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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중 가장 세계주의적인 작가, 김환기

김달진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인 수화 김환기 화백이 생전에 소망하던 아담한 미술관이 타계 후 20년 만에 세워지고 있다. 지난 1992년 그를 위해 개관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그가 생전에 그려놓은 설계도 그대로 별관으로 지어지고 있으며 11월에 완공된다고 한다. 그곳은 그의 예술혼을 보여줄 기념관으로 꾸며 관련 자료나 유품이 보존 전시한다. 환기미술관은 한 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사설미술관으로는 가장 모범적인 운영을 보이고 있다. 매년 남기고 간 작품들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 회고전, 10주기전, 탄생 80주년전, 20주기전 등 굵직한 전시회로 타계했지만 잊혀지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있다.


김환기(金煥基)는 1913년 전남 신안 태생으로 일본대학을 졸업해다. 해방후 신사실파 동인으로 모더니즘 회화의 선구자였다. 홍익대교수를 역임했고 1956년부터 3년간 파리에 체류하였다. 1963년 한국 미협 이사장으로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하여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다 1974년 61세로 작고하였다.




그는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이며 한국적 서정을 양식화한 작업으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나누어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기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1930년에는 구성주의적 양식화에 의한 추상을 시도하였다. 1950년에는 달, 구름, 산, 새, 사슴, 매화, 백자, 여인 등을 주제로 풍요한 색채와 시적인 표현의 양식화된 작품을 보였다. 이조백자에 대한 끈임없는 애정은 많은 항아리 그림으로 승화되고 시를 직접 화면에 도입하는 시도에까지 이르렀다. 문인들과 교우가 많았으며 좋은 산문들도 남겨 놓았다. 파리시대에는 더욱 심화되고 원숙함을 더해갔다. 전반기 작품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형상적 작업이었다. 즉, 한국인이 꿈꾸어 온 이상향적 이미지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완전 추상화된 것은 60년대 중반이었다. 기하학적이며 단순 구성의 추상을 거쳐 면분할의 색점 작업이었다. 처음 미국 생활이 국내에 소식이 알려지지 않다가 1970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크게 변모된 작품세계로 드러났다. 이때 대상을 수상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의 마지막 연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가는 무수하게 찍어나가는 점 하나하나가 친구와 친지, 추억이 깃든 갖가지 이름을 붙여 보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작업은 조그만 사각형에 둘러싸인 무수한 색점들이 수평이나 수직, 혹은 곡선이나 원으로 반복해서 행렬을 이루는 게 많다. 청색 공간을 중심으로 또는 적황색, 회색톤의 놀라운 스케일에 치밀하고 질서 정연한 화면이 압도적이다. 이는 도시의 밤 불빛이나 밤 하늘의 찬연한 별빛을 연상 되게 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맞닿는 곳으로도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민족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하였다. 활동무대도 세계주의적인 작가였다. 사후에도 서울 뿐만 아니라 뉴욕 파리 도쿄에서도 전시회가 이어졌다.


- 포스틸갤러리 199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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