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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쥬 / 고통을 넘어서는 치유와 희망의 미장센

변종필



고통을 넘어서는 치유와 희망의 미장센




사진과 영상을 전공한 이쥬 작가는 서사(徐事)가 절정의 순간을 치닫는 미장센으로 독자적 사진 세계를 담아낸다. 장면의 앞뒤가 매우 치밀하고 구축적으로 느껴질 만큼 연극이나 영화의 미장센보다 더 극적이다. 그는 서사의 절정을 표현하는 사진 연출을 위해 연극, 연출, 영화를 배우고 극작가로도 활동한다. 그리고 작품은 항상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도시의 풍경을 담았던 <건축과 풍경>(2014)에서는 건축과 사람의 관계를, 몽골의 자연을 담은 <The Ground project>(2016)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자신만의 미장센으로 해석하고 표현했다. 특히 강론 감독의 <이소룡을 찾아랏_Looking for Bruce Lee>(2001)에서 영화 속 미장아빔(mise en abyme)형식의 포토로망(사진만으로 만들어진 영화) <착한 다리를 가진 여자_Object&Portrait>를 선보이며 사진 작업에서 연극적 완성도를 높이고, 은유적 표현으로 내용을 함축시키는 기법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처럼 서사가 명확한 사진을 지향해온 이쥬 작가가 3년 만에 ‘몸詩’라는 타이틀로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독자성 강한 새로운 미장센을 감상할 기회이다. 

‘몸詩’의 무대는 제주 4·3과 연관 있는 장소들이다. ‘어음리, 누운오름, 금오름, 월령선인장 포구, 곽지 앞바다’ 등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제주민들에게는 아픔과 슬픔이 묻혀있는 장소들이다. 작가는 제주의 비극적 장소에 배어있는 슬픔과 고통을 국적이 다른 여러 명의 퍼포머들을 등장시켜 자신이 해석한 4·3을 표현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퍼포머들의 몸짓과 표정은 역사적 아픔과 작가 개인의 슬픔이 오버랩된 미장센이다. 특히 세 명의 퍼포머들은 이번 작품의 배경과 더불어 핵심이다. 이들의 괴이하고 역동적인 몸짓과 표정은 ‘몸詩’라는 전시타이틀에 부합하는 시어(詩語)와 같다. 4·3의 서사는 퍼포머들의 몸과 얼굴을 통해 절정으로 치닫고 작가의 치밀한 미장센에 담겨 재구축되어 새로운 서사의 장을 열어젖힌다. 

이쥬 작가는 카메라 앵글 안에 잡히는 모든 장면을 총괄 기획한다. 장소와 인물은 물론 오브제나 날씨, 시간까지 관여한다. 한마디로 사진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연출한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콜라보레이션보다는 미장센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전시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전시는 ‘1부-진혼, 2부-저항, 3부-나비’의 이야기 중심 구성이다. 잔악한 사건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넋을 달래는 진혼을 시작으로 부조리한 사건에 당당한 저항의 태도를 견지하고, 그 저항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나비’에 담았다. 곧 ‘진혼-저항-나비’라는 서사 구도를 바탕으로 ‘아픔과 상처-저항과 소망-치유와 희망’으로 펼쳐지는 서사시를 완성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비장미가 흐른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모노톤에 슬픔, 고통, 절망 등의 감정이 입혀진 장면들이 화면을 주도한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산다. 상처의 깊이와 고통의 길이가 다를 뿐이다. 누구에게는 일상의 풍경이 누군가에는 평생의 아픈 풍경으로 기억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4·3은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다. 제주 4·3이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재해석되고 재평가되어 역사적 진실이 소환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쥬 작가는 4·3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다. 그래서 4·3을 직접 겪은 제주민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깊이와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칫 주관적 해석에 따른 타인의 시선에 머물기 쉽고, 왜곡된 이해로 표현될 여지도 있다. 이런 경계의 시선은 결국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는 4·3사건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그 아픔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역동적 몸짓으로 표현 가능한 퍼포머를 통해 작품의 진정성과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자신의 미장센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국적이 다른 퍼포머들과 대화를 통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역사의 진실을 공유하고, 퍼포머들 각자의 생각과 해석의 몸짓에 맡겨 제주 4·3의 쓰라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치 좋은 배우가 잘 짜인 연출에 의해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한 편의 연극 같은 구성을 지녔다. 이런 느낌은 몇몇 작품에서 확인된다. 

