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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함께하는 삶의 가치, 다사리 정신과 철학

김종길

함께하는 삶의 가치, 다사리 정신과 철학


김종길 | 前 다사리문화학교 마당샘



다사리 : 다 말하게 하여, 다 잘살게 하여

다사리문화학교는 ‘다사리’라는 말의 뜻과 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21세기 새로운 문화예술기획을 위한 다사리 정신은 무엇일까?


어느 날 저는 정윤재 선생께서 갈무리하신 『다사리 공동체를 향하여-민세 안재홍 평전』(2002)을 보게 되었어요. 스물 셋의 나이에 독립혁명단체 동제사에 가입하고(1913), 스물아홉에 대한민국 청년외교단 비밀조직에 가담한 뒤(1919), 신간회 활동을 하며 여러 차례 옥고를 치룬 독립운동가이자 열린 민족주의자셨던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 선생을 아예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 책의 내용이 그분의 정신을 확연히 드러내더군요.


저는 그분의 사상에 매혹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다사리’는 제가 궁구했던 여러 삶의 의문들을 풀어주는 좋은 열쇳말이었어요. 선생께서는 “‘다사리’는 우주의 엄정한 질서와 운행법칙을 모델로 하는 인간사회의 정치이념이자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말씀하셨죠. ‘다사리’는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나 ‘다 사리운다’와 같은 우리말을 뿌리로 두는 데요, 이 말의 의미는 ‘진백’(盡白)과 ‘진생’(盡生)과 통하는 것이에요.


진백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뜻하고, 진생은 공동체 모두를 골고루 잘살게 해주는 사회복지로 해석할 수 있어요. 자유주와 평등주의의 이념인 거예요. 정윤재 선생은 『다사리 공동체를 향하여-민세 안재홍 평전』(한울, 210쪽, 2002)에서 “‘다사리’는 ‘다 사리어’(다 말하게 하여)와 ‘다 살리어’(다 잘살게 하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면서 ‘다 사리어’는 모두 정치에 참여케 하는 정치방식으로 ‘진백(盡白)’의 가치이고, ‘다 살리어’는 복지를 증진시켜 모두 살리는 정치목표로서 ‘진생(盡生)’의 가치라고 분석했지요.


정윤재 선생은 ‘민세 안재홍 평전’을 내고 10년이 지나서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 분석」(『동양정치사상사 제11권 제2호』, 2012.9)이라는 논문 하나를 발표해요. ‘다사리’를 사상의 개념으로 온전히 바로 세우려는 작업이었어요. 선생이 정리한 다사리 이념의 세 가지 고갱이는 다음과 같아요. 


첫째, 다사리 이념은 ‘나’의 자유론에서 출발하면서도 ‘나라’와 ‘누리’와 상통하는 사상적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개인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지구화시대에 합당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다사리 이념은 진백을 정치적 절차상의 핵심가치로 삼는 한편, 진생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관에 따른 정치리더십만 적절하게 발휘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실천적 한계는 극복될 수 있다.


셋째, 이렇게 하여 다사리 이념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극복되어 건강한 다사리공동체 형성에 성공한다면, 이는 장차 민족통일의 미래를 가꾸어 가는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을 감화(感化)시키고 통합(統合)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다.



하나둘셋넷다섯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다사리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철학은 ‘만민공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 삶’의 가치를 이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 현실이 우리가 만들어 갈 이상향 아닐까요?


