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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달빛의 매혹 - 이재삼 회화

김종길

달빛의 매혹

 

 

김종길 | 미술평론가

 

 

마디 하나에 또 마디 하나
천 개 가지에 만 개 잎이 모여도
내가 기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벌과 나비를 붙들지 않으려 함이네
_ 청나라 화가, 시인 정섭(鄭燮, 1693~1765)

 

사물마다 고유한 형상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
그 고유한 형상의 바깥(너머)이 만들어 내는 빈 공간입니다.
그 어둠, 그 여백,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경이 있습니다. 일종의 ‘초월’일 것입니다.
그림엔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있어요.
숲은 신령한 존재로 드러나는데,
달의 빛, 달의 소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_ 이재삼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고종석은 채호기의 시집 『수련』에서 “너의 몸은 보이지 않아. 그러나 너의 몸의 미세한 부분을 확대하면 거기엔 꽃잎실로 짠 꽃천들이 너울거리지.”와 같은 시행을 읽고 “그들의 발가벗은 육체는 서로에게 후끈 달아, 더러 눈맞춤의 단계도 생략한 채 입맞춤으로, 배맞춤으로 돌진한다.”고 의역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수련』의 공간을 수련과 물과 빛과 공기의 세계라고 말한 뒤, 수련의 몸뚱이 둘레에는 밀레토스 철학자들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네 원소 가운데 물과 공기와 불(빛)이, 그것들의 육체가 배치되었다고 고백했지요.


채호기의 ‘수련’을 이재삼의 ‘대나무’로 바꿀 때 사물과 풍경의 에로티시즘은 빛을 발합니다. 사물과 빛의 성애로 터질 듯 충만한 것이죠. 대나무의 몸(짓)에도 물과 공기와 불(빛) 그리고 흙(대지)이 배치되어서 미학적 둘레를 형성하기 때문이에요.


오랫동안 ‘지조와 절개의 미학’을 함축했던 대나무는 왜적의 칼에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왼팔로 붓을 잡아 절정의 미학을 꽃피웠던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41-1622년 이후)의 묵죽도(墨竹圖)에서 오롯해요. 숙종(肅宗, 1661~1720)은 이정의 여덟 폭 묵죽병풍을 구해 본 뒤 “숲을 이루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다. 묘한 필치가 아니면 어찌 이러하리오. 오작(烏雀)이 보면 반드시 날아와 앉으려다 떨어지리라.”라는 평을 『열성어제』에 「탄은묵죽팔폭병풍(灘隱墨竹八幅屛風)」으로 남겼어요. 그의 그림은 풍죽(風竹)과 우죽(雨竹)에서 아름답죠. 왜적의 칼날을 견딘 그의 정신이 댓바람에서 힘찼던 것.


수운 유덕장(峀雲 柳德章, 1694~1774)도 묵죽을 잘 그려서 이정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 유덕장의 묵죽도를 보고 이렇게 평했죠. “수운(峀雲)의 죽(竹)은 창경(蒼勁)하고 고졸(古拙)하여 팔목에 금강저(金剛杵)를 갖춘 듯하다. 탄은(灘隱)에 비기면 어느 한 구석이 빈 듯하지만 천학(淺學)의 무리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였을까요?「수어산수관집(峀魚山水館集)」에서 유덕장은 이정과 자하 신위 (紫霞 申緯, 1769~1847)와 더불어 동국화죽(東國畵竹)의 3대가라 불렸어요.


나는 그들의 후예로서 이재삼(목탄화)과 최병관(사진), 홍성민(수묵)을 신동국화죽(新東國畵竹)의 3대가라 부르고 싶어요. 이재삼의 목탄화가 어둠의 여백, 그 너머의 매혹을 드러내는 미학적 대상으로서 대나무를 그리고 있다면, 최병관은 흑백사진으로 대숲에 어린 ‘빛의 그늘’을 깊게 포착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죠. 반면, 홍성민은 연진회와 아산 조방원 문하에서 수묵을 익힌 뒤, ‘곧은 지조’의 뜻을 저항의 상징으로 표출했어요. 민중의식과 시대정신의 미학을 실험했던 홍성민의 대나무는 현재 ‘아시아-샘’이라는 화두로 넓어져 있죠.


