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서울아트가이드 디.에디션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1 운동, 죽음에서 탄생으로_김윤수 외 57인 『한국 미술 100년 ❶ - 3. 신문화의 명암 1919-1937』

윤지수

한국 미술 100년 ❶ - 3. 신문화의 명암 1919-1937』-김윤수 외 57인, 한길사』

(6-3)3.1 운동, 죽음에서 탄생으로

 

죽음과 두 세계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는 羊과 大라는 두 한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예로부터 양은 인간이 신에게 바친 제물 중 신성시되던 동물로서 신과 인간을 매개해주었다. 인간은 신이 만든 이 미의 세계에서 탄생한 양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신의 의지意志를 실천 하였으며 더불어 신에게 의지依支함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안에는 미의 세계 안에서 신을 좇아 그 뜻 아래 통섭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意志와 신에 대한 인간의 의지依支적 태도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1).
<헤르만헤세-데미안 中>

 


  새는 태어난다. 그러나 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새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신의 의지가 담긴 이 세상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새는 동시에 알 안에서 태어난다. 알이라는 세계는 바깥 세계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세계이며 새가 의지해야 할 공간이다. 알은 빛의 세계이다. 따뜻하고 안락하며 모든 것이 주어진 세계이다. 그러나 동시에 제약의 세계이다. 알 안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라는 신의 뜻을 좇고 순종해야 한다. 한 가지 빛깔을 따라야 하며 그 세계에 의존해야 한다. 이 의지의 세계가 다하면 새는 알을 깨고 자립의 세계로 나아간다. 제약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새가 머물러야 할 이 세계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위해 고뇌한다. 그러나 그 고뇌는 타율적이지 않다. 이 세계는 자립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빛깔을 좇던 개개인들은 온연히 자신의 진짜 빛을 내기 위해 수련한다. 그리고 마침내 본연의 빛을 드러내게 된다.    
  의지의 세계에서 자립의 세계로 나아갈 때, 즉 탄생에서 탄생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작은 죽음을 맞는다. 의지의 세계를 밝히던 빛들은 죽음의 순간에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세상의 모든 빛이 점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죽음 안에 침묵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 점은 폭발한다. 한 곳에 응집해있던 빛들이 사방으로 튀고 새로운 빛의 세계가 드러난다. 이렇게 작은 죽음이 이루어지는 순간, 모든 빛이 점으로 모이는 순간에 모든 힘은 응집된다. 이 응집된 힘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침묵 안에 가려져있던 투쟁이 시작된다.
 
최후의 사투, 그리고 저무는 한 세계
우리 민족은 1919년 3월 1일, 투쟁의 순간을 맞이한다. 3.1 운동이라는 우리의 거대한 항변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이 투쟁의 실패는 미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을 죽음으로 내몬다. 계몽주의라는 세계가 다하고 유미주의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미는 어떤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에서 미 그 자체가 된다2).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문명국으로써 어깨를 나란히 하긴 했으나 아직 그 힘은 미비했다. 서양의 여러 문화를 따라하고 그것을 통해 발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빨리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보호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증명해보이려고 한다3). 일제는 ‘문명화’시켜주겠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그들이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군사기지로 만들려고 하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내세운 구실에 불과했다. 당시 우리민족들은 나라가 문명국으로 도약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이러한 열망을 일제는 잘 이용했다4). 그런데 문명화를 文을 밝히는 것(明)으로 기대했던 우리의 생각과 달리 실제로 civilization이라는 서구식 생각에 입각한 문명화가 이루어졌다. 즉, 제도적인 근대화만 있었을 뿐 정신적인 측면의 근대화는 배제된 것이다. 이렇게 모순된 일제의 통치와 더불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드러났던 여러 가지 사회적 혼란 상황들은 우리의 신념에 회의를 품게 한다5). 이러한 회의와 불안의 분위기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우리가 속해있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는 깊숙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면에 또 다른 창이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창으로 다른 세계의 한줄기 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원세계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이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최후의 사투를 준비한다. 그 최후의 사투로 전국 곳곳에 우리의 목소리는 울려 퍼진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는 아주 무자비하게 짓밟힌다. 정당성은 사라지고 한 세계는 저물게 된다. 한 순간에 땅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가 피어난다. 그 세계가 바로 ‘유미주의’이다. 

