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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남종화의 마지막 보루, 의재 허백련

김달진

한국 근대미술의 대가를 찾아서 (7)

전통 남종화의 마지막 보루, 의재 허백련


우리 미술계에 '동양화 6대가'라는 말이 있다. 이는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로 신문회관에서 열린 '동양화 여섯분 전람회'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의재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향 박승무,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말에 태어나 우리의 근현대를 거치며 1970년대까지 활동하며 이름을 남긴 작가들이다. 허백련은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등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는 달리 전통적인 남종화에 뿌리를 두고 그 법통을 지키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동양화는 크게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분한다. 북종화는 아름다운 색채와 대상물의 사실적이고도 객관적인 표현을 중시하였다. 주로 초상화 동물화를 채색하여 그렸고 직업적인 화가들이 많았다. 반면에 남종화는 상징적이고 주관적인 화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였다. 먹색을 사용하여 농담에 의한 변화있는 표현이 발달하였다.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은 1891년 전남 진도 태생으로 미산 허형(米山 許瀅)에게 사사했으며 일본에도 유학했다. 1913년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 입명관대학에 입학했으나 중단하고 일본화가에게도 그림을 배웠다. 1922년 1회 선전에서 2등상을 수상했고 27년까지 출품했다. 국전에서 초대작가도 역임하였고 예술원 회원으로 197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1973년 동아일보주최 회고전(신문회관)이 있었다. 1977년 향년 87세로 별세하였다. 사후에는 큰 전시회로 1991년 탄생100주년 기념전이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되어 작품세계를 살펴 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사군자, 기명질지, 화조, 산수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나 특히 산수화에서 기량을 나타내었다. 자연을 그렸지만 사의라는 정신적 표현법과 문기 넘치는 작품을 고집스럽게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산수화는 비현실의 이상적 관념주의에 머문 셈이다. 전반적인 성향은 밋밋하고 펑퍼짐한 호남지방의 산세가 드러난다. 말기에는 농촌의 전원생활을 산수에 넣기도 하였다. 화법에 엄격했고 수묵의 엷은 담채 및 거친 갈필을 뭉개듯이 사용한 기법이 많다. 중묵에 갈필을 위주로 부드럽고 정취짙은 독특한 필치를 보였다. 한학과 중국화론에 대한 깊은 지식은 예술적 풍부성을 보였다. 서예에도 독특한 격조를 보여 남종화가의 이상적 조건인 시서화(詩書畫)를 겸비하였다.





의재의 또 다른 면모는 농민운동가로도 족적을 남긴 점이다. 나라를 부강시키기 위해서는 농촌운동이 절실하다는 판단 아래 1946년 광주농업고등기슬학교를 설립하였었다. 한편 다원과 농원을 가꾸며 근로생활을 실천하며 만년에는 무동산 기슭의 춘설헌을 생활 근거지로 도인의 면모를 보였다. 1938년 연진회를 발족시켜 후학들을 배출하였는데 구철우, 김옥진, 문장호, 이상재, 박행보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해방후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활동은 이어지며 한국화의 커다란 맥을 잇고 있다. 그는 남종화에 이상을 싣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80여년 동안 예도를 지킨 마지막 거장이었다. 정신적 내면성을 중시하는 독특한 양식을 호남화단에 정착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다하였다.


- 포스틸갤러리 199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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