청나라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정섭(鄭燮, 1693~1765)은 예술과 현실을 접목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했어요. 그는 시서화를 잘해서 삼절(三節)이라 불렸고 관직을 그만둔 뒤에는 양주에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렸죠. 그 때 대나무를 즐겨 그린 것은 강직하여 불의에 굽히지 않는 그의 성품 때문이었어요. 그는 많은 중생들과 어울렸고 자유로웠으며 호방했죠. 양주사람들은 그런 그를 ‘권세를 뜬구름으로 여기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간 괴짜 예술가’라고 불렀고 팔괴(八怪)라고 했어요. 우리가 흔히 ‘양주팔괴’라 부르는 바로 그 예술가들 : 금농(金農), 황신(黃愼), 이선, 왕사신(汪士愼), 고상(高翔), 정섭(鄭燮), 이방응(李方膺), 나빙(羅聘).


정섭이 그린 <죽석도(竹石圖)>(1735) 화제에 이런 시가 있어요. “우레 그치고 비 개어 햇살 비스듬히 비치니, 한 줄기 새 대나무 곱게 흔들리네. 푸른 깁 바른 창 위에 그림자 비치니, 문득 붓과 종이 꺼내어 그려보았네.” 그 외에도 많은 제화시(題畵詩)가 있고, <석죽(石竹)>, <죽(竹)>, <이죽(籬竹)>, <순죽(笋竹) 2수>등의 시를 남겼으며,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 난, 수많은 세월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 영원히 자리를 뜨지 않는 바위”를 배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죠. 그렇다면 이재삼의 목탄화와 대나무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어둠의 여백, 그 너머의 매혹


이재삼의 목탄화는 앞서 설명했듯이 소나무, 대나무, 매화, 폭포수를 제재로 다뤘죠. 그것들은 극동아시아 한국의 철학적 사유체계에서 철학을 서화(書畵)의 미학적 기표로 상징했던 오래된 사물들이요 풍경이에요. 세 나무는 한겨울의 벗으로서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렀고 셋을 한데 어우른 말로 ‘송죽매’라고도 했죠. 또한 매화와 대나무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에 비유해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손꼽았어요.


삶의 철학으로 깊게 침윤되어서 너울거리는 사물들의 뜻에는 지조, 절개, 은일, 탈속, 우의, 신의, 겸허, 도덕과 같은 것들이 깃들었어요. 그 뜻의 세계는 조선이라는 한 세계가 지향했던 이상이어서 사람은 누구나 뜻의 가치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죠. 또한 그 세계에서 뜻을 세우고자 하는 이는 자주 송죽매와 어울리거나 사군자의 곁에서 살았어요. 아니 살고자 노력했으며 치열하게 닮고자 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뜻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미세한 부분을 확대하면, 그들은 꽃잎실로 짠 꽃천들과 너울거리기 위해서 발가벗은 육체로 뛰어들거나 더러 눈맞춤의 단계도 생략한 채 입맞춤으로, 배맞춤으로 돌진했던 것일 터.


뜻과 이상의 철학을 높게 세워서 사물과 풍경에 물들여놓고 다시 사물과 풍경에의 은밀한 유혹을 일상화 했던 그들의 정신은 매혹적이기까지 해요.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옛 그림에서 뜻풀이에 치중했을 뿐 뜻으로 뛰어들었던 그 매혹의 에로티시즘에 대해선 침묵했어요. 채호기가 수련을 두고 “수련 꽃잎의 테두리가 너를 끌어당기고/ 수련을 둘러싸고 있는 네가 흰 꽃잎을 끌어당기고/ 아, 이 탱탱한 탄력!”이라 긴장했을 때, 수련과 시인의 시선은 주객의 구분 없이 엉겨 있는 꼴이에요. 마찬가지로 이재삼의 송죽매도 그와 다르지 않아요. 그는 달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송죽매를 끌어당겨서 캔버스 천에 탱탱한 탄력의 육체를 재현했어요.


근대화 이후, 한 세기가 지난 뒤 이재삼의 미술세계에서 그런 눈맞춤, 입맞춤, 배맞춤의 미학적 돌진을 감상하는 것은 그래서 참으로 요요하죠. 송죽매의 매혹이 눈부시니 혼자서 몰래 엿보는 일 인양 낯부끄럽지만, 이 낯부끄러움의 간음이야말로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그 나무들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이러한 간음적 관람의 주체와 작품 사이에는 ‘응시’에 대한 동아시아적 관습이 묻어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적어요.