 

새로운 세계, 문학계, 미술계, 건축계에서 열리다.
미의 세계가 새롭게 피어난 것을 우리는 문학계, 미술계, 건축계의 변화된 흐름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문학계에서는 모더니즘 문학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모더니즘 문학은 작가들이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큰 관심을 갖는다. 특히 1930년대 소설은 지식인을 소외의 주체로 설정하고 그들의 분열된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다수의 소설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다수 지식인들이 내적 고뇌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제는 식민 정책으로써 사립학교를 대거 증축했고 이 때문에 지식인의 수는 급증한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만한 직업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일제는 직업을 얻는 문제에 있어서 자국민과 우리 민족을 차별대우했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취업난에 허덕여야 했다. 특히 이 문제는 지식인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빈곤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사회는 도시화 되어갔고 점점 화려해져갔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심각한 이념적 갈등까지 겪는다. 일제의 통치가 점점 더 강경해져갔기 때문이다6). 이들이 겪는 물질적, 정신적 고민은 이들을 사회 속에서 고독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고독했고 자신이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고독감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했다.
  미술계에서는 전통적 서화가 바탕을 이루고 그 위에 서양화 기법이 점차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단체도 설립되는데, 이 단체는 1918년 안중식, 조석진, 고희동이 조직한 서화협회다. 이와 함께 미술계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통해 해방의 과정을 겪는다.
첫 번째 변화로는 자화상이나 작가의 개인적인 모습이 많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자화상은 근대적인 장르이다. 자의식이 온전히 깨어있어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정의내리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음의 두 작품은 작가의 자의식이 화폭에 잘 드러난 예이다.

 


① 고희동高羲東(1886~1965)은 서가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는 화가들이 보통 많이 그리던 자화상의 형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고희동이 취하고 있는 포즈 또한 파격적인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이 지식인임을 드러내기 위해 양서를 뒤 배경의 소품으로 활용했다7).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고희동이 자신을 선비, 혹은 지식인으로 정의 내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② 김인승金仁承(1910~2001)은 도쿄에 있는 자신의 화실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에 남자는 자기 자신이며 옆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여자는 그림에 모델이 되어 준 여자이다. 그림 속의 남녀는 서양식 옷을 입고 세련된 포즈를 취하고 있다8). 자신을 세련된 근대 지식인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바람이 그림 속 남자를 통해 드러난다.  

 

두 번째 변화는 여성인물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여성교육을 위한 학교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 시작이 1886년 만들어진 이화학당이다. 여성은 교육을 통해 사회적 권리가 신장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롭게 정의 내리게 한다. 그리고 점차 신여성의 이미지는 전통적 여성상과 더불어 그림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③ 김종태金鍾泰(1906~1935)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노란 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이젤 앞에 앉다. 이 소녀는 가만히 앉아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포즈는 우리에게 그 당시의 여성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화면 구성은 단순하게 했으나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필선으로  소녀를 잘 표현했다9).

 

④ 김기창金基昶(1913~2001)은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여성상과 근대적인 여성상을 함께 표현했다. 수동적으로 앉아있는 모습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성은 서구적인 외모로 표현이 되어있고 구두나 의자와 같은 소품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근대적인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 감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여성들이 여가생활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변화는 자연을 보는 화가들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은 가장 이상적인 존재였고 정신이 담긴 주체였다. 기존까지 우리는 정신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가장 완벽한 모습의 자연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다. 따라서 옛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여 이름난 경치나 역사적 장소를 그렸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변화한다. 자연은 정신이 담긴 존재가 아닌 관찰의 대상이 된다. 이제 작가들은 명승고적을 따라 그리기 보다는 주변의 경치를 향토적으로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⑤ 이상범李象範(1897~1972)은 우리 자연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그린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안개가 낀 시골의 모습을 원근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 고유의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10).