민세 선생은 지천명의 나이 쉰이 되자 조선상고사 집필에 들어가요. 또한 쉰둘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아홉 번째 옥고를 치루기도 하고요. 선생은 자신의 사상을 깊고 넓게 확장시키기 위해 우리 역사와 우리말에 집중했던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사상은 결코 외국사상의 모방이 아닌 “고대 이래의 조국고유의 민족주의·국민주의·민주주의의 제이념과 꼭 합치되고, 다만 그것을 현대적 의의에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것들의 구체적인 증거로 일즉다(一卽多)·대즉일(大卽一)․개즉전(個卽全)의 회통철학(會通哲學)과 화백(和白)·홍익인간·재세이화(在世理化)·접화군생(接化群生)·대동(大同) 등과 같은 우리의 오래된 만민공생(萬民共生)의 개념을 보여주셨죠.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이런 만민공생의 개념이 하나(一:한울)·둘(二:땅)·셋(三:씨)·넷(四:나·나라)·다섯(五:다사리)·여섯(六:연속)·일곱(七:성취)·여덟(八:열고닫음)·아홉(九:아우름·회통)·열(十:개전)·백(百:온통)·천(千:참)·만(萬:조화)·억(億:선)과 같은 우리 숫자 말에 나타나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어요. 일이삼사오가 아니라 하나둘셋넷다섯이 품고 있는 유불선의 철학이 보이나요? 단재 신채호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우리말의 말뿌리 철학이 선생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민세 선생은 “전 민족이 초계급적으로 굴욕과 착취의 대상이 됐고, 이제 전 민족이 초계급적으로 해방됐으니 초계급적인 통합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어요. 선생은 그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아홉 번이나 옥고를 치를 정도로 정신이 곧았어요. 그런 선생의 비타협적인 저항 정신은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요. 선생의 아호 ‘민세(民世)’는 ‘민족’과 ‘세계’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선생은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이념은 “민족으로 세계에, 세계로 민족에, 교호(交互)되고 조합(調合)되는 민족적 국제주의-국제적 민족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민세 선생의 다사리 공동체와 사상사적 맥락에서 21세기 새로운 문화기획의 철학을 엿보았어요. 우리 경기문화재단의 다사리문화학교가 지향해야 할 비전으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이죠.


공공하는 문화, 공공하는 학교
자, 그렇다면 다사리문화학교의 정신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현실이 이상향이 될 수 있나요?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한 번 더 새겨야 할 공공성에 대해 알아보죠.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말 아세요? 사사로운 감정을 없애고 공공의 목적을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죠. 같은 말로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있어요. 공공은 사사로운 것에 우선한다는 뜻이에요. 언 듯 우리는 이 말이 애국이나 충정을 뜻하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공공의 원칙이 아닐까 생각하지요.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말은 다소 충격적인 뜻으로 읽힐 수 있어요.


사사로운 것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이고 나의 ‘나들’로서 ‘우리’의 일입니다. 봉공(奉公)이라는 공공은 국가나 정부를 뜻하지요. 이를 풀어 말하면 국가나 정부의 공익이 나의 이익에 앞서 있다는 뜻이 되지요. 멸사봉공과 선공후사의 정신은 그러므로 자칫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흐를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공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경우는 문제가 다를 수 있겠지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니 국민을 위한 공공의 일을 수행해야 하지요.


멸사봉공을 멸공봉사로 바꿔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멸공봉사는 민주주의에 합당한 개념일까요? 아니에요. 그것은 공공을 없애고 오직 사사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니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는 자주 이 둘을 혼동하거나 부정하며, 잊고 삽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까요?


활사개공(活私開公)해야 해요. 활사는 나를 크게 살리는 것이에요. 이때 나는 너의 나이고 나의 너여서, 우리 모두를 말해요. 서로주체의 서로 삶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공을 활짝 열어야 하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지요. 이를 행복공창(幸福公創)이라고 하고요. 


