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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_우발적 마주침, 그리고 앵프라맹스라는 주제를 통해 살펴본 그의 회화세계(上)_최석태『이중섭 평전』

윤지수

 『이중섭 평전』-최석태(돌베개, 2000)

 

 

이중섭_우발적 마주침, 그리고 앵프라맹스라는 주제를 통해 살펴본 그의 회화세계(上)

 

필자의 책장에 눈에 띈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최석태가 쓴「이중섭 평전」이다. 필자는 그 동안 다수의 전시회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접해왔다. 그리고 지난 제주도 여행 때는 서귀포 이중섭미술관도 방문했지만 그의 전기轉記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에서야 그에 대한 관심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그에게 애정이 있다 생각해왔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이중섭李仲燮(1916~1956)의 개인적인 가족사를 주제로 한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도 다녀왔다.  

 

나무는 ‘……이 존재한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와……와’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 존재한다.’ 라는 동사에 충격을 주고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충분하게 들어 있다.
들뢰즈-『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中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는 현재 우리의 존재가 우발적인 마주침들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처럼 필자는「이중섭 평전」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이중섭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책이 우연히 눈에 띄었고 역시 또 우연히 그에 관한 전시회를 다녀온 결과물인 것이다. 

 

전기轉記에 관해서
전기란 무엇일까? 단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전기는 순서 있게 정리하여 알리는 기록이다. 그리고 평전이란 비평을 겸한 전기이다. 한 편의 평전을 쓰려면 대상의 일생을 전반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의 태생부터 그가 만난 사람들, 사회적 분위기까지. 그 사이에는 작가의 주관이 개입한다. 따라서 평전을 쓰는 것은 방대한 일이다. 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를 알고자 하는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에 관해 모든 것이 알고 싶어지듯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일대기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하므로 방대한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자료들을 순서 있게 정리해야하기 때문에 대게 전기는 시간의 순서에 따른다.
  그러나 필자는 대게의 전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글을 이끌어가려한다. 우리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읽는 궁극적 목표는 그의 과거 삶의 행적이 궁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보다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의 전기를 읽는다. 따라서 필자는 그의 작품관을 성립시킨 과거의 우발적 마주침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앵프라맹스inframince들을 추적해보려 한다. 

 

우발적 마주침과 앵프라맹스inframince

 

 

우리는 우연한 마주 침들의 합에 불과하다. 그런데 필자는 이 마주침들의 합을 나라고 정의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만남의 과정에서 앵프라맹스라 불리는 아주 미세한 간극이 생기기 때문이다. 앵프라맹스는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이 만든 말로,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틈새를 뜻한다. 상대에게 배움을 얻었음에도 ‘상대의 가르침=나의 배움’이 되지 않는 까닭은 상대와 나 사이에 이 미세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A,B,C,D라는 사람이 있을 때 나=A+B+C+D(+는 합을 의미한다.)이 아니다. 나와 A사이에 생기는 간극, 그리고 B와 생기는 간극, C와 생기는 간극, D와 생기는 간극 그리고 나와 A와 B의 충돌 사이에 생기는 간극, A와 C의 충돌 사이에 생기는 간극 등 무수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세계=A+B+C+D+a'+b'+c'+d'+α{(a'*b')'+(a'*c')'+(b'*c')'+……(a'*b'*c')'} (여기서 나는 임의로 '를 앵프라맹스를 뜻하는 표기로 사용했다. 따라서 a'은 나와 A사이에 생긴 앵프라맹스를 의미한다. 그리고 *를 임의로 두 간극간의 충돌을 뜻하는 기호로 표시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추적해야 하는 것이 A라는 우발적 마주침과 A-나에 해당하는 앵프라맹스(a')라고 생각한다.

 

우발적 마주침과 앵프라맹스의 예
필자는 김환기金煥基(1913~1974)와 이우환李禹煥(1936~)의 작품들로 우발적 마주침과 앵프라맹스의 예를 들어보려고 한다.

 

 

 

 

김환기의 작품「항아리와 매화가지」와「매화와 항아리」는 청화백자매죽문호靑華白瓷梅竹文壺와 백자 달 항아리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김환기는 청화백자에서 사용된 청화靑華안료의 색을 모방했다. 그는 한국의 푸른靑 빛깔이 외국의 blue와 다르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강조했다고 한다2). 또한 그는 작품에 도자기와 매화를 소재로 사용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①번 ②번이 탄생하게 된 원인이 되는 우발적 마주침들이다.
  이와 더불어 ①,②와 ③,④간의 간극인 앵프라맹스를 살펴보려 한다. 김환기는 단순한 조형적 요소들만을 사용하여 달 항아리와 매화를 표현했다.「매화와 항아리」에는 선, 원, 사각형만이 사용되었다. 입체적인 소재들을 단색조와 평면으로 표현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청화 안료의 색상을 유화로써 새롭게 구현하였다.「항아리와 매화가지」에서 그는 투박한 느낌의 질감을 유화로써 표현하였다. 이는 우리 고유의 도기느낌과도 비슷하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자신만의 표현법을 통해 재해석한 것이다.        

