재 또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참여 작가 6인은 재료와 표현방식의 개인차에 따른 뚜렷한 특성이 있지만, 오랜 시간 자아(개인)의 존재 가치를 탐구해온 공통분모가 있다. 박승예(공포영화), 디황(오토바이가게), 한효석(미군기지촌) 등은 삶의 테두리에서 체험한 것을 창작활동의 바탕으로 삼았다는 유사점이 있다. 오창근, 한승구의 기계적이고 섬세한 머티플재료와 송필의 원시적 조각재료와 형태는 사뭇 대조적이지만, 삶에 대한 긍정과 신뢰를 작품의 기저로 삼은 공통점이 있다. 6인의 작품은 각기 다른 제작 동기와 독자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에 인간의 이중성, 다면성이라는 단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지을 만한 공통요소를 지녔다.

 

박승예는 단순한 재료(볼펜)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괴한 형상을 그린다. 신(新)변종생물이나 돌연변이 같은 독특한 형상은 작가의 내면에 숨겨진 공포와 상상력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괴물이다. 괴물적 형상은 어릴 적 겪었던 공포영화체험처럼 내면과 상상 속에 잠재해 있는 두려움의 표상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자라난 또 다른 자아이다. 하나의 얼굴에 중첩되어 표현된 여러 형상은 작가의 심리적 불안이 만들어낸 자화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면적 구조 속에 복잡한 관계로 얽힌 현대인의 불안과 두려운 일상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이기도 하다. 궁극에 박승예 작가의 괴물적 형상은 자신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이중적 자아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한승구는 거울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현실 속의 모습을 대립시켜 감지할 수 있는 입체작품을 지속한다. 가면시리즈는 얼굴의 형상을 이루는 다면 거울을 통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망각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자기인식의 도구이다. 거울 마스크(mirror mask)는 특정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관객이 접근하는 순간 이미지는 사라지고 거울만 남는다. 관객은 조각의 실체를 감지할 수 없다. 다각도에서 반사되는 거울마스크는 실제 본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현대사회가 빈틈없이 짜인 체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집합체임을 암시한다. 근작에서는 마스크의 개념을 인간에서 동식물로 더욱 확장하여 적용한 시도를 선보인다. 동식물 역시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스스로 보호색을 띠거나 모양을 바꾸는 움직임이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짓 얼굴(마스크)로 자신의 실체(본성)을 감추는 행위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효석의 작품은 비인간적이며 혐오스러운 형상이 중심을 이룬다. 미군 기지촌에서 성장하며 보았던 불평등, 가업으로 운영하던 농장에서 가축을 도살했던 잔인성, 3년 동안의 군 생활에서 겪은 불합리와 모순된 위계질서 등의 경험이 작품제작의 직접적 동기로 작용했다. 현대사회에서 용도 폐기되는 소모품처럼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육되고 도살되는 동물(돼지)의 존재가 곧 현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다. 한 꺼풀 벗겨진 고깃덩이 초상은 진실을 외면하고 사는 모든 계층의 모순적 삶을 상징한다. 얇은 외피 속에 감춰진 인간의 본질도 고깃덩이라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인간도 동물처럼 외피를 걷어내면 붉은 살점으로 이뤄진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말살하는 폭력, 인종차별, 살인, 테러, 전쟁 등 현대사회의 잔혹사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인간성 상실의 결과이다. 궁극적으로 생명체의 고귀한 존재성을 짓밟은 비인간적 행위는 내면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것임을 상징한다.

 

디황의 작품은 내면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희로애락을 강한 오브제와 어두운 계열의 색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체질적으로 어둠을 부정적 시각보다 긍정적으로 여긴다. 어둠을 통해 밝음을 인식할 수 있으며, 안락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어둠 속이라는 지론에 근거한다. 이는 인간이 규정한 모든 것에 회의를 품고 편견을 깨고 싶은 작가적 욕망에 기인한다. 자신을 회의론자이며 절대긍정주의자라고 평가한 것처럼 어떤 현상을 이분법적 대립쌍으로 보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삶 속에서 부딪히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고스란히 작품화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도는 무의식에 잠재해 있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자연 치유하고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창근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커뮤니티아트를 지향한다. 3D 효과로 만들어진 실상과 가상의 중첩세계는 참여자에게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또 다른 세계를 제공한다.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며 사물의 지각하는 관념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가상공간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욕망을 대신 실현해주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점점 가속화 되어가는 현대기술은 개인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끝없는 확장을 시도한다. 일종의 놀이처럼 진행되는 오창근 작업은 단순히 기술적 발전의 흥미에 머물지 않고 가상공간의 나를 통해 현실 속의 자신을 재인식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송필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돌과 동물은 오랜 시간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예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차용한 소재들이다. 동물과 자연석의 교합으로 인간과 자연, 동물과 자연의 공존, 삶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관한 자기 성찰을 끝없이 이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오만을 괴롭히기 위해 굴종하는 것, 자신의 지혜를 조롱하기 위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 진리를 위해 영혼의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것’2) 등을 예시한 차라투스트라의 시각처럼 연약하기 짝이 없는 동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자신을 포함한)의 모습이다. 동물이 짊어지고 있는 돌의 무게감이 어느 순간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로 전이(轉移)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돌의 무게감 때문에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힘겨움 속에도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동물의 시선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보인다.

 

인간의 의식적 태도와 무의식적 태도를 온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양면성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상반되고 서로 다른 경향이 한 몸 안에 존재한다. 선과 악, 미와 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은 삶에서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유발된다. 불합리, 불안, 공포, 불만 등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위협받는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 경중으로 나타난다. 특히 갈등과 분쟁, 불공평과 불공정이 심화하는 현대 사회 곳곳에서 확대되기 쉽다.

그리스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을 네 가지 유형을 나눴던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자가 인간의 심리적 유형과 태도를 분류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그 학문적 성과에 여전히 이견이 있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심리적 태도를 명쾌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많은 작가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왔지만, 작가마다 인간의 양면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6인의 참여 작가들은 재료와 기술, 형태와 소재 등 작품을 구성하는 조형적 특징에서 각기 독자성을 지녔다. 하지만, 내안의 나, 즉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사물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 담긴 비판적, 자기반성적 메시지는 작가 개인을 넘어 이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고뇌의 문제들이 인간의 양면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각기 다른 성향과 삶의 층을 지닌 6인의 작품을 ‘내 안의 또 다른 나’라는 주제로 묶어 보여준 기획의도가 여기에 있다면 충분히 관심을 둘만 하다. 


1)카를 융 외 , 김양순 옮김 『인간과 상징』동서문화사. 2014. p.541

2)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황문수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문예출판사. 2010. p.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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