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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뒤안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배려와 보편의 미학_박현택『오래된 디자인』

윤지수

긍정의 뒤안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배려와 보편의 미학 - 오래된 디자인

 

 

오래됨에 대한 예찬
우리는 오래된 것을 예찬한다. 명품이라 부르며 동경하여 소유를 원한다. 이를 갈망하는 것은 소멸의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함은 아닐까. 명품이 시간의 풍파를 막아내고 현존하는 이유는 시간의 특성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보편성이라고 말하려한다. 따라서 오래된 것에는 보편성이 있다.  

 

보편성의 힘
이른바 지혜를 이룸이 사물을 접하는 데 있다고 한 것은, 나의 지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사물에 접하여 그 이치를 궁구함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 마음의 신령함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아니함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를 가지고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오직 이치에 있어서 아직 다 궁구하지 아니함이 있기 때문에 그 지혜가 다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있는 것이다. 힘쓰는 것을 오래 하여 어느 날 아침에 환하게 관통하는 데 이르면 모든 사물의 바깥과 속,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고 내 마음 전체의 큰 작용이 밝지 아니한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사물이 연구된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지혜의 이루어짐이라 하는 것이다1).  

대학 傳五章 中

 

대학의 한 구절을 보면 보편성의 힘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보편성에 대해 ‘환하게 관통하는 데 이르는 것‘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시간에는 특수성이 있다. 순간마다 그 이전의 시간, 혹은 그 이후의 시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그래서 매 순간은 유일하며 유일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다. 시간의 특성에 따르면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보편성을 가진 것이다. 특수성의 밑바탕에는 보편성이 존재한다. 보편성은 저변에서 천천히 같은 속도로 흐르면서 시간의 변화를 지켜본다.

뿐 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시간과 맞서 싸울 때 그는 이것을 관조한다. 

 

동서양을 넘나들고 시간을 관통하는 힘. 보편성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Moonlight Sonata」는 필자에게 보편성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작품은 달과 관련되어있다. 1796년 김홍도는 스산한 숲 속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달을 그렸다. 반면, 베토벤은 1801년에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받은 쓸쓸한 마음을「피아노 소나타 14장」에 담았다. 그가 죽고 난 후 독일의 음악평론가 레루슈타프H.F.L.Rellstab가 이 곡의 1악장이 달빛을 떠올린다고 해서 「월광소나타」로 개칭한 것이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작품이며,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 베토벤은 그저 김홍도가 본 밤하늘의 달을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다른 감상에 젖어 보았을 정도의 인연이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월광소나타」를 들으면서 「소림명월도」를 떠올릴 수는 있다. 먼저 달을 보며 두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유추해보자. 동서양을 넘나들고 시간을 관통하는 한줄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의 쓸쓸한 마음, 그리고 달빛을 통해 보여주는 작은 희망이 그것이다.  

 


 

우리는 親디자인 시대에 살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쓰임이 과거의 그것에 비해 무척이나 넓어져 인생을 디자인해준다는 라이프 디자이너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親디자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디자인의 정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를 자문해보게 된다.

디자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조형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체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디자인이 정신과는 동떨어진 개념임을 보여준다.

 

