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트마켓에서 아시아 슈퍼컬렉터들의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그야말로 기세등등이다. 초스피드로 가공할만한 부(富)를 축적한 중국(중국계) 억만장자들이 자국 미술과 서양 근현대미술을 거침없이 사들이자 ‘차이나 컬렉터 모시기’가 한창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갤러리들이 홍콩과 상하이에 분점을 내고, 중국 부호들의 코앞에 유명작가 작품을 들이밀며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걸작을 턱턱 사들이는 중국의 슈퍼리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화교 출신의 인도네시아 컬렉터 부디 텍(Budi TEK 중국명 위더야오·余德耀, 1957- )이다. 부디 텍은 중국의 파워컬렉터 중에서도 현대미술에 대해 가장 진지하고, 가장 균형 잡힌 식견을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인도네시아에서 양계업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인도네시아 현대작품 수집을 시작으로 중국현대미술과 웨스턴 아트로 방향을 넓힌 컬렉터다.
2004년부터 수집가 대열에 진입한 그가 세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010년 홍콩 소더비경매에서 장샤오강의 <창세편-일개 공화국의 탄생 2호>(1992)를 76억 원에 낙찰받으면서다. 검은 제단에 황금빛 갓난아기가 누워 있는 이 그림은 장샤오강 작업에 중요한 변곡점을 이룬 작품인데 부디 텍은 추정가의 2배가 넘는 가격에 사들였다. 그 무렵 그는 컬렉션에 엄청난 열정을 보이며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거침없이 사들였다. 그 결과 2011년 미국의 미술잡지 『아트+옥션』이 선정하는 ‘세계 10대 컬렉터’에 아시아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9년 이래 해마다 런던과 뉴욕, 바젤의 아트페어와 경매를 빠지지 않고 찾으며 스케일 큰 작품을 연거푸 사들였으니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작년 봄부터 다시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상하이 웨스트 번드(West Bund)에 2014년 무려 9,000㎡ 규모로 설립한 유즈(YUZ)미술관을 돌연 “공공의 것으로 넘기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부디 텍은 2017년 3월 아트바젤홍콩의 VIP 라운지에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1년 반 전부터 치명적인 질병(췌장암)을 앓고 있는데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 때문에 인간으로서 삶의 지평이 바뀌었다. 내가 아직 호흡하고 있고, 여전히 유용한 사람이라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요즘 유즈미술관을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뛰고 있다. 성공할 경우 상하이에서 이사회가 운영하는 최초의 공공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디 텍은 2015년 중국 상하이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이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며 투병 중인데 올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공동으로 전시 및 프로그래밍을 펼치겠다. 유즈재단이 보유한 나의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LACMA와 함께 설립할 공동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1년 만에 또다시 아트바젤홍콩 현장에서 새 결정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이날 부디 텍은 “나의 수집품과 미술관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확실히 해두기 위해 LACMA와 협력관계를 맺기로 했다”고 밝히고, 이는 전례 없는 동서(東西) 문화협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는 6월 체결될 양 기관의 콜라보레이션을 ‘결혼’에 비유한 그는 “이러한 결정은 지난 2년간 마음속으로 숱하게 다져온 것이다. 방대한 컬렉션에 대해 주위 우려가 큰데 이 자산을 잘 유지하고, 잘 활용하기 위해 LACMA를 택했다. 사실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마이클 고반 LACMA 관장은 “부디 텍의 놀랍고 엄청난 중국 및 아시아 현대미술 컬렉션을 우리가 접근할 수 있게 돼 LACMA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며 반겼다. 공동재단의 명칭은 확정되지 않았는데 부디 텍은 ‘YUZ’가 포함되길 희망했다. 또 가족이 이사회에 포함되길 바랐다. 재단의 향후 지배구조는 논의 중으로 부디 텍은 자신의 재산에서 YUZ재단이 분리되길 원하고 있다. 즉 정부 또는 개인 소유가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운영되길 희망한 것. 두 미술관은 오는 2019년 봄 첫 공동전시를 열 예정이다. 큐레이팅은 시카고대학의 우훙 교수가 맡기로 했다.
