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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길다 윌리엄스 『현대미술 글쓰기』

윤지수


서평_현대미술 글쓰기, 저자 길다 윌리엄스


아트라이팅을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까지 필자는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왔다. 도대체 좋은 글과 안 좋은 글을 가르는 기준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 길다 윌리엄스(Gilda Williams, ?-) 1)또한 글 쓰는 법의 공식은 없다고 인정한다. 성공한 아트라이터(저자는 책에서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모든 것을 ‘아트라이팅’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아트라이팅을 하는 사람을 아트라이터라고 적고 있다.)는 모두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며 기존 관습을 깨고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녀 또한 ‘현대미술과 관련된 글을 쓰기’ 책을 쓰는 것 자체를 터무니없게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해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전문가들에게 어렵게 느껴지거나 혼란을 주는 나쁜 아트라이팅은 훈련의 부족에서 나옴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2)
  저자는 책을 통해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서 흔히 나오는 실수를 고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64명의 훌륭한 아트라이터의 글을 표본으로 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책은 3부로 구성되나, 필자는 이 책이 크게 두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두 부분을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1. 현대미술에 관한 글은 어떻게 쓰는가?
  이 챕터에서는 나쁜 글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아트라이팅을 위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법과 아트라이팅의 구체적인 요령을 이야기한다. 아트라이팅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구체적으로 쓰기’,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다른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기’, ‘글에 구체적인 명사를 담기’, ‘형용사는 하나만 고르기’, ‘힘차고 동적인 단어를 풍부하게 쓰기’, ‘정보를 논리적으로 배열하기’, ‘완결된 단락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목록 형식은 자제하기’, ‘은어를 피하기’, ‘확신이 없다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비교를 하기’, ‘직유와 은유는 신중하게 사용하기’가 있다.
  필자는 저자가 책에서 짚어준 실수 중에 ‘구체적으로 쓰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 많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써야 함을 잊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룬 미르자의 작품 <황홀한 파형>(2012)에 대한 아트라이팅을 표본으로 실수를 짚어준다.

“하룬 미르자(Haroon Mirza)의 예술에는 다양한 기술이 결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작품은 감상자가 예상하지 못한 ‘음악’을 곁들인 일종의 불빛 쇼가 된다.”

저자는 이 글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 첫째, 모호하다. 기술은 무슨 기술인지? 빛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종류의 ‘음악’을 말하며 감상자가 왜 예상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문장을 두 개로 나눌 이유가 없다. 셋째, ‘말하자면’ 이나 ‘일종의’와 같은 너저분한 수식어가 붙었다. 저자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고쳐 써보길 권유한다.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1977-)3)는 2012년 작 <황홀한 파형 Preoccupied Waveforms>에서 깜빡이는 고물 텔레비전 수상기부터 현란한 LED 전구 줄에 이르는 다양한 음향, 조명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웅웅대는 백색 소음을 조합해 당김음이 강조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고물 텔레비전 수상기’나 ‘전구’ 그리고 ‘백색 소음’과 같은 구체적인 명사와 ‘웅웅대는’이라는 정확한 동사는 작품에 대한 독자의 상상력을 높여준다. ‘그리고’라는 접속부사가 사용됨으로써 어색하게 쪼개진 두 문장은 자연스럽게 한 문장의 역할을 한다.4)


도판 1) 하룬 미르자, <황홀한 파형>, 2012


2. 다양한 형식의 현대미술 글쓰기
  저자는 이 챕터에서 글의 유형에 따라 요구되는 어조와 문체에 대한 조언을 제시한다. 예술계에서 요구하는 아트라이팅 분야가 확장됨에 따라 아트 라이터에게는 글의 성격에 맞는 어조와 문체를 연구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저자는 예술사 학술지에서는 학자 같은 목소리가 요구되며, 블로그에서는 수다스러운 목소리, 책 캡션에서는 ‘객관적’인 목소리가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원 요구서에서는 사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며, 평가하는 글과 설명하는 글, 묘사하는 글, 기사체의 글 등에서도 글의 유형에 따라 적합한 문체가 필요함을 말한다. 저자는 학문적인 글을 쓰는 법, 설명하는 글을 쓰는 법, 평가하는 글을 쓰는 법, 작가의 말 쓰는 법을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 중 필자는 ‘작가의 말을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쓸 때 흔히 등장하는 문제점으로 열 가지를 꼽는다. 첫째, 모두 고만고만한 소리로 들린다. 둘째, 지루하다. 셋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넷째, 얘깃거리가 없다. 다섯째,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예술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다. 여섯째, 해독하기 어렵다. 일곱째, 너무 길다. 여덟째, 독자가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지 못한다. 아홉째, 과대망상증이 느껴진다. 열 번째, 예술가들은 말보다 이미지로 생각을 전달한다. 그리고 각 문제점에 대해 그 나름의 조언을 제시한다. 또한, 작가의 말 쓰는 법에 한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와 이면에 담긴 주제, 창작 과정, 작품이 지금의 형태를 띠기까지의 변화 과정에 대한 단서가 담겨야 함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좋은 ‘작가의 말’의 예로 테시다 딘(Tacita Dean, )5)의 영상 인스톨레이션을 소개하는 도입부를 든다.6)