 




 

 

  김환기의 「Universe 5-IV-71 #200」와 이우환의「선으로부터」는 수묵화와 청화백자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청화의 색을 모방했고 수묵의 물성을 작품에 구현했다. 김환기의 「Universe 5-IV-71 #200」을 보면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묵란도」에서도 볼 수 있는 수묵의 표현법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붓에 묻는 먹과 물의 양, 그리고 붓의 각도와 종이를 누르는 힘에 따라 변화하는 선의 표현법과 같은 수묵화만의 특성이 돋보인다.「선으로부터」도 마찬가지이다. 붓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각각의 선에는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또한 수묵화만의 특징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우발적 마주침이라면 앵프라맹스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있을까?   
  「Universe 5-IV-71 #200」는 면에 유화를 사용하여 청화의 푸른 빛깔을 표현했으며 수묵화의 물성, 붓의 움직임에 따른 각 점의 개성을 구현하였다. 또한 반복된 점찍기를 통해 선과  원을 표현했는데 이는 무한히 확장되는 형이상학적 추상공간을 만들어낸다. 수묵화에 담긴 우리 전통의 정신세계가 작품에서 그만의 색으로 변형된 것이다.「선으로부터」에서 이우환은 수십 개의 선을 동등하게 내려 긋는다. 푸른 선들은 점차 옅어지고 급기야는 사라진다. 선을 그을 때 농도에 따라 변화하는 수묵화의 특성이 보인다. 그런데 쓰이는 재료는 유화와 캔버스이다. 그의 선에는 동양적 정신이 깃들어있다. 그는 선을 긋는 과정을 중요시 했다.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제작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 의미를 끌어낸 것이다. 그의 선에는 동양적 감수성과 더불어 현대적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중섭, 그의 일생 속 우발적 마주침들 그리고 앵프라맹스
이중섭의 일생 속에도 수많은 마주침들이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마주침들과 더불어 파생된 앵프라맹스들을 살피려 한다. 첫 번째는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었던 임용련과 백남순 부부이고 두 번째는 그가 활동했던 단체인 조선신미술가협회이다. 

 

1. 이중섭의 우발적 마주침, 임용련과 백남순
이중섭의 인생과 예술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만남들이 있다. 그중 첫째가 임용련任用璉(1901~?)과 백남순白南舜(1904~1994)을 만난 것이다. 임용련은 3.1 운동 이후 중국으로 갔고, 곧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난징南京의 진링대학(金陵大學)에 입학했다. 그는 재학 중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The Art Institute of Chicago)로 학교를 옮겨 이곳에서 프란시스 세비지(Francis Savage)에게 수학한다. 임용련은 대학 졸업 후 세비지를 따라 예일대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졸업 후 얻은 성적우수 장학금으로 1년간 유럽여행을 한다. 그는 파리에 가서 백남순白南舜(1904~1994)을 만났는데 그녀와 사랑에 빠져 1930년 봄에 결혼한다. 그는 결혼 후 귀향해 오산학교 교장이었던 김여제金輿濟(1893~?)에게 도화 겸 영어교사 자리를 제의받고 이를 수락한다.
  백남순은 도쿄여자 미술전문학교 양화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로 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녀는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에 도화교사로 있던 야마다 신이지(山田新一)에게 그림 지도를 받음으로써 미술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는 1925년, 1926년에 실시된 제4, 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나혜석과 나란히 상을 타 주목을 받는다. 그녀는 조선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프리에즈(A.E.O. Friesz)와 공모전 살롱 데 악티스트 튈르리(Salon des Artistes Tuileries)의 창설자의 한 사람인 뒤프르슨(Charles Dufresne)에게 배운다. 그리고 임용련과 결혼해 귀향한다3).
  당시 이들은 보기 드문 본격파 유화가들이었다. 이들이 이중섭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1) 이중섭의 현대 그리고 전통

 





필자는 이중섭의 작품을 통해 임용련 부부가 이중섭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임용련 부부는 우리 전통문화를 중시하였고 자기다운 유화세계를 지향했다.「바닷가의 아이들」과 「도원」에는 이러한 그들의 가르침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아이, 복숭아,  그리고 물고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예로부터 우리 전통회화와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에 자주 등장하던 소재였다. 또한 그의 작품은 분청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이 되곤 한다. 
  필자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분청사기를 연상할 수 있었다. 분의 색감과 닮은 색채 사용, 귀얄기법과 비슷한 붓 터치 기법. 이러한 특성에서 분청사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이렇게 이중섭은 우리 전통의 것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색채로 서양화를 풀어 썼다.

