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지그, 사진 M+
장샤오강, 블러드라인 시리즈, 17 대가족, 1998, 울리 지그 컬렉션
여기 우리 돈으로 1,900억 원, 홍콩달러로 13억 달러(2012년)에 달하는 중국현대미술품 1,436점을 남의 나라 미술관에 몽땅 기증하고도 ‘나는 참 행운아’라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스위스 아트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 1946- )다. 취리히대학을 나온 비즈니스맨이자, 중국 주재 스위스대사를 역임했던 지그는 중국에 체류하며 수집한 작품들을 ‘뒤도 안 돌아보고’ 홍콩 미술관 M+에 기증했다. 그의 컬렉션에는 중국의 반체제 아티스트 아이웨이웨이가 석기시대 돌도끼 3,600개로 구현한 설치미술 <Still Life>, 마오쩌둥을 철창에 갇힌 것처럼 표현한 왕광이의 회화 등 중국 현대미술을 논할 때 꼭 거론되는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
지그의 기증 작품에 대한 평가액 1,900억 원은 2012년 초 전문가집단이 보수적으로 산출한 금액이어서 6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곱절이 넘을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울리 지그는 그 흔한 ‘재벌’도 아니다. 첫 직업은 언론사 기자였고, 그다음은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직원이었다. 현재는 스위스의 180년 된 출판미디어기업 Ringier의 부회장이다.
그런 그가 33년간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중국미술 컬렉션을 홍콩 서주룽(West Kowloon)지구의 M+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하자 이 금쪽같은 컬렉션에 눈독을 들였던 유럽 미술관들은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격랑기 중국 현대사가 집대성된, 다시 없는 컬렉션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중에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컬렉션을 매입하겠다는 곳도 있었고, 경매사들은 “000 작품은 값이 어마어마하다”며 판매를 권유했지만 지그는 일체 응하지 않았다. “중국인의 것이니 중국에 있어야 하고, 누구나 볼 수 있으려면 공립미술관이 제격이다”며 M+를 택했다.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을 택한 것은 작품 중 일부가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지그는 중국미술 컬렉션을 시작할 때부터 ‘기증’을 염두에 두고 임했다.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작품 속에 압축적으로 녹여냈다면 작가의 지명도라든가 크기, 값을 따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고 판단되면 무명작가의 작품도 사들였다. 그는 “누구도 관심을 안 가질 때 중국현대미술을 만나, 원하는 작품을 마음껏 수집했으니 최고의 행운아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한국미술도 무척 좋아하는 울리 지그는 한국을 10회 이상 방문했다. 작년 9월에는 문화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초청으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참관차 내한해,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컬렉션 스토리는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중국현대미술의 산 증인’, ‘오늘의 중국현대미술을 있게 한 사람’ 같은 수식어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울리 지그를 이 같은 면모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기존 컬렉터와 다른 점이 꽤 많기 때문이다. 작품에 끌려, 또는 집안 장식을 위해, 미래 수익창출을 위해 작품을 사 모으는 대부분의 수집가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트컬렉션에 임하는 태도와 목표가 더없이 확고하다. 지구촌에서 울리 지그처럼 의식 있고, 진지한 컬렉터도 흔치 않다. 그래서 연구대상이다.
취리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되어 경제계를 취재하던 지그가 중국 땅을 밟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다. 1977년 엘리베이터 회사인 쉰들러(Schindler)에 입사한 그는 중국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1979년 스위스를 떠났다. 당시 중국의 개방정책이 막 시작된 때라 쉰들러는 중국과 합작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외국기업이었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지의 대륙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 만난 민중들은 혁명의 소용돌이와 경제적 궁핍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것이 미술가들이었고, 지그는 그들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중국의 사회현실과 역사에 빠져들게 됐다. 그리곤 그 삶과 역사를 담은 작품을 수집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 무렵 중국 현대미술은 여전히 설익고, 정치선동적이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중국의 실상을 예술로 집적해낸 작품들은 훗날 큰 의미를 지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여느 컬렉터 같았으면 주위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부’가 먼저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턱대고 계통 없이 이런저런 작품을 사기보다, 방향부터 제대로 설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수년간 중국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다룬 책을 읽으며 연구를 거듭했다. 당시 중국에는 그를 코치할 큐레이터라든가 연구기관, 미술관이 없었기에 독학을 해야 했다. 때마침 텐안먼 사태가 터지며 중국예술계에도 혁신의 바람이 불어닥쳤고, 작품들 또한 한결 파워풀해졌다. 이때부터 그는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물론 1980년대 초에 비해 작품값은 꽤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가격 보다 컬렉션의 방향과 맥락이 더 중요했다. ‘축적’이 아닌 ‘성격’을 추구한 것. 그렇게 모은 작품은 400여 작가의 2,300여 점에 이르게 됐다.
