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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안규철 <당신만을 위한 말>_ 쓸모와 존재의미, 물건과 사물

윤지수

쓸모와 존재의미, 물건과 사물

 안규철 <당신만을 위한 말> 전시리뷰 

  모든 나무의 절반은 의자가 되어야 하고, 나머지 절반은 노가 되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절반의 나무는 의자가 되어 사람들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노가 되어 사람들이 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도왔다. 그런데 딱 한 그루의 나무가 남은 것이다. 목수는 고민하다가 그 나무를 의자이자 노로 만들었다. 그 물건은 의자의 특성과 노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의자의 쓰임도, 노의 쓰임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의자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물건이 되었다. 그렇게 생명력을 상실한 물건은 어느 날 전시장에 옮겨져 ‘작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도판 1) 안규철, <노/의자>, Wood, 45 x 44.5 x 200cm, 2017

모든 존재의 본질은 과연 쓸모에 있는가?
  많은 사람이 존재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왔다.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René, 1596-1650)는 존재의 본질을 생각으로 보았으며,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는 그의 작품 『무의미의 축제』에서 존재의 본질을 하찮고 의미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작가 안규철(1955-)은 작품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핸들 없는 자전거, 안장 없는 자전거, 울림 없는 종, 사람이 앉기엔 너무나 긴 다리를 가진 의자. 위 물건들은 ‘쓸모가 없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물건에 쓸모가 없다는 것은 타고난 목적을 상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물건은 인간의 필요 때문에 탄생하고, 목적을 지닌다. 물건에 쓸모의 상실은 곧 죽음이다. 핸들과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는 사람을 태워 달릴 수 없고, 울림이 없는 종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너무 긴 다리를 가진 의자는 사람을 앉힐 수 없다.
작가는 묻는다. “쓸모없다고 해서 본질까지 사라지는 것일까?”라고. 지금까지 우리는 물건의 본질을 쓸모에서 찾았다. 그런데 그 쓸모라는 것의 전제에는 인간의 시각이 깔렸다. 인간의 입장에서 쓸모가 있는 것은 본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쓸모가 없는 것은 본질을 지니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물건(物件)에서 사물(事物)로
  작가는 물건의 형태를 해체하거나 성질이 전혀 다른 재료로 물건을 다시 만듦으로써 물건의 쓸모를 상실 시켰다. 기존의 쓸모를 상실한 물건은 물건으로써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질문하는 힘을 얻었고 자신을 위한, 타인을 위한, 그리고 작가를 위한 목소리를 얻었다. 즉, 물건은 쓸모를 잃은 대신 ‘인간다움’을 얻은 것이다. 
  필자는 이를 물건이 사물화되었다고 표현하고자 한다. 물건(物件)의 단어 뜻을 풀이해보면 인간의 목적성과 인간 위주의 시각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물(事物)은 모든 물건과 일을 포괄하기 때문에 각 대상의 개념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건과 사물의 가장 큰 차이는 시선에 있다. 물건은 인간의 일방적인 시각에 의해 본질이 판단되지만, 사물은 인간에 의해 본질이 판단되지 않는다. 
   의자이자 노, 핸들이 없는 자전거와 안장이 없는 자전거, 그리고 울리지 못하는 종은 작가에 의해 사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은 비록 기존의 쓸모를 잃었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잃은 것은 아니다. 더는 인간의 필요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전시장에 오는 관람객에 의해 의미가 가감되기도 한다. 각 사물 간에, 그리고 관객과의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치 인간처럼 말이다.    



도판 1) 안규철, </의자>, Wood, 45 x 44.5 x 200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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