LACMA측은 부디 텍의 컬렉션 중에서도 중국현대미술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말까지 차이나 아방가르드 운동을 주도했던 주요 작가의 핵심 작을 부디 텍이 다채롭게 수집했기에 오는 6월 공동재단이 출범할 경우 미국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당국과의 조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내로라하는 중국예술가들의 알짜배기 작품을 소장하고 연구,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대단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미술시장에서 사려고 해도 사기 힘든 굵직굵직한 작품을 공동재단 아래 보유하게 됐으니 큰 행운인 셈이다.
부디 텍은 중국현대미술과 인도네시아현대미술을 포함해 총 1,5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불과 10여 년 만에 수집했다. 대단한 속도요, 집중이 아닐 수 없다. 계산상으론 사흘에 한점 꼴로 수집한 셈이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관계자는 “부디 텍 회장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자카르타의 양계회사에 첫 취직했을 때부터 밤낮없이 일한 것으로 유명했다. 잠 쫓는 약까지 먹어가며 중소기업이던 양계회사를 번듯한 대기업(시에라드 프로듀스)으로 키우며 증시에도 상장시켰다. 아트컬렉션 또한 이런 열정으로 몰아치듯 빠져들었는데 ‘미술, 이거 완전 중독이다. 나는 담배도, 도박도 안 하는데 미술은 헤어나올 수가 없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4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무엇이든 한번 빠지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몰입형 인간’인 부디 텍은 2006년에는 자카르타에 유즈미술관을 설립했고, 2007년에는 유즈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곤 마침내 2014년 상하이에 초대형 현대미술관을 만들었다. 현대미술이라는 신세계를 만나 ‘열공’을 거듭하며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사들인 그는 “미술품을 사는 것은 ‘감각적 경험’을 사는 것이다. 특별하게 구성된 작품에 정신적으로 응답하며 ‘심리적 평가’를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인간이 대인관계에서 겪는 경험과 일치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신 스스로 Theory(가설)를 만들어가며 컬렉션에 임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샀지만 반드시 작품을 직접 보고 결정했고, 컬렉션 방향(Theory)에 부합되는 것만 골랐다. 그는 컬렉션 초부터 “작품은 공공과 나눌 때 가치 있는 법”이라며 미술관 사업에 혼을 쏟았다.
황용핑, 타워 스네이크, 2009, 알루미늄, 대나무, 철 등, 부디 텍 컬렉션
부디 텍은 작은 체구와는 달리 장대한 작업을 선호한다. 또 논쟁적인 작업에 끌린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작가 아델 압데세메드가 3대의 비행기로 만든 <Like Mother, Like Son>은 아무나 사기 어려운 설치작업이다. 비행기 잔해로 이뤄진 초대형 작품이 과거 격납고였던 상하이 유즈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전문가들은 ‘묘한 아이러니’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 작가 황용핑이 쇠와 대나무로 쌓아 올린 <타워 스네이크>, 문제적 작가 장환의 거대한 브론즈 작업 <부처의 손>도 부디 텍이기에 사들인 ‘뮤지엄 피스’다. 또 중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슈빙이 60만 개비의 담배를 촘촘히 설치해 실현한 <Tobacco Project>도 부디 텍의 컬렉션 방향을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장환의 조각 <부처의 손>과 아델 압데세메드의 <Like Mother, Like Son>, 부디 텍 컬렉션
그는 마우리치오 채틀란, 안젤름 키퍼, 안토니 곰리, 마이클 리델의 작품을 사들였는가 하면 자코메티의 조각도 수집해 화제를 모았다. 또 젊은 작가 카우스의 조각도 사들였다. 한편 한국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박서보, 정상화 같은 단색화 작가와 이우환의 작품을 여러 점 수집했다. 중국현대미술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내면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또 서도호, 최우람, 임태규의 작품도 컬렉션했다.
부디 텍은 예술을 접하면서 평범한 기업인이었던 자신의 삶이 새롭게 확장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업만 파고들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변화무쌍한 세계를 만났으니 더없이 뿌듯하다는 그는 “아직 할 일이 많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가 부디 병마를 딛고 다시 미술계를 뚜벅뚜벅 누볐으면 좋겠다. 앞뒤 재지않고 예술 자체에 몰두하는 컬렉터가 날로 줄어드는 시대에 그의 행보는 무척 소중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