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그래도 감나무에는 감이 익는다

박옥순

                                       

  다섯 딸을 두신 아버지는 오형제 중의 막내셨는데 큰아버지들한테 자주 꾸중을 들으셨다.

1950년대의 경상도에서 남존여비는 당연한 문화였는데 아버지는 아들딸을 구별하지 않으셨고, 더욱이 다섯이나 되는 딸을 무척이나 챙기셨기 때문 이다.

의성 출장길에 감나무 다섯 그루를 사 오셔서 딸들에게 분양하셨는데 어린 묘목을 받은 우리들은 달콤한 꿈도 함께 갖게 되었다.

 

맛있는 과일을 열게 하려면 인분이 최고의 비료라고 어른들은 말씀 하신다.

아침에 제일 먼저 내 감나무에 물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귀중한 내 비료를 내 감나무에 쏟아 주기 위해 무척 애썼던 기억은 나를 미소 짖게 한다.

밖에서 놀다가도 오줌 마려우면 참고 참아서 집에 돌아와 내 감나무에 주었다.

그런데 앵두가 제법 굵어질 무렵까지도 감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아침에 잠이 깨면 오늘은 내 감나무에 노란 감꽃이 피었으리라 상상하면서 눈을 부볐다.

혹시나 꽃이 피지 않을 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기다림.....

앵두가 발갛게 익을 무렵에나 감나무는 뽀시시 노란 꽃을 내민다.

내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약간 떫고 달콤한 감꽃은 얼마나 황홀한 주전부리였던가!

 

졸업 후 십여년 만에 미술선생을 접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홍대 졸업생이 이화여대 어린 동창들과 사귀는 일, 작업. 등록금, 집안일,.....

내게 만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번 탈락하면 퇴학 되는 무지한 영어시험.,,,, 영어시험 때문에 재입학한 학생도 바로옆에 있었다.

우여곡절 후에 석사가 되었지만 곧바로 내 앞에는 더 높은 산이 보였다 -교수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다. 올라가야 할 언덕은 한두개가 아니었고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았지만

경기대 조각과의 교수가 되었다.

넘고 나면 금방 더 높은 산이 보이는 세상살이는 항상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천천히 꽃 피워도 무엇보다 부드럽고 달콤했던 내 감나무는 고향 마당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주었다.

더 기다릴 수 있고 더 참을 수 있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더 좋은 힘이 되었다.



 

내 인생에서 더 높은 산은 계속 나타나겠지.

오늘도 조금씩 조금씩 올라 가야지.

초조하지 말자. 그래도 감나무에는 감이 익었어.


                                          (아모레퍼시픽)향장 2000년3월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