<몸시#누운오름>를 보면, 짙은 얼굴 화장의 퍼포머 세 명이 각자 표현한 고통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강렬한 표정이 각기 다른 고통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먼저, 세 사람 중 맨 위 한국의 퍼포머(Ramoo Hong)는 극한의 고통에 절규하는 표정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치는 단말마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아래 일본의 퍼포머(Mushimaru Fujieda)는 두 눈을 뜬 채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외마디조차 내지 못할 정도의 넋이 나간 표정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 느껴진다.(여기에는 부토(舞踏) 마스터로 불리는 육체 시인 후지에다 무시마루의 노련함이 한몫하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 퍼포머(Lucia Sombras)는 고통의 끝을 보여준 표정 같다. 마치 고통 후 맞이하는 죽음과 같은 침묵의 표정이랄까.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세 사람의 표정과 몸짓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고통의 순간일 수도,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본 관람자의 감정을 대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4·3사건을 듣고, 그 비극의 장소에서 느껴지는 역사적 슬픔과 아픔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표현한 고통의 몸짓이다. 세 사람의 퍼포머가 각자의 내면에서 내뿜는 미세한 감정선이 보는 이의 마음으로 전이된다. 고통의 표현은 동일 사건이라도 나라, 지역, 사람마다 다르다. 4·3 또한 지역과 사람, 장소와 세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기억한다. 
작품 <몸시#봉성리>를 보면, 감정선이 달라진다. 이 작품에는 4·3사건의 비극적 역사에 의연한 자세로 저항하는 몸짓이 담겨있다. 3인의 퍼포머가 전방을 응시하며 결연한 표정과 자세로 저항의 태도를 보인다. 비극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감정을 가늠하기 힘든 표정에서 더는 공포와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몸시#금오름>는 언급한 두 작품에 견주어 중의적이다. 메밀밭에서 해괴한 표정을 짓는 퍼포머의 표정은 슬픔을 애써 잊어야 하는 혹은 억지스러운 웃음으로 대처해야 하는 살아남은 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한편으로는 영원히 슬픔에만 잠겨있을 수 없는 현실의 냉혹함을 풍자하는 듯하다. 화장 밑 진실의 얼굴처럼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슬픈 현실을 꼬집는다.

언급한 작품들은 역동적인 몸짓, 강렬한 화장, 격한 표정 등의 색다른 미장센으로 4·3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여느 작품들처럼 배경이 비극의 장소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더는 편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아픔의 역사를 표현한 퍼포머들의 ‘몸詩’가 그만큼 울림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작품의 이야기를 연출하면서 누구보다 이 부분을 깊이 의식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몸시#금악리>와 같은 작품을 통해 힘들고 불편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싶은 작가 의도를 드러낸다. <몸시#금악리>는 수십 년간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산 사람들에게 아픔의 순간을 잊을 수 있는(혹은 이겨낼 수 있는) 휴식의 삶을 권유한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쉼’ 같은 작품이다. 고통과 슬픔, 죽음과 이별의 기억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여기에는 3여 년 동안 아버지를 병간호하다 이별한 작가의 경험도 제작 동기로 작용했다. 결국 4·3의 아픈 가족사를 겪은 모든 사람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위로와 치유라는 것을 강조한다. 극한의 고통을 담은 작품들 옆에 ‘쉼’과 같은 숨 고르는 작품을 배치한 이유가 읽힌다.

한편, 월령(선인장마을)의 무명할머니(4.3때 입은 턱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얼굴에 평생 무명천을 두르고 사셨다는 진아영 할머니_실존 인물)를 추도하는 작품 <몸시#월령포구>, <몸시#구두미포구>는 자연과 인물, 연출과 모델이 조화를 이룬 시적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끈다. 역동적인 몸짓 없이도 고통과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추도의 마음이 깊이 전달되는 힘이 있다. 특히 <몸시#구두미포구>에서는 제주 여성의 강건함과 당당함을 드러내고자한 작가의지도 엿보인다. 

‘사진이 소박한 대상으로 이해되든지 경험이 풍부한 숙련자의 작품으로 이해되든지 간에, 사진의 의미는 그 사진이 얼마나 공명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달려있다.’라는 수전 손탁의 말처럼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힘을 지닌다. <몸시#월령포구>, <몸시#구두미포구>는 사진만으로도 공감 폭이 크다. 

전시 작품 중 유일하게 퍼포머들 없이 바다가 품은 희망의 빛을 표현한 <몸시#곽지>는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남은 심상 풍경으로 보인다.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아픔은 바다가 삼키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빛처럼 어둠을 밝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신비로운 빛은 아픔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빛이다. 

이번 이쥬의 ‘몸詩’시리즈에서 느껴지는 사진적 효과, 즉 사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디테일한 자연의 표정은 작가의 섬세함과 연극, 영화, 연출에서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연출과 촬영은 물론 편집과 아날로그 프린팅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직접 제작한 실험적 작업을 통해 쌓은 경험들이 이번 ‘몸詩’ 작품에서도 중요한 밑거름이자 창작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퍼포머와 자연과의 관계, 장소와 역사에 관한 자유로운 표현, 표현대상의 그림자까지 고려한 시간의 선택, 자연의 변화 속에서 원하는 빛을 얻기 위한 숱한 기다림, 그리고 깊은 사색의 순간까지. 한 컷의 결정적 장면을 위해 구성한 미장센에 ‘몸詩’의 의미를 충분히 담았다. 무엇보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찾고, 동시에 스스로 삶을 냉정하게 바로 보기 위한 성찰적 무대를 시도한 것은 좋은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쥬 작가의 ‘몸詩’는 제주의 뼈아픈 역사의 고통을 넘어서는 치유와 희망의 미장센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한 전시다. 여기에 더하여 3여 년 동안 아버지를 병간호하면서 ‘작가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했던 다짐을 실천하는 첫‘약속’전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간절함이 작품 속에 차곡차곡 내재된 함의로 표현된 것이 이쥬의 ‘몸詩’에서 찾은 성과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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