정재서가 엮은 『동아시아 여성의 기원』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볼 때 “곁눈으로 보다(側目), 몰래 엿보다(窺), 다른 사람이 모르게 가만히 보다(伺)”와 같은 시선을 가져요. 곁눈질로 가만히 엿보는 이런 시선의 방식은 동아시아 사회가 여성의 똑바른 ‘응시’를 금기시(혹은 금지)했기 때문에 발생했죠. 이재삼의 달빛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를 보는 시선에서 동아시아 여성들의 몰래 엿보기를 발견하는 것은 관람의 주체가 ‘여성’의 상징주체 일수도 있음을 말해줘요.


그림의 형식은 [밤/만월․초승달/달․달빛::목탄/면천/소나무․대나무․매화]의 대비구도를 갖췄는데, 이 구도의 뜻을 달의 여성성과 나무의 남성성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러나 그것은 새롭지 않아요. 작가는 음혈(陰穴)을 이룬 곳에서 300년을 지속했던 소나무들-경북 군위의 소나무, 영양의 만지송, 하조대 소나무, 사인암 소나무-를 찾아 헤맸어요. 단순한 노송들이 아닌 것이죠. 달과 대지가 여성성으로 한 몸 한 기운이라면 소나무는 그들이 잉태한 음혈의 힘찬 뿔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 뿔의 불사리(木炭)로 송죽매를 그렸어요. 그러니 그가 그린 송죽매는 지근(地根)일 것이고, 폭포수는 그 지근과 한 쌍을 이루는 음수(陰水)일게 분명해요.


이재삼은 목탄이 “나무를 태워서 숲을 환생시키는 영혼”의 표현체라고 하고, 송죽매 너머에 “어둠 여백,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경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리고 그 비경으로 들어가면 “달의 소리와 음혈이 그 안에 있다”고 강조해요. 즉 그의 그림은 ‘저 너머’로 향하는 하나의 문이라는 것. 달리 말하면 그 문이 바로 나무들이 서 있는 음혈이요, 음수의 폭포수라는 것이에요. 그렇게 그는 그 세계로 들어가는 매혹의 비경을 보여줘요. 우리가 그 비경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둠의 여백을 채우는 달빛의 매혹을 ‘육체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그 너머의 세계에 가 닿을지 모르니까요.

 

 

뜻과 상징에 대하여


자, 그렇다면 이재삼의 작품에는 어떤 뜻의 상징이 깃들어 있을까요? 그리고 그 뜻의 상징은 또 어떻게 풀어서 해석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 뜻과 상징이 서구적인 미학의 개념들과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깊이를 확보하고 있을까요? 물론 이 전시와 기획이 서구와 동아시아의 현대 미술을 ‘대응’과 ‘철학적 깊이’로 비교해서 서로의 ‘다름’을 따지려는 허술한 이기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한 작가의 뜻과 상징을 깊은 곳으로부터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조응하며 서로의 ‘차이’를 명징하게 밝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재삼은 그가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드로잉 재료였던 연필로 작품의 전체를 완성하는 실험을 보여주었어요. 화려한 붓과 물감의 색채를 내려놓고 화면을 시커먼 연필로만 채워야 하는 상황은 달리 말하면 연필의 검은 선 하나로 색(色)과 면(面)과 형(形)을 완성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연필의 그 검은 흑연 덩어리가 흰 바탕에서 형을 채워나가는 것은 옛 사람들이 먹으로 형상을 그렸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한 획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획으로 형(形)과 영(影)을 그리는 것이 다를 뿐.