오래된 디자인
‘오래되다’와 ‘디자인’은 상반된 개념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육체의 산물이다. 지속가능, 대체불가능의 뜻을 지닌 ‘오래되다.’와 지속불가능, 대체가능의 뜻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 저자는 이 상반되는 말을 조합하여 제목을 붙였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은 모순矛盾이다. 저자는 이렇게 상반된 개념을 충돌시켜서 어떤 효과를 이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모든 것을 뚫어버리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를 충돌시키면 모든 것을 다 뚫어버리는 창이 남거나 혹은 모든 것을 다 막아내는 방패만이 남는다. 강한 쪽만이 드러나는 것이다. 모순된 것들은 충돌을 통해 모순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저자는 ‘오래된’을 강조한다. ‘오래된’이라는 창이 ‘디자인’이라는 방패를 뚫는다. 필자는 책의 제목을 통해 저자가 보편성의 미덕을 드러내고자함을 느꼈다. 책을 다 읽은 후 대학의 한 구절을 읽으면서 필자는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보편성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것들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보편성이 담고 있는 이야기. 정신적 배경과 어울림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 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 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어렵다고 하겠느냐……3). 『남한산성』 中에서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것은 소멸뿐이다. 아침이 오고 봄이 올 때 그와 발맞추어 새로운 빛을 내뿜는 것들은 불멸의 힘을 갖는다. 그리고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새로운 빛을 내뿜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맞게 변화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변화 없이도 모든 시간과 장소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후자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고전을 의미하며 클래식Classic이라 불린다. 
  저자는 묻는다. 클래식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형태나 색채, 비례 등 실제적인 원리나 표상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 실체를 찾아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다면 독창적인 디자인이자 또 다른 클래식의 탄생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라고. 사실 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한번쯤 질문했을 내용이다. 그리고 저자는 답한다. 그런 것은 없다고. 설사 있다 해도 실제적인 표상이 디자인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삶의 방식이 독창적이어야 하며 디자인의 목표는 정신 그 자체여야만 한다고. 결국 클래식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필자는 묻고자 한다. 보편성을 담아 디자인 할 때 클래식이 탄생한다면 보편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담겨야 하냐고. 이 질문에 자답한다. 정신적 배경과 어울림이 있을 때 보편성은 생긴다고. 정신적 배경은 디자인 탄생의 시초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사상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하는데 디자인은 그 삶 위에 있다. 정신적 배경이 움직임이자 발산이라면 어울림은 멈춤이자 수렴이다. 어울림은 고요한 머무름이다. 그리고 어울림은 공기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어울릴 때 우리는 이것을 ‘조화調和롭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움직임과 조화는 시작과 끝을 만든다. 또한 이 둘 사이는 관통하여 연결된다. 보편성은 이렇게 생기는 것이다. 
 
디자인을 보여주다
저자는 디자이너들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꿈을 알고 있다. 내 디자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 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저자의 책을 읽고 저자가 이제 막 디자인의 세계로 입문한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성 디자이너인 저자는 그간 자신이 깨달은 디자인의 이치를 누군가에게 말하려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 이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고 있다. 오래된 디자인, 오래가는 디자인, 남아있는 디자인, 사라진 디자인의 예를 보여줄 뿐이다. 사례들은 각자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보편성이라는 이야기로 하나가 된다. 저자는 책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필자는 정신적 배경과 어울림이라는 두 갈래로 저자가 예로 든 세 가지 디자인을 소개하려 한다.

 

1. 정신적 배경이 담긴 디자인

 

1) 서안書案이 들려주는 디자인 이야기
서안은 선비들이 독서할 때 사용한 앉은뱅이 책상이다. 크기는 앙증맞고 책이 놓이는 위판과 네 개의 상다리로 구성된다. 그리고 기호에 따라 서랍장이 추가되기도 한다. 서안은 장인이 만들었지만 사용하는 선비만의 멋스러움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실은 장인과 선비의 합작이었다. 그래서 비슷해보여도 서안마다의 풍취는 다 다르다.
  저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서안을 소개한다. 이 서안에는 유학자 송시열의 학문에 대한 치열함, 그리고 그의 강직한 성품이 담겨있다. 선비가 썼다고 하기엔 너무 투박하고 게다가 책상 사면이 울퉁불퉁하게 파여 있는 그의 서안. 책의 종이 면이 구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책상 사면에 경사를 줬다고 한다. 우리는 그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4). 서안은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 책을 아끼는 마음, 그리고 사용자 개개인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이 없다면 반쪽짜리 디자인일 것이다.

 



 

2) 도산서당陶山書堂이 들려주는 디자인 이야기
도산서당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57세가 되던 해에 고향에서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서당은 강의실이며 연구실이며 또한 사택이기도 했다. 서당을 짓는 것은 그의 학문과 교육의 실천행위였다. 따라서 서당은 그의 학문적 사상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인위적인 것 없이 자연과 합일되어야 한다는 무위자연정신을 바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소박함과 뚜렷한 공간미가 돋보인다. 정면이 세 칸, 측면이 한 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엌, 방, 마루가 각 한 칸씩이고 흙바닥, 온돌, 마루라는 기본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5).    
  서당이 위치한 지리적 풍경만을 봐도 우리는 이황이 추구한 정신을 알 수 있다. 서당의 왼쪽에는 청량산이 오른쪽에는 영취산이 있다. 남으로는 낙동강이 내다보인다. 서당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봉우리와 계곡들이 산을 둘러싼 듯 한 형세를 한다6). 인간, 우주, 자연이라는 개념에 관한 도산의 평생에 걸친 공부는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들어졌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지향해왔으며 그것을 서원을 통해 구현한 것이다.   