“그 건물은 잿빛 도시의 중심에 서 있지만, 항상 햇빛을 머금고 있다. 지는 해가 바둑판 무늬의 건물 표면을 한 칸 한 칸 옮겨가며 유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는 광경은 운터덴린덴 로에서 알렉산더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베를린이 아직 내게 낯설었던 시절, 그것은 버려진 구동독의 건물 중 하나일 뿐이었다. 눈에 띄게 추한 외관이었지만 빛을 희롱하여 맞은편의 실용적이고 견고한 19세기 성당을 아름답게 비추며 나를 유혹했다. 한참 뒤에야 나는 그것이 구동독에서 정부 청사로 쓰던 공화국궁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불투명한 외관 속에 지난 역사를 숨기고 있는 도발적인 그곳은 이제 장식을 벗어던지고 기능을 멈춘 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 궁전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런 건물을 파괴하는 것은 기억을 파괴하는 것이며 이 도시는 그 상처를 간직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7)



비평은 계속해서 존재할까?
  비평의 역사는 짧다. 지금까지 인정받은 예술 비평이라는 장르는 17-18세기 프랑스의 살롱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술사의 1/50도 안 되는 역사를 지닌 비평이 현대미술에서는 작품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놀라울 따름이다.
  미술사의 시작은 라스코 동굴벽화(BC. 15000년)로 알려져 있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의 인간은 집단의 소망을 빌기 위한 목적이나 사냥 전 예행 연습을 위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농경시대가 시작된 이후, 종교적인 수단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미술은 이용되었다. 이후, 미술은 왕의 영생이나 저승에서의 삶을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신의 완벽함과 고결함, 그리고 신앙의 주창을 위해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9/10 이상의 기간 동안 미술은 종교와 권력의 신화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으며, 예술가는 이를 도운 이름 모를 노동자였다. 이후 예술가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예술가를 둘러싼 천재설 또한 생겼지만, 미술은 왕과 고위 성직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왕과 성직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감히 미술작품에 대해 평가할 수 없었다.
  미술사에서 위와 같은 기간이 지난 후에야 비평은 등장한다. 초창기 비평의 주된 기능은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었다. 「현대미술 글쓰기」에는 초창기 비평의 역할을 3가지로 요약했다. 1. 비평은 미지의 예술 조류를 헤쳐 갈 나침반을 제공한다. 2. 박식한 전문가의 의견과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3. 자신의 작품이 극단적인 편파성을 드러낸다고 믿는 예술가를 떠들썩하게 옹호한다.8) 그 당시와 다르게 현대 미술에서의 비평은 판단의 역할을 가장 덜 중요하게 여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비평가의 임무가 평가에서 해석으로 대체되었다. 비평가는 작품의 배경을 설명한다거나, 작가의 생각을 글을 통해 드러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비평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을 일 순위로 두며 또 다른 창작을 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비평 픽션이라는 장르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앞둔 지금, 예술의 위치는 위협받고 있다. 미술과 미술계는 앞으로도 존속할까? 로봇이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예술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찰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또한, 10년에서 20년 후면 미술관의 많은 인력이 로봇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미술계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이와 같은 혁명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존재할 것이다. 문화는 수백만 명의 인간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기 때문이다.9) 쉽게 설명하여, 인류는 신화에 의해 결집할 수 있었고 이 결집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 중심에는 항상 문화와 예술이 있었다. 따라서 인류가 살아있는 한 미술과 미술계 또한 존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평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비평은 앞으로의 미술사에서 계속 존재할까? 비평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지리라 예측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비평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비록 미술과 미술계가 4차 산업혁명 때문에 대변혁을 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미술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되면서 비평의 역할이 지금보다는 작아지지 않으리라 예측한다. 그런데 비평의 목적과 형태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의 비평이 문자로 이루어진 글의 형식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꼭 아트라이팅의 형식을 고수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트라이팅을 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 말고 근 미래에는 새로운 형식의 비평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한다.



도판 1) 하룬 미르자, <황홀한 파형>, 2012





<각주>

1) 길다 윌리엄스:
길다 윌리엄스는 1994-2005년까지 파이돈프레스(PHAIDON PRESS)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 《아트포럼(ART FORUM)》의 런던 특파원이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와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SOTHEBY’S INSTITUTE OF ART)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플래시아트 인터내셔널(FLASH ART INTERNATIONAL)》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테이트 ETC. (TATE ETC.)》 《파케트(PARKETT)》 《아트 먼슬리(ART MONTHLY)》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타임아웃(TIMEOUT)》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2) 길다 윌리엄스, 『현대미술 글쓰기』, 2016, pp. 9-11
3) 하룬 미르자:
   하룬 미르자는 설치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첼시 예술학교(Chelsea College of Art and Design)와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수학하였다. 2010년에는 Northern Art Prize를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유망한 예술가로 상을 탔다. 그리고 2102년에는 DAIWA Art Prize를, 2014년엔 Zurich Art Prize와 백남준 아트센터 상을 받았다.  
4) 2-1) 위의 책, pp. 100-103
5) 타시다 딘:
   타시다 딘은 영국의 사진가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회화 교육을 받고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로 작업 중이다. 16mm 영화와 비디오, 사진, 드로잉 등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6) 2-2) 위의 책, pp. 309-320
7) 타시다 딘, 「팔라스트, 2004Palast, 2004」『타시다 딘』, 2006
8) 2-3) 위의 책, p. 44


 

<참고문헌>
길다 윌리엄스, 『현대미술 글쓰기』, 2016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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