그러나 연필의 가는 선의 획과 흑연의 맛은 ‘검묵’이라고 사유했던 그의 회화적 색채의 느낌과 농담의 맛과 표면의 재질을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어요. 더군다나 화면의 크기가 100호, 200호로 확장되었을 때 연필의 한계는 더 또렷했죠. 그래서 그가 선택하는 것이 목탄(木炭)이에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공기를 차단해서 목재를 가열하면 유기물이 열분해를 일으켜 탄화를 시작하는데, 이때 기체로서 목가스가 나가게 되고 증기는 목초액(木醋液) 및 목타르이며, 남는 것이 고형물질인 목탄”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숯[木炭]을 사용했죠. 약 2,600년 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아주 깊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숯은 생활을 위한 숯이었을 뿐 그것이 곧 그림의 재료가 된 것은 아니에요. 실제로 그림의 재료가 된 것은 숯이 아니라 ‘그을음’이었죠. 먹이 바로 그것이에요. 먹[墨]은 송지(松脂)를 태운 그을음을 아교로 다져서 만들기도 하고, 소나무를 태워서 얻은 그을음에 민어부레 아교를 섞어서 만들기도 해요. 그런 다음 먹을 벼루에 물로 갈아서 쓰지요. 그러나 이 먹도 이재삼이 사유했던 ‘검묵’은 아니었죠. 결국 그가 선택하는 것은 버드나무나 포도나무를 태워서 만든 회화용 목탄이었어요. 쉽게 부서지지 않으면서 ‘검묵’의 빛깔과 색채를 풍부하게 드러내는 독일제 목탄!


목탄에 잘 어울리는 캔버스는 광목천이죠. 그렇다고 광목이 단박에 목탄을 흡수하는 천은 아니죠. 초벌, 두벌, 세벌……. 작품마다 그 횟수는 다르지만 구륵법 형식의 선묘로 그려야 할 대상을 화면 전체에 걸쳐 그린 다음 여러 차례 목탄의 빛과 색을 다져넣어야 해요. 초벌과 두벌 사이, 그러니까 그 차례의 사이사이에서 그는 광목에 먹을 먹이듯 목탄을 다녀넣은 목탄가루가 흩어지지 않도록 정착액을 바릅니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광목은 완전히 목탄을 흡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이재삼의 작품에서 나는 다섯 개의 뜻과 상징을 생각해 보았어요. 다섯이 아니라 일곱, 열, 스물을 길어 올릴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차후의 연구로 돌리고 우선 저는 제가 생각했던 다섯 개의 뜻과 상징을 풀어볼까 해요. 다섯 뜻과 상징의 열쇳말은 현[玄:검다], 목탄[木炭:나무 사리], 후경[後景:저 너머], 생생화화[生生化化:풍경의 미학], 생동[生動:풍경의 몸]이에요. “아니 뜻과 상징이라더니 도무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들뿐이잖아!”하고 의아해 하거나 놀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제가 우리 미술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예부터 사유해 온 동아시아의 개념이기 때문에 우선 ‘아하, 이런 개념어도 있구나!’하고 그 풀이에 주목하시면 어떨까 해요.  

 

 

현[玄:검다]
현(玄)의 개념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왔습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천지현황은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이죠. 천자문을 두고 한자 공부를 위한 초등학교 교재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사실 천자문은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이뤄진 우주 자연 인간의 이치를 밝힌 시이며 철학이에요. 옛 사람들은 요즘의 초등학교처럼 철이와 영희와 누렁이와 개똥이 그리고 하나 둘 셋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하늘과 땅과 우주의 이치를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을 배웠죠. 우주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배움에 관한 근본적인 철학적 바탕이 깔려 있었던 것이에요.


첫 4구 16자의 뜻을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은 그 빛이 검고 땅은 그 빛이 누르다(天地玄黃), 하늘과 땅 사이가 넓고 커서 끝이 없다(宇宙洪荒),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日月盈昃), 별들이 해와 달처럼 하늘에 넓게 벌려져 있다(辰宿列張). 하늘과 땅의 빛이 첫이요, 하늘과 땅의 크기가 둘이요, 해와 달의 기움과 참이 셋이요, 별과 해와 달의 조화가 넷이죠.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해와 달과 별의 이치를 아는 것, 바로 이것이 공부의 첫 화두였던 것이죠.


천지현황에서 ‘현(玄)’은 하늘빛을 상징하는 개념적 문자예요. ‘검을 현’이라고 했을 때의 ‘검다’는 검은빛으로서의 하늘빛이니까요. 그러므로 ‘검다’의 ‘검’은 하늘 어둠의 빛(玄)이요, 하늘 어둠의 색(黑)이라 할 수 있어요. 그것은 한마디로 ‘검다’를 ‘까맣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요. 그런 맥락에서 현의 빛은 오묘하고 심오하며 신묘한 빛이라고 생각 할 수 있죠. 깊고 고요하고 멀어서 아득하고 아찔한 것이 바로 그 빛이니까요. 이러한 현의 개념이 이재삼의 작품을 이해하는 첫 번째 뜻과 상징이에요.