지그는 그 가운데 핵심에 해당하는 1,436점을 추려 기증했고, 추후 미술관 측이 46점을 별도로 매입해 ‘M+ Sigg컬렉션’은 총 1,510점을 헤아린다. 컬렉션은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발아기(1979-88)에서부터 2기(1989-99), 3기(2000년대)가 망라돼 중국현대미술의 진면목을 살피기에 충분하다. 오는 2019년부터 이 컬렉션을 선보이게 될 M+미술관은 홍콩 서주룽지구 복합문화단지(WKCD) 내에 들어선다. 건축은 세계적 거장 헤어초크& 드 뫼롱이 맡았다. M+측은 애초 계획했던 ‘2017년 개관’이 늦어지자 2016년 3월 홍콩 쿼리베이의 아티스트리(Artistree)에서 컬렉션의 일부를 공개했다. 아트바젤홍콩 기간에 발맞춰 열린 이 특별전에는 동서양 관람객이 몰려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시에는 아이웨이웨이, 팡리준, 장샤오강, 웨민쥔, 쩡판즈, 겅지엔이, 장후안, 리우웨이 등 오늘날 중국현대미술을 논할 때 최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작가들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미술 80점이 나왔다.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 심화된 중국 내 정치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시니컬 리얼리즘’ 작업이 주를 이뤘다. 또 ‘85신조미술운동’의 주역으로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황용핑과 장페이리 작품도 포함됐다. 문화혁명기에 찍은 흑백의 가족사진을 촉촉한 필치로 옮긴 장샤오강의
쩡판즈, 마스크 시리즈, 무지개, 1997, 유화, 179×198cm, 울리 지그 컬렉션
<혈연-대가족>, 웨민쥔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여인>, 다섯 명의 남자가 가면을 쓰고 서 있는 쩡판즈의 <무지개>(1996) 등 ‘트리오 스타작가’의 회화는 가장 관심을 모았다.
스위스에서 ‘중국통’으로 꼽히던 지그는 1995년 주중(駐中) 스위스 대사로 임명돼 다시 중국 땅을 밟았다. 1998년까지 중국, 북한, 몽골 대사로 활동하며, 작품도 열성적으로 수집했다. 그때 사들인 1990년대 작품은 지그 컬렉션의 정수에 해당한다. 베이징중앙미술학원의 피 리(Pi LI) 교수는 “울리 지그의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은 풍부한 서사를 품고 있다. 특히 90년대 작품들은 A+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울리 지그의 최종 목표는 ‘컬렉터’가 아닌 ‘중국미술 연구자’로 남는 것이다. 그가 스위스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의 자문을 받아 1997년 중국현대미술상 CCAA(Chinese Contemporary Art Awards)를 제정하고, 10년째 중국의 유망작가에게 상을 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가탐구를 더 깊이 하고 싶어서다.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 뉴욕의 구겐하임 어워드처럼 CCAA가 굳게 자리 잡길 희망하고 있다.
지그는 중국현대미술이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데도 기여했다. 1999년과 2001년,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하랄드 제만은 충격적이고 이국적인 중국 작가들의 회화와 사진을 대거 선보여 큰 화제를 뿌렸다. “제만이 장막 뒤에 숨어있던 중국현대미술을 햇빛 아래로 가져왔다”는 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 뒤에는 지그가 있었다. 그가 제만을 중국으로 초청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안내하고, 중국미술의 현주소를 살피게 했던 것. 비엔날레에 나온 중국 작품 대부분은 지그의 컬렉션이기도 했다.
울리 지그는 ‘중국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린 스위스 챔피언’(뉴욕타임스)이란 자랑스러운 칭호를 받았지만 그 어떤 컬렉터보다 소탈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리고 ‘작가들의 혼이 담긴 미술품은 결국 공공의 것’이라며 공공의식을 앞장서 실천한 민주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다. 지구촌에 이런 의식 있는 컬렉터가 더 많이 나오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