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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190424) | 정정엽의 '49개의 손거울'

김종길

정정엽의 ‘49개의 손거울’




2017년 9월, 청주의 스페이스몸미술관의 연중 기획전 ‘사물사고(事物思考)’에 정정엽 작가는 거울을 출품했어요. ‘옆으로 흐르는 눈물, 49개의 거울’이 제목이에요. 그 거울은 낡은 것들이었죠. 낡아서 버려진 것들.


거울에 쌓인 시간조차 낡아서 도무지 그 시간의 깊이를 재기 힘들어 보였어요. 언 듯 그것들은 세월의 더미에서 타버린 시간의 사리 같기도 해서 일순간 한 존재의 숨결이 훅하고 엄습하기도 했죠. 거울은 전시장에 걸려서 작품이 되었으나 품(品)의 성질로만 읽기에는 그 숨과 결이 깊었던 거예요. 도대체 그 숨은 무엇이고 그 결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요? 그리고 왜 하필 전시는 사물사고여야 했을까요?


사물로서의 거울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이 작(作/짓고 일으키다)의 우물이잖아요. 그의 거울들은 반듯한 사물이 아니라, 짓고 일으키는 ‘작’의 휘황한 도깨비 홀림[魅惑]이 난무하는 우물 공간을 연출했어요. 그래서 하나하나가 그 홀림의 무한 블랙홀이었고요. 검어서 아득했죠. 다석 류영모 선생은 도덕경 제1장의 중묘지문(衆妙之門)을 풀어 말하기를 ‘뭇 아득의 문’이라 했어요. 아득하고 또 까마득하여 뭇 오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라는 뜻이죠. 그의 거울우물이 그랬어요.


1991년 연변에서 펴낸 어원사전을 보면 거울은 ‘거꾸로’를 나타내는 ‘거구루’가 어원이래요. 거울이 없던 먼 옛날에는 물을 거울삼았고 이때 얼굴이 거꾸로 보였어요. 거꾸로 보이는 것을 ‘거구루/거우루’라고 했던 거예요. 여성들은 그 숱한 ‘거우루’에 기대어 자신의 ‘속알[참나/眞我]’을 보려고 했을 거예요. 그 속알의 아름다움을 꺼내서 겉과 속을 단장했을 것이고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꾸로 뒤집힌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를 말하고 스스로를 답했겠죠.


거울이 사라진 곳에서 말의 숨이 터졌어요. 한 거울우물의 표면에 정정엽 작가는 초록으로 ‘엄마’라고 썼죠. 그 밑에 다시 “뒤꼍에서 발견한 엄마”라고 적었고요. 그것이 숨의 결이었어요. 큰 우물 밑으로 눈물이 흘렀죠. 그는 마치 그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구렁에서 채굴하듯 분절적으로만 남아 있는 여성들을 찾았고, 그녀들의 말의 흔적도 찾았어요. ‘딨’, ‘뭇’처럼 말의 뼈는 아스라이 사라졌다가 떠올랐죠.



그는, 거기, 그 말의 뼈에서, 여성의 흰 그림자를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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