오묘하고 심오하고 신묘한, 깊고 고요하고 멀어서 아득하고 아찔한 그의 ‘현(玄)’은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가 달빛과 이루어 뿜어내는 향취에서 비롯해요. 아니, 어쩌면 그가 그린 회화의 향취가 현의 그런 멋과 맛과 흥의 아찔하고 신묘한 그것들을 풀어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므로 현의 향기는 그윽이 풍기는 암향(暗香)에 다름 아닐 것이에요.


흑의 색은 거멓고 어두워서 고약합니다. 거메지고 거메져서 오직 검을 뿐이니 먹먹하죠. 앞뒤가 탁 막혀서 먹먹하게 검은빛은 그러므로 이재삼의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빛의 색과 색들이 뭉쳐서 흰 빛이 되듯 그의 ‘흑(黑)’은 그가 ‘검묵[검墨]’이라고 부르는, 투명한 어둠의 색이 색으로 뭉쳐서 하나가 된 온갖 색들의 명징한 더하기일 거예요. 앞에서 이야기했던 하늘빛으로서의 검은빛 말예요.

 

 

목탄[木炭:나무 사리]
‘먹먹하다’의 ‘먹’은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서 만든 먹의 어둠에서 비롯하고, 목탄은 불의 사리로 남은 나무의 시커먼 뼈에서 비롯해요. 그을음과 나무의 뼈가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은 그것이 회화의 세계를 드러내는 색의 질료이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색의 질료’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서구의 색은 화려하기 짝이 없죠. 물론 동아시아의 회화에서도 그런 채색의 미학적 풍토는 깊고 오래되었습니다만, 먹 하나에서도 충분히 색의 질료를 보았다는 점이 다른 점이에요.


어떻게 옛 사람들은 먹 하나에서 우주 자연과 인간의 삶을 그리는 회화적 세계의 질료를 엿보았던 것일까요? 수백 수천 년을 이어 온 먹의 회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맛과 깊이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나 그런 전통도 20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죠. 가장 큰 변화는 먹을 채색의 한 색처럼 단순히 ‘검은색(黑)’으로 인식하는 것이었어요. 서구 화풍의 영향이 큰 탓일 수도 있고, 먹의 미학 따위는 잊고서 화면 위의 기교에만 치중한 결과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인지 현대 한국화라 불리는 문방사우의 수많은 그림들조차도 까맣게만 보일 뿐 먹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죠.


옛 사람들은 먹을 벼루에 갈아서 그렸고, 이재삼 작가는 버드나무나 포도나무를 태운 검은 사리의 목탄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검은 숯 사리 목탄. 그렇습니다. 목탄은 나무를 태워서 얻은 투명한 검은 사리예요. 먹으로 탄생한 그을음이 소나무의 눈물방울 같은 투명한 송진을 태워서 얻은 것이듯, 이재삼의 목탄은 등신불 같은 나무의 진신사리인 것이에요. 이미 태워서 가루가 되었거나 사리가 된 것들로 탄생하는 회화는 그러므로 ‘저 너머’에서 건너 온 생(生)의 씨앗일지 모르겠어요. 바로 이것이 두 번째 뜻과 상징이에요.


부처[佛] 사리의 집이 탑이라면, 이재삼의 나무 사리 집은 회화일 거예요. 스투파(stūpa)에서 비롯된 탑[塔婆]의 구조 미학은 동아시아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창조되었고 그것은 온전히 진신사리를 위한 집으로 완성되었죠. 이재삼의 회화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그의 회화는 온전히 이 나무 사리의 집으로서 완성되니까요. 그러니까 목탄은 그의 회화미학을 이루는 가장 낮은 곳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로 이 목탄이 그 신묘한 현의 빛과 색을 이루는 질료이기 때문이죠.