 


2. 어울림과 디자인: 전주한옥마을과 교토 전통거리

 

전주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30년대 일제의 세력 확장에 반발하여 생겨났다. 1999년부터 전주시가 가꾸기 시작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한옥마을 조성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전통문화 체험을 위한 관광코스중 하나로써 방문객들이 꼭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한옥마을을 방문한 후 큰 실망을 했다고 한다. 한옥의 전통적 분위기를 해치는 요소들 때문이었다. 돌담길 사이에 눈에 띄게 보이는 철제 셔터와 대문에 붙어 있는 조잡스러운 안내판들이 그것이었다. 전통형식의 대문 위에 ‘세콤경비구역’, ‘주차금지’등의 안내판들이 붙어 한옥의 정취를 해쳤다. 도무지 이러한 디자인으로부터 저자는 배려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한옥마을과 비슷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깊은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 교토의 전통거리였다고 한다. 교토에 있는 전통거리에는 자국의 정통성을 보존하려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주택을 세울 때 사용했던 재료와 잘 어울리는 소재로 창틀덮개와 에어컨 덮개를 씌운 점, 전기 배선판을 대나무를 이용해 덧씌운 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도시 경관을 위한 다양한 규제들은 마을의 경관을 사랑하는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져 1970년대부터 시행되어왔다고 한다7). 자신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며 어울림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의 디자인 태도를 반성하게 만든다.

 



좋은 디자인과 좋은 삶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1931-1994)에 의하면 우리가 스펙터클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스펙터클 사회는 시각적 감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박탈당한 거대한 매트릭스다8). 실제로 우린 시각을 통해 할 수 있는 간접체험을 실제 경험으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우리는 과도한 시각적 자극을 받는다. 매일 아침부터 하루가 저물 때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광고를 보고 어플을 사용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사진과 기사를 본다. 유튜브로 광고와 영상을 보고 카카오톡으로 이모티콘을 날린다. 이 모든 자극으로 인해 우리의 시각은 점차 무뎌진다. 이러한 자극은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다. 시각적으로 자극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다른 디자인의 광고, 사진, 영상, 이모티콘과 만나는 것이다. 이전의 디자인은 다음날이 되면 잊혀지는데 그래서 디자인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경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너무나 가벼워진 디자인, 그리고 이 가벼워진 디자인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가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 리는 만무하다.       
  저자 박현택은 우리를 의식세계로 되돌린다. 그리고 촉각의 세계를 회복시킨다. 촉각은 정신적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곳에 존재하는 감각이자 현실로 돌아가려는 아우성이다. 따라서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은 삶을 긍정할 때 만날 수 있다. 이상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 소멸하지 않는 디자인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촉각의 세계가 회복될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고 말하려 한다.
  필자는 묻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잘 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삶을 강하게 긍정하고 삶 속에 내 가치관을 투영시키는 것, 그리고 이것을 실체화하여 가치를 실현하는 장을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디자인이며 디자인을 통한 긍정적 선순환이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좋은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석
1)『대학 중용 강설』, pp.57~58,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4년
2) 두산백과: ‘디자인’(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6152&cid=40942&categoryId=33074)참조
3) 김훈, 『남한산성』, p.61, 학고재, 2007년
4) 박현택, 『오래된 디자인』, pp.27~32, 컬처그라퍼, 2013년
5) 박현택, 『오래된 디자인』, pp.98~99, 컬처그라퍼, 2013년
6) 최선호, 『한국의 미 산책』, 해냄, 2007년
7) 박현택, 『오래된 디자인』, pp.201~209, 컬처그라퍼, 2013년
8)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p.253, 사계절출판사, 2011년

                                                                                            

 

 

 

                                                                                                       윤지수(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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