‘공공하다’의 뜻은 공공행복의 세계를 공동(共働:人+動)으로 구축하는 것을 말해요. 이를 위한 지적전략이 바로 활사개공(活私開公)과 공사공매(公私共媒)를 통해서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지향하는 공공철학이에요. 저는 그 공공철학으로부터 공공하는 문화, 공공하는 학교를 생각했어요. 우리 다사리문화학교가 그것이지요. 공공철학은 본래 ‘공공하는 철학’으로 불리는데요, 재일 철학자 김태창 선생이 주창한 개념이에요. 앞에서 말했듯이 활사개공은 사를 살리고 공을 활짝 여는 것이에요. 기본적으로 공공하는 철학의 말뜻은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죠.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 활사라는 것은 자기와 타자가 함께 서로 마주보면서 상대방의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나’가 진정으로 온전히, 충실히 사는 길을 말하는 것이에요. 다사리문화학교의 물들이 찾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지요?


중국의 전적 중에서 ‘공’과 ‘공공’이란 말이 제일 처음 출현한 것은 기원전 91년에 쓰여 진 『사기』이다. 『사기』속의 ‘장석지전’(張釋之傳)이라는 편이 있다. 이 장석지는 한 무제 때의 사법장관이었다. 어느 날 한 무제가 지방에 순찰을 하는 길에 다리를 지나가는데 다리아래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뛰어 나왔다. 무제가 깜짝 놀라서 말 위에서 떨어졌다. 장석지는 그 사람을 체포하였다. 심문 이후 가볍게 징벌하고 그를 석방하였다 이 때 무제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자가 말위에서 떨어져 하마터면 큰 화를 당할 뻔하였다. 그런데도 그대는 가볍게 징벌하고 그를 석방하였으니 무엇 때문인가?” 장석지는 무제를 향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공(公)적으로 함께 하는(共) 것입니다(法者, 天者所與天下公共也)” 다시 말해 “법이 법다운 것은 바로 설령 천자가 귀하다 하더라도 또한 천하(만민)과 공(公)적으로 함께(共)해야 한다.”는 것이다. (…) 『주자어류』속의 ‘공공’과 ‘천하’, ‘중인(衆人)’은 연계되어 함께 사용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한 나 개인의 독해에 의하면 주자는 관민의 문제를 처리할 때 ‘천하공공’을 주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민민(民民) 문제를 처리할 때는 ‘중인공공’을 주축으로 삼았다. 따로 대화하고 함께 움직이고 새로움을 열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참으로 성실하게 대응하였다. ‘천하공공’은 ‘수직방향 활동의 공공’이고 ‘중인공공’은 ‘수평방향 활동의 공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주자의 이러한 사상은 일본의 ‘공공’과 관련 있는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17세기의 이토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 19세기의 요코이쇼난(穔井小楠, 1809-1869) 그리고 다나카쇼우죠(田中正浩, 1841-1913) 이러한 지식인들의 학설 속에 모두 ‘공공’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용할 때 그 의미는 ‘공’과 구별이 되는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요코이쇼난(楻井小楠)이 자주 사용하는 것은 ‘천지공공의 실리(天地公共的實理)’였으며 다나카쇼우죠(田中正浩)가 사용한 것은 ‘공공, 협력, 상애(公共 協力 相愛)’였다. 이러한 낱말들이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적 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실천생활의 의미가 더욱 강렬하다. 아울러 이러한 ‘공공’에 관한 사상은 『사기』와 『주자어류』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기학가(氣學家)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바로 ‘공공(公共)’ 또는 ‘공공(共公)’의 개념을 가지고 기학과 인정(仁政)을 주장하였다.
- 김태창 선생의 강연록에서