불의 죽음에 이른 뒤, 다시 회화의 빛과 색으로 부활하는 나무 사리. 그러니 그것이 생의 씨앗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후경[後景:저 너머]
전경(前景)이 삶의 현실로서 보이는 풍경이라면 후경(後景)은 삶과 맞닿아 있으나 삶의 이면에 존재하기에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이는 풍경은 육안(肉眼)의 이미지요, 보이지 않는 풍경은 심안(心眼)의 이미지죠. 또한 전경이 스물네 시간의 하루와 스물네 개의 절기, 그리고 삼백 예순 다섯 날의 한 해가 조화를 이룬 세계라면 후경은 그런 시간의 조화가 카오스모스로 뒤섞인 세계죠.


예컨대 그것은 우물면의 위와 아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물에 비친 우물 밖의 세계가 전경인 것이요, 우물 아래의 심연(深淵)이 곧 후경인 것이에요. 우물의 진실은 우물 밖의 세계와 심연으로부터 표상되어 올라 온 것이 우물면이라는 하나의 면에서 만나 풍경을 이룬다는 데에 있어요. 그러니까 단순히 우물 밖의 세계가 거울처럼 우물에 비추인 것만을 진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옛 초상화는 형(形)과 영(影)의 예술이라고 했어요. 형은 형상으로서 그려야 할 대상의 실체예요. 영은 그 대상이 그려진 회화를 말해요. 그런데 그 영이라는 것이 단순히 형상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의 본질까지를 담아낸 것이라 할 때, 그 영은 후경에 다름 아니에요. 그러므로 옛 초상화는 지극한 재현으로서의 그림이면서 동시에 정신의 깊이를 담아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죠.


이재삼의 작품도 그런 형과 영의 미학적 뜻과 상징을 그대로 전유하고 있어요. 그는 그가 그려야 할 대상을 찾아 전국을 누볐죠. 설령 그가 찾고자 한 나무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나무의 품새와 정신의 꼴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아니면 어렵게 찾은 나무여도 결코 그리지 않았어요. 오래된 나무만이 뿜어내는 그 독특한 몸꼴과 그 몸꼴의 자태, 그러니까 매혹(魅惑)의 느낌이 있어야만 작품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죠.


그의 소나무, 대나무, 매화, 달빛, 폭포는 그렇게 모두 이승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매혹의 실체들이에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국토의 곳곳에 뿌리내리고 서 있는 오래된 나무들과 풍경을 찾아 헤맸죠. 그의 그림들이 때때로 처처한 것은 그 나무들이 홀로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뎠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의 회화는 그런 현실의 구체성으로부터 상징의 구체성으로 나아가는 곳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작품을 두고 단순히 극사실적 재현의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에요.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궁극적으로 그 대상이 되는 나무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 나무를 드러내고 있는 달빛이고 그 달빛의 그림자이고 그 그림자 사이에서 은은한 숲의 향취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그의 회화를 ‘후경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바로 이것이 세 번째 뜻과 상징이에요. 그는 그의 회화를 두고 ‘저 너머’의 풍경이라고까지 이야기한 바 있어요. 보이는 세계의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을 보라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 너머는 아마도 풍경의 심연으로서의 ‘비경(秘境)’이 아닐까요?

 

 

생생화화[生生化化:풍경의 미학]      
순우리말 ‘생생하다’의 어근 ‘생생’은 쌩쌩하고 싱싱하다로 통합니다. 그 생생의 한자말 ‘生生’은 생기가 왕성할 뿐만 아니라 생동감이 있어서 실물이나 실제처럼 보이는 것을 말하죠. 원래 ‘생(生)’이 나고 낳고 살고 기르고 싱싱한 것을 뜻하니 생생(生生)은 그 생의 의미가 더 커진 것이 아닐는지요. 이 ‘홀로’ 생(生)과 ‘서로’ 생생(生生)이 동아시아 미학의 척추를 이루고 있어요.


중국 북송대의 유학자 정호(程顥, 1032~1085)는 “우주만물의 근원은 천지생생(天地生生)한 음양의 기(氣)로서, 생생(生生)은 생의(生意)이며, 윤리적으로는 인(仁)”이라고 말했어요. 또 『주역』「계사(繫辭)」에는 “대 자연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한다(天地之大德曰生).”고 했죠. 자, 그렇다면 생의(生意)는 어떤 의미일까요? 생의는 만물을 낳는 이치를 뜻해요. 다분히 생철학적인 의미의 이 말은 다시 생생지리(生生之理)로 이어져요. 생생지리는 만물이 서로 낳고 번식하는 자연의 이치를 뜻하죠.