 

⑥ 이용우李用雨(1902~1952)는 한국의 실경을 통해 기존의 산수화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을 한다. 그는 따뜻한 농촌풍경을 많이 그리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11). 

 

  건축계에서는 모더니즘 경향의 건축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1920년대까지는 벽돌을 이용한 건물들이 다수였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는 철근콘크리트가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철근콘크리트는 콘크리트 속에 막대 모양의 철근을 넣어 콘크리트와 철근의 다른 성질을 하나로 합쳐 외부의 힘으로부터 견디게 한다12). 철근 콘크리트가 사용되면서 벽돌의 내벽이 사라지게 되고 내부 공간은 개방된다. 그리고 화장실과 계단이 같은 위치에 설계되어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다. 모더니즘 건축 양식은 공간을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는 한국인 건축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는 박길룡朴吉龍(1898~1943)이다. 그는 1932년부터 설계사무소를 열어 개인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한다13).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화신백화점(1937), 혜화전문학교 본관(1943) 등이 있다14).

 

⑦간송미술관


⑦간송미술관은 건축가 박길룡이 문화재 수집가인 전형필全鎣弼(1906~1962)을 위해 설계한 건물이다. 백색의 직육면체 구조의 건물에 원통형이 맞물린 단순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건물 곳곳에는 우리의 전통적 디자인과 근대적 디자인이 혼합되어 있다. 창문에 있는 나무 창살의 모양과 창문의 모양을 통해 그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15).


죽음, 나의 영혼을 따르는 길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이다. 나를 품고 있던, 나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보호해주던 한 세계가 깨지면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처음 마주하는 차가운 공기와 빛의 눈부심에 눈은 감긴다. 한 세계의 몰락이 가져오는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새로운 깨우침도 함께 준다. 우리의 영혼에는 모든 것을 일으킬 힘이 있다는 것이다. 폐허가 된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행의 시작을 뜻한다. 우리의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작은 여행이고 이 여행 가운데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과 만나야 내 삶을 다 살아낼 수 있다.
  1919년 3월 1일의 거대한 항변은 몰락했다. 이 몰락으로 우리는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역사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긴 여행 가운데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문화적 발자취는 우리에게 또 다른 깨우침을 줄 것이다.


jisu(yoonsart21@hanmail.net)

 

각주)

1) 전영애, 「데미안」, p.123, 민음사, 2009
2) 신수정, 「근대문학의 발전과 특성」,『한국미술 100년 ❶』p.204참조, (주)도서출판 한길사, 2006년
3) 권태억, 「1910년대 일제의 ‘문명화’ 통치와 한국인들의 인식: 3・1운동의 ‘거족성’ 원인 규명을 위한 하나의 시론」참조,『한국문화 제61집』, pp.334~335, 서울大學校 圭章閣韓國學硏究院, 2013년
4) 각주 3) pp.331~332참조
5) 조용진, 「1930년대 소설에 나타난 지식인 주인공에 대한 연구-경성이란 공간을 중심으로-」p.17참조,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석사논문, 2008년
6) 각주 5) pp.7~1 6참조
7) 정준모, 「한국 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 p.13참조, 컬처북스, 2014년
8) 각주 7) p.45참조
9) 각주 7) p.49참조
10) 김영나, 「근대미술 화단의 성립과 활동」,『한국미술 100년 ❶』pp.224~231참조, (주)도서출판 한길사, 2006년
11) 각주 7) p.153참조
12) 다음 백과사전- ‘철근 콘크리트 구조’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20c2314b) 참조
13) 송석기, 「1930년대 모더니즘 문화와 건축」,『한국미술 100년 ❶』pp.214~215 참조, (주)도서출판 한길사, 2006년
14) 두산 백과- ‘박길룡’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994&cid=40942&categoryId=33384)참조
15)  네이버 블로그- ‘간송미술관과 건축가 박길룡 이야기’
(http://blog.naver.com/ukukuboy?Redirect=Log&logNo=90173901242)참조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