 





 필자는「서귀포의 환상」과「도원」이 백남순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낙원」을 보고 추정할 수 있었다. 백남순은 자신이 생각하는 무릉도원을 그려 8폭의 병풍형태로 만들었다. 서양의 재료를 사용하여 동서양이 혼재한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산수는 동양에서 높고 이상적인 정신세계이자 머무르고 싶은 이상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비들은 이상향과는 다른 현실의 안타까움을 산수화를 통해 달랬다고 한다. 그녀는 유화를 사용하여 동양적 정신세계를 구현하였다. 동양의 누각과 서양식 건물, 그리고 동양적인 산의 모습과 서양의 나무를 함께 배치하여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였다4).
  이중섭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어떤 모습일까?「서귀포의 환상」과「도원」을 보면서 우리는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그가 늘 꿈꿔왔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중섭이 그만의 산수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같은 주제를 형식에 구애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2)미완의 소묘

 




1942년 이중섭은 진취적이고 종합적인 미술단체였던 지유비주쓰카교카이(自由美術家協會:이하 지유카이라 칭함)에서 주최하는 미술전람회인 지유텐(自由展)에「소묘」를 출품한다. 이 작품은 습작에 가까우며 크기 또한 매우 작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채색 되어있는 완성작들을 출품하는데 반해 이중섭은 습작이라 취급되는 소묘화를 제출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평소 스케치를 중시하였던 임용련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이 작품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3) 은지화-이중섭의 세계

 




 「은지화」와「봄의 어린이」는 이중섭의 표현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은지화」는  음각하여 그림을 그린 후 음각된 표면에 물감을 덮어 선에 색을 새겨 완성한 작품이다. 「봄의 어린이」는 어떤 기법으로 완성했을까? 그는 회색빛 물감을 종이에 골고루 바른 후 이것이 마른 후 검은 선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노란색, 파란색의 물감을 발라 칠한 후 그 위에 회색 물감을 덮어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긁어냈다5). 이러한 실험적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이중섭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임용련과 백남순 그리고 이중섭의 앵프라맹스
우리는 위에서 임용련과 백남순에게 이중섭이 받은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앵프라맹스를 살피려고 한다. 사실 이중섭을 이중섭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구축한 회화세계를 뜻하는 앵프라맹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다른 만남들을 살펴봄으로써 앵프라맹스를 추적해나가려고 한다. 앵프라맹스는 그의 삶의 다채로운 만남들과 그 만남들의 충돌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그림이 민족적이라 느껴지는 이유는 회화와 도자기에서 사용된 소재를 그가 활용하였기 때문이다.「서귀포의 환상」에서 아이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려있는 모습은 「청자상감보상당초동자문주자」와 「청자 포도 동자무늬 표주박모양 주자」에 동자가 매달려 있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바닷가의 아이들」과 「서귀포의 환상」도 이와 비슷한 소재와 구도를 사용했다.
  「은지화」와「봄의 어린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회화에 다음과 같은 점들을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누워있거나 매달려있는 점, 공감각 없이 평면 속에 자유롭게 아이들을 배치한 점, 사람과 자연이라는 상반된 주제를 버무려 화면을 꽉 채워놓은 점 등.
  또한 필자는「소묘」를 비롯하여 소를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이 소가 등장하는 민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이자 노동과 재산을 상징했다. 소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죽어서는 자신의 고기를 베풀어 인간을 배부르게 했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소와 가까웠다. 소가 민화에 등장하는 것도 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도원」과 「봄의 어린이」에 드러나는 색감이나 필치는 분을 붓에 두텁게 발라 그 획이 드러나도록 했던 분청사기의 귀얄기법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중섭은 그에게 다가온 우발적 마주침들을 소화하여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서양화가이다. 서양화에서 사용되는 유화는 그 재료의 특성이 동양에서 사용되는 재료들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그는 유화를 사용하여 분청사기에서 느껴지는 그 투박한 느낌을 표현해냈으며 아이, 산, 복숭아라는 전통소재를 사용하여 현대적 감각의 작품을 만들었다. 「은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토속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그는「소묘」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 같은 따뜻한 이미지, 성실한 이미지였던 소를 울부짖는 모습으로 재탄생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_ 下에서 계속

 

 

 

 <주석>

1)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 p181참조, 열림원, 2013년

2) 네이버캐스트-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참고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1&contents_id=21541)

3) 최석태, 『이중섭 평전』, pp.36~39참조, 돌베개, 2000년 

4) 네이버캐스트-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展 참고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8&contents_id=63410)
5) 최석태,『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p108참조, 아이세움, 2001년 

 








 

윤지수(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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