몸맘얼의 ‘참나’로 거듭나기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 설움』에서 “살․몸은 얼․혼의 참을 증명하는 도장이다.// 내 살 내 몸이 닿지 않은 것,/ 내 피 내 맘이 배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선생의 스승 다석 유영모 선생은 몸맘얼의 모습으로 제나(이기적인 나), 몸나(몸둥이로서의 나), 얼나(참나로서의 나)를 말씀하셨지요. 몸이 없이 맘이 없고 맘이 없이 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몸 따로 맘 따로 얼 따로는 없는 것이지요.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얼․혼을 증명하는 도장이 살․몸이니 우리 몸을 어떻게 다스려서 ‘얼나’로 거듭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얼나의 존재로서 예수을 보고 부처를 보고 간디를 봅니다. 그들의 얼나는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는 “나는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는데요, 부처 또한 그런 빛의 존재, 진리의 존재, 생명의 존재였습니다. 간디를 상상하는 것은 어둠이 아닙니다. 그의 존재는 밝게 빛을 발하는 발광체에 다름 아닙니다. 빛은 어둠을 밀어내고 세계를 드러냅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빛에 비추인 ‘나’가 아니라 ‘나’ 스스로 밝아져야 합니다. 밝은 존재로서의 ‘나’를 옛 사람들은 ‘신명 든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신명(神明)은 내 안의 얼․혼(神)이 밝게 빛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이는 ‘얼이 어리고 있는 존재(아이)’입니다. 얼이 들면서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얼이 든 존재)이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는 늘 얼이 어리고 있어서 ‘신이 난 존재’로 삽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면서 “신났다!”, “신났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얼을 잃거나 상실한 사람들이 되기도 합니다. ‘얼간이’가 되는 것이죠.


얼을 들깨워서 다시 신명이 되어야 합니다. 좌뇌와 우뇌 사이에는 뇌들보가 있습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다리인데요, 이 다리는 좌뇌와 우뇌를 장고를 치듯 휘몰이로 치고 돌아야 빛을 냅니다. 생각해 보세요. 뇌들보의 뇌신경이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요.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 어두운 뇌를 가지고 삽니다. 왜일까요? 신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몸의 신명, 맘의 신명이 터져야 하는데 몸도 맘도 지쳐있습니다.


다사리문화학교의 기획은 단순히 청년문화기획자를 길러내는 곳으로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문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기획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한 바탕 빛무리로서의 은하를 이루는, 신명의 순간을 기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선적인 강의식 프로그램을 지양하고, 물들 스스로 샘을 기획하고 그 샘을 모시고, 또한 모신 샘을 통해서 각자가 배움의 노트를 기록해 가는 과정 지향형 수업모델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사전에 문화학교에서 모셔야 할 샘들의 이름과 강연제목을 공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무모한 수업계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사리문화학교는 루돌프 슈타이터의 교육철학을 수행하는 영국의 슈타이너학교나 러시아의 톨스토이학교, 덴마크의 그룬투비처럼 교재가 없는 열린 수업을 지향함으로써 물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적 개인의 교재’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는 2학기에 시작된 현장 프로젝트형 실기수업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학교가 하는 일은, 아니 교육이 하는 일은 ‘기획’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예술화’를 물들이 체험토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문화적이지 못한 기획은 딱딱하고 엄숙하며 소통이 되질 못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만남’의 문화적 소통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판을 짰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처’가 되는 상호 주체성의 ‘만남’이야 말로 다사리문화학교의 철학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학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시천주(侍天主)’하라고 말합니다. “한 얼을 내 안에 모시니”라는 뜻인데요, ‘한 얼’이 ‘하늘님’, ‘하느님’, ‘하나님’이 되었죠. 그런 다음 ‘조화정(造化定)’이라고 말해요. 한 얼을 내 안에 모시니 내 몸에 드디어 조화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우리 모두의 ‘너’는 얼님입니다. 얼님을 모시는 것이 곧 내 몸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는 것이에요. 바로 그것이 ‘얼나’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심’을 잊지 마세요.


※ 다사리문화기획학교 자료집 원고(2018). 이 글은 새로 쓴 것과 예전에 쓴 것, 그리고 다른 글에 있던 것들을 꺼내서 하나의 원고로 만든 것이에요. 다소 어려울 수 있겠으나 짧은 원고이니 늘 마음에 새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김태창 선생의 글은 물론이요, 이선민 선생이 쓴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삼성경제연구소, 2008)와 한영우 선생의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와 사학」(『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1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8)을 참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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