‘생의’와 ‘생생지리’의 생철학적 개념이 생생화화(生生化化), 즉 늘 변화하고 볼수록 새로워지는 한 몸 우주의 살아있는 기운이요 변화예요. 김항배 선생은 『불교와 도가사』(동국대학교출판부, 1999, 304쪽)에서 “‘무위’라는 것은 유심(有心)으로 물(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고, ‘무불위(無不爲)’라는 것은 생생화화(生生化化)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을 말함”이라고 했어요. 시인 김지하 선생은 『사이버 시대와 시의 운명』(북하우스, 2003, 72쪽)에서 “기화, 기운의 변화란 바로 관계하고 순환하는 일체의 생생화화(生生化化), 동양의 고전적인 철학에서, 유학에서 말하는 일체 우주는 생생화화한다는 것입니다. 낳고낳고 변화하고 또 변화한다. 또 죽고 또 태어난다.”고 했고요.


그런 생생화화의 정신이 투영된 것이 이재삼의 목탄화예요. 그의 회화가 현묘한 것은 ‘저 너머’의 비경을 생생화화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네 번째 뜻과 상징이에요.


사람들은 그저 그의 회화가 시커먼 바탕에 그려진 사물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사물들은 어딘가에서 오래 살면서 여전히 생의 씨앗을 틔우는 생명들이에요. 낳고낳고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그것들이 바로 풍경의 미학인 것이죠. 가까이, 그의 그림 속으로 다가가면 보일 거예요. 숲에 깃들어 있는 바람과 곤충들과 양서류가. 

 

 

생동[生動:풍경의 몸]
생생화화의 기운과 변화를 생각하면서 떠올린 마지막 뜻과 상징은 생동입니다. 우리가 흔히 기운생동(氣運生動)이라고 말하는 그 기운과 생동이죠. 기운이 생동하다는 것은 곧 기운이 가득차서 넘치는 ‘충일함’을 뜻해요. 그렇다면 그 기운과 생동이 무엇으로 표출되는 것일까요? 문학비평사전에 따르면 “기운은 정운(情韻)․신기(神氣) 등의 용어와 유사하여 대상의 풍정(風情)․개성․생명과 같은 뜻이 있고, 기운생동이란 묘사할 대상의 기질․성격이 화면에 생생하게 표현되는 것을 뜻”하죠.


결과적으로 대상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당나라 화가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기운생동을 골기(骨氣)라고 바꿔 불렀어요. “옛날의 그림은 간혹 그 형사를 옮기고 그 골기(骨氣)를 숭상하였는데 형사의 밖에서 그 그림을 찾는 것은 속인들과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던 것이죠. 그의 골기는 풍골(風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해요. 물론 골기니 풍골이니 하는 말들이 인물을 품평할 때 쓰는 말이지만 이재삼의 회화에서는 회화적 대상이 되는 나무들과 풍경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될 것이에요.


풍골의 본디 뜻은 “인물의 정신과 기질, 의태(儀態)․풍도(風度)가 청준상랑(淸俊爽朗)하여 비루한 세속 풍정에 물들지 아니한 기상을 이르는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 풍골의 의미를 이재삼의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 그리고 여타의 풍경에 대입해서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그의 작품이 잘 보이기 때문이죠. 또한 그 뜻과 상징이 명확해 지지요.


그의 회화는 풍경의 리얼리티로 가득해요. 사물 하나하나의 표정과 그 표정의 군집이 생동에 차 있죠. 나무든 숲이든 영혼의 육체 없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몸의 기억이 손의 기억으로 쏟아져 나와야 가능한 그림이죠. 그는 풍경의 세목을 그리면서 풍경의 정신과 조우했을 거예요. 몸은 풍경의 심장이요, 풍경은 몸의 육체가 되는 순간이랄까요? 그렇게 서로 숨통을 트자 바람이 일고 오래된 신화적 서사가 풍경으로 잠입해요. 나무와 나무 사이, 어둠이 밝게 터지죠. 숲이 토해내는 생명들. 그 순간, 니르바나에 이른 